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줘> <6년째 연애중> 등 다양한 로맨스 작품을 연출해온 박현진 감독이 영화 <모럴센스>로 돌아왔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세세히 잡아내는 것이 기존 박현진 감독 작품의 묘미였다면, 이번에는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두 주인공의 관계가 리드미컬하게 그려진다. 성적 취향이란 소재가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연출에 기대는 대신 영화는 지우(서현)와 지후(이준영)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이들을 ‘이상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에 외려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영화의 신중함 또한 돋보인다. <모럴센스> 공개를 앞두고 박현진 감독을 만나 소회를 들었다.
- 원작 웹툰의 어떤 점이 흥미로웠나.
= 성적 취향에 관해 선정적이지 않게 묘사하면서도 다양한 인간관계, 로맨스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특히 마음에 든 건 지우 캐릭터였다. 지우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다, 사근사근하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 캐릭터다. 자기 생긴 모습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게 좋았고 또 지후는 지우의 그런 면을 멋있다고 말한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남녀 관계의 정상성에 대한 요구가 있는데 거기서 벗어난다는 점, 이런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면 로맨스의 구도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 극중 주요 갈등이나 엔딩은 웹툰과 다르게 진행된다.
= 사실 내가 웹툰을 너무 좋아해서 좋은 장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 가져오려니 영화만의 기승전결로 연결이 안되더라. 그래서 인물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초반의 큰 사건은 가져오되 영화만의 주제와 기승전결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웹툰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영화만의 서사로 각을 좁혔달까.
- 영화 초반 지우가 상사의 동성애 혐오 발언, 여성 차별적인 발언에 침묵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성적 취향이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문제에 관해서도 폭넓게 다룬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 원작을 본 분들은 그런 면에서 다르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우가 무뚝뚝하다보니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많지 않다. 다만 웹툰에선 마음의 소리로 지우 내면의 목소리가 잘 구현됐는데 영화에선 그렇게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초반부터 할 말은 하는 직설적인 캐릭터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추가한 것이다. 사실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에 성적 취향 문제를 비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낯선 것에 대해 ‘비호감이다, 이상하다’라고 치부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성적 취향을 지닌 자들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묘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그런 장면을 배치해보았다.
- 로맨스 영화, 드라마를 꾸준히 만들어왔고 <모럴센스>도 그 자장 아래 놓인 작품이다. 하지만 주제 면에서도 그렇고 연출자로서 여러모로 도전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 로맨스영화를 또 하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로맨스를 좋아하지만 이것만 하겠다고 고집하는 건 아니었고 주변에서도 우려했지만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번만 더 잘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웃음) 그동안엔 주로 일상 밀착형 캐릭터의 서사를 그렸다면 <모럴센스>는 판타지에 가깝다. 로맨스를 다루되 낯선 경험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접근 방식이라 플레이하는 장면들을 더 판타지처럼 연출했다.
- 판타지라는 말을 들으니 지우와 지후의 플레이 신들이 정확히 연상된다. 조명과 색감에 차이를 두는 식으로 플레이 신을 환상적으로 구현했다.
= 웹툰에선 플레이 장면도 더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실사로 구현하는 것이니 비주얼적인 재미를 더 주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지후의 직급이 더 높지만 플레이를 할 때는 상황이 역전된다. 권력 관계의 대비를 드러내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아서 촬영감독, 미술감독, 의상감독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 그 선에 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구현하는 장면이라 생각해 조명과 색감, 의상 등을 과감하게 가져갔다.
- 플레이하는 신들은 사전 리허설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고.
= 촬영 전날 실제 세트에 배우, 미술감독, 촬영감독 모두가 와서 동선을 정리하고 찍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사무실의 플레이 신은 10회차 정도에 촬영했는데 그때 배우들이 탁 터지는 느낌이 들더라. 그전까진 쌓아간다는 느낌이었다면 사무실 신에서 시원하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느낌이었다. 액션에 가까운 신들이었는데 호흡이 정말 잘 맞아들어갔고 본인들도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어려운 신을 초반에 찍으니 배우들도 감을 잡고 나도 영화 톤에 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신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 <모럴센스>의 기대평을 보면 대부분 자극적인 플레이를 연상하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지우와 지후는 서로를 존중하며 천천히 가까워진다. 영화의 태도도 친절하다. 관객이 둘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빌드업을 한다.
= 지후는 자신의 성적 성향을 알지만 실제 파트너를 가져본 적은 없는 초급자고 지우는 지후를 만나 뒤늦게 공부하며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 둘 다 초보고, 같이 시작해 배우고 알아가는 상황이라는 것이 웹툰의 기본 설정이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가는 노선은 처음부터 택하지 않았다. 지우가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을 관객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나로선 큰 숙제였다.
- 그런 면에서 서현과 이준영 배우가 극을 잘 이끌어준 것 같다. 두 배우의 어떤 점 때문에 캐스팅을 결심했나.
= 워낙 소녀시대 팬이다. 콘서트도 다녀온 적이 있다. (웃음) 서현 배우는 착하고 성실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드라마 <시간> <안녕 드라큘라> 등에서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왔더라. 만나서 대화해보니 어려서부터 걸그룹을 하면서 여러 일들을 겪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생활과 관련한 내공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지우 역시 직장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고충, 그에 대한 대처법 같은 것들을 캐릭터에 잘 반영해줬다. 이준영 배우는 <부암동 복수자들>이라는 드라마에서 눈길이 갔다. 사실 원작 설정보다 나이가 어려서 걱정했는데 배우는 나이에 국한되지 않으니 괜찮았다. 미팅하러 들어올 때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영화 이야기를 하니 눈을 반짝이더라. 욕심내는 게 보여서 잘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았으면 하나.
= 성향자들의 성적 취향과 관련된 장면들을 ‘플레이’라고 한다. 성향자들이 하는 플레이에는 연극이란 뜻도 있지 않나. 사실 미디어가 구현하는 연애 관계도 일종의 역할극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모럴센스>의 지우와 지후는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캐릭터고 다른 커플들과 달리 연애로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런 두 사람이 소위 정상성을 벗어난 이상한 관계로 보인다면, 과연 ‘남녀 관계는 이래야 한다’는 틀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극’은 모두 정상적이기만 한 것일까? 영화를 재밌게 즐겨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지만, 이런 질문을 담아 찍은 장면이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함께 봐주시면 좋겠다.
- 예정된 차기작도 있나.
= 여자 셋이 주축인 미스터리 로맨스 드라마를 계획 중이다. 이건 시나리오작가가 따로 있는데 대본이 잘 마무리되면 다음 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