[INTERVIEW]
'프랑스' 브루노 뒤몽 감독 인터뷰
2022-01-20
글 : 임수연
"리얼리즘, 자연주의, 그리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주인공 프랑스(레아 세두)는 화제성을 위해 인위적인 연출을 서슴지 않는 스타 기자다. 그간 적지 않았던, 미디어 비판을 다룬 또 한편의 영화가 나온 걸까 짐작해보지만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브루노 뒤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일하다 뒤늦게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폭력성을 자연주의적으로 접근해 묘사하고, 독특한 장르 믹스와 블랙코미디를 구사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시네아스트다.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브루노 뒤몽 감독은 <프랑스>가 다루는 미디어와 모더니티, 현대성과 시네마에 대해 흥미로운 코멘트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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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등 문학적인 글을 먼저 쓴 후 이로부터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 <프랑스>도 150페이지 정도의 소설에서 시작했다. 글쓰기는 아주 심오한 작업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인간 심리에 깊이 들어가고 인간 행동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데 이렇게 멀리 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문학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에 바탕을 둔 시나리오를 창작하기 시작하면 이전에 썼던 소설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렇게 문학의 텍스트가 영화의 액션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확장된다.

- 샤를 페기의 희곡을 원작 삼은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2017), <잔 다르크>(2019) 이후 <프랑스>를 만들었다. 이번 작품의 원래 제목인 ‘On a Half Clear Morning’이 샤를 페기의 시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프랑스> 역시 전작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나는 샤를 페기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 상당한 현대성을 갖고 있는 시인이자 동시에 철학가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당장의 현실을 바라보며 이를 유토피아나 이상향에 대한 약속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은총을 찾고자 했는데, 이는 마르크시즘이나 가톨릭 신앙의 태도와는 다르다. 잔 다르크와 프랑스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다. 둘 다 여성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의식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분리되고자 한다. 다만 잔 다르크는 신화적인 인물이고, 프랑스는 현실의 복합성을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

- 주인공의 이름이 ‘프랑스 드 뫼르’인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현대 프랑스 국가가 처한 상황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인가.

= 맞다. 또한 프랑스 문화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프랑스 문화는 약간 오만하고 예민하면서 우아한 복합성을 지닌다. 이는 잔 다르크의 이미지와도 상통한다.

- 미디어와 저널리즘을 소재로 끌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 미디어라는 도구는 화면을 통해 오늘날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화면이 있기 때문에 미디어는 끊임없이 픽션을 만든다. 때문에 미디어는 아주 영화적이다. 그래서 영화적인 존재인 저널리즘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저널리스트는 곧 배우이고, 기사 쓰기는 곧 픽션이다. 극중 프랑스는 자기 자신이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다. 저널리즘과 디지털의 현실, 즉 현실 속의 허구와 맞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싸워야 한다. 끝없는 전쟁을 통해서만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하는 일이다.

- 극중 프랑스는 배우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이 하는 것과 같은 일도 한다. 뉴스와 영화 만들기는 얼마나 닮았나.

= 뉴스는 재현(representation)으로 나타난다.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 픽션이다. 재현은 변형을 거칠 수밖에 없지만 현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만 찍어서는 현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재현만이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 때문에 프랑스가 보도하는 뉴스는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령 <프랑스>의 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의 악한 면이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에 혼란을 느낀다.

- 필름 시대에는 원래 있는 것을 찍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컴퓨터그래픽 등의 기술을 통해 먼저 존재하던 대상이 없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조작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미디어가 현실을 담는 방식은 이러한 포스트 시네마의 양상을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 그렇다. 다만 영화감독들은 자신이 만드는 영화가 픽션임을 알고 있고, 관객 역시 자신이 보는 세계가 가상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대로 TV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픽션이 진실을 가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는 굉장히 현대적이면서 복합성을 지닌 철학적 쟁점을 불러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이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가 온전히 다루지는 못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는 프랑스가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동시에 자기 자신만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소외는 해방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 프랑스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신이 반복 등장한다. <프랑스>가 다루는 디지털 이미지와 사진의 속성을 비교 및 대비한 것처럼 느껴지던데.

= 디지털 이미지는 사실 시네마의 후손과 같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도 마찬가지다. 마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화면을 통해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현실이 아니고, 편집을 거치고 나면 픽션의 성격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결국 디지털은 무언가를 새롭게 발명해내지 않았다. 새로운 것은 없다.

- 하지만 0과 1의 이진법을 따르는 디지털 문법은 디지털 이미지를 향유하는 인간에게 새로운 인지 방식을 경험하도록 한다. <프랑스>가 묘사하는 미디어 산업과 소비자들 역시 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맞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비대화, 과잉 그리고 지나친 단순화로 이어진다. 세계를 0과 1로 환원시키는 문제는 일종의 지나친 도덕주의나 순수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

- 프랑스가 모로코계 이민자 남성을 다치게 했을 때,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안고 접근한 남자가 사실은 특종을 따기 위해 접근한 타사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가족에게 어떤 사고가 생길 때 주인공은 고통받는다. 프랑스가 겪는 고통은 어떤 의도에서 설정됐나.

= 멜로드라마를 통한 대중적인 접근이었다. 아주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이고 연극적인 장치를 경유해 현실을 변형한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했다. 프랑스가 겪는 아픔을 통해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혼돈에 빠진다. 이 묘사는 너무 과장된 나머지 조금 우습기도 하다.

- 프랑스는 고통을 치유하려고 요양원에 간다. 전작에서 잔 다르크의 수난을 다룬 것도 그렇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계속 질문한다.

= 고통은 아주 인간적인 것이다.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그리고 인간은 영속적으로 행복과 평화를 추구한다.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인간·동물·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신비주의를 신뢰하는데,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요양원이 있는 산을 등장시켰다. 산은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는 메타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고통은 인식하되 치료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아주 낙관적인 영화인이다. 낙관주의를 잃지 않기 때문에 영화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등장시킬 수 있다. 우리가 울고 있는 순간조차 웃지 않을 이유는 없다.

- 프랑스는 몇번의 눈물을 흘린다. 이는 클로즈업으로 영화에서 제시된다.

= 고통을 과장하기 위한 멜로적인 요소로 활용했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악한 점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물은 자각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의식이 감수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든 TV든 디지털이든 필름이든 클로즈업은 우리의 의식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 눈물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멜로드라마적이고 연극적이고 인위적으로 현실을 과장하는 역할을 한다.

-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당신의 영화는 언제나 인간 실존과 본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신의 철학적 사유의 근간은 어디에 있나.

= 리얼리즘, 자연주의 그리고 휴머니즘이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대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인간성은 나를 매혹시킨다. 최악의 상황에 놓이거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속성 말이다. 그래서 전투적이라든지 너무 학구적인 영화가 아닌, 어떤 인물을 상황 속에 처하게 둔 후 그것을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번 <프랑스>에서는 러닝타임 2시간 동안 주인공 프랑스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관찰하고자 했다.

<프랑스>

- 프랑스를 연기한 레아 세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 사실은 레아 세두가 나와 작업하기를 원한다고 들어서 만났다. 실제로 접한 그는 스타인 동시에 상당히 심플한 면도 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전작에서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을 많이 했다. 그들의 실제 성격을 바탕으로 극중 캐릭터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같은 작업 방식으로 접근했다. 내가 발견한 레아 세두의 성격으로부터 스타 저널리스트이면서 내면은 재미있는, 프랑스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 최근 당신의 작품들에 레아 세두, 쥘리에트 비노슈 같은 스타 배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좀더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인가.

=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 앞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배우들과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 혹시 구상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다면 살짝 들려줄 수 있나.

= 우주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서사시에 흥미를 느낀다. 다음 작품은 아마 우주적인 오디세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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