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옛이야기 들려주듯 차분한 내레이션으로 고지도를 펼쳐 보인다. 그림 속 동네는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의 뺏벌. 지명의 유래는 다양하지만 영화는 ‘한번 발 들이면 절대 발을 뺄 수 없다’는 뜻에 주목한다. 미군 기지가 터를 잡았던 그곳은 불 꺼진 바와 클럽을 배회하는 여자들의 유령으로 채워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혼이 되어도 폐허를 뜨지 못하는 존재들 가운데 이대로 죽을 수 없는 박인순이 있다. 그는 서울역에서 자장면을 사준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기지촌에 왔고,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왔다. 오래도록 냉대와 폭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그는 저승사자가 자기를 데려가기 전 복수를 하고 싶다. 그리고 영화에는 그런 인순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교수, 미술가, PD의 이름으로 기지촌 서사를 자르고 붙이는 이들에게 인순은 깔끔하게 편집될 수 없는 혼란의 언어로 현현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기지촌과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작품이다. 철거를 앞둔 기지촌에서 역사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세명의 여성을 좇은 <거미의 땅> 이후 이들은 또 한번의 형식 실험으로 그들 각자의 개별성과 복잡성을 울퉁불퉁한 표면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 박인순의 증언을 들으러 온 이들의 동선과 박인순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들의 동선이 얽히면서부터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판타지,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자연스러운 충돌은 낯설다가도 매혹적이고, 신랄하다가도 감성적이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고,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을 수상했다.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제12회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도 초청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