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감독의 신작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2017년 5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한 고양이 이주 프로젝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정재은 감독은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 홀> <아파트 생태계>로 이어지는 건축 3부작 다큐멘터리에서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 주의 깊게 다뤄왔다. <고양이들의 아파트>에서는 공간과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으로 주제를 넓혀 논의를 전개한다. 도시의 길고양이는 누군가에겐 그저 나무, 돌과 같은 풍경과 다름없는 존재일 것이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그런 길고양이의 삶을 조명하는 동시에 이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둔촌냥이’ 모임 활동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같이 담아낸다.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도시에서 우리는 고양이, 그리고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정재은 감독의 인터뷰를 전한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전경을 비추던 카메라가 이삿짐을 정리하는 세대들로 시야를 좁힌다. 이삿짐 트럭이 분주하게 짐을 나르는 가운데, 아파트 단지를 유유히 오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아파트와 사람, 그리고 고양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며 <고양이들의 아파트>라는 제목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점점 빈 공터가 되어가는 아파트에는 오로지 고양이들만 남는다. 재개발로 인해 이 폐허들마저 사라진다면 고양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다시 터전을 꾸려야 할까. 영화는 우리가 효율성을 앞세워 빠르게 파괴하고 새롭게 건물을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도입부부터 분명하게 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귀여운 피사체가 아닌 독립된 개체로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엔 애정이 가득하다. 하지만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이들을 단순히 귀여운 피사체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삶과 터전까지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고양이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여기고자 애쓰는 편에 가깝다. 이러한 접근법은 둔촌냥이 모임 활동가들과 캣맘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독립이나 입양을 지지하는 대신, 활동가와 캣맘은 고양이들에게 무엇이 최선의 방법이며 자신들이 어디까지 개입해도 되는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여러 차례 지난한 회의를 마친 한 활동가는 말한다. “(고양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서 계속 살고 싶냐고.” 한숨 섞인 그의 대사 이후로 빈 아파트를 한가로이 오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길고양이는 도시의 주요한 문제 중 하나다. 둔촌냥이 모임의 활동가들처럼 길고양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잔혹한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지극히 양극단에 놓인 사례지만 두 경우 모두 길고양이라는 존재가 도시의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지표에 다름없다.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온 길고양이와 생활공간을 분리할 수 없다면, 오로지 인간의 입장에서 도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제는 이들과 공존할 방법을 심도 깊게 모색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말한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사례처럼 도시의 재건축, 재개발을 고려하는 지역일수록 더욱 그렇다. 영화는 고양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새와 너구리 등 아파트 내부의 다른 동물들에게로 관심을 넓힌다. 활동가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한계에 부딪히는 이들의 행보를 통해 영화는 도시 생태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한두명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한다.
공간에 주목하는 이유
정재은 감독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감독이다. 건축 3부작이 증명하듯, 다큐멘터리의 경우 정재은 감독이 다루고자 하는 메시지가 올곧게 이어진다. 공공건축의 대가 고 정기용 건축가가 전시회를 준비하고 후대를 양성하는 과정을 그린 <말하는 건축가>를 시작으로 정재은 감독은 서울시청 신청사가 완공되기까지 7년의 세월이 담긴 <말하는 건축 시티: 홀>을 연출했다. 그 뒤로 <아파트 생태계>와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연이어 제작했다. <아파트 생태계>는 아파트 키드 세대와 도시학자 등 아파트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을 다루는데, 재개발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의 상황을 염려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이를 이어받아 둔촌주공아파트가 허물어지고 고양이들이 이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것이다. 건축과 공간이라는 중심축은 유지하되 공간을 디자인하는 건축가에서 공공건물로, 그리고 보다 많은 이가 공존하는 주거 공간인 아파트로 정재은 감독의 화두가 조금씩 옮겨온 셈이다.
그가 이토록 공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재은 감독은 “공간의 역사, 그리고 공간을 둘러싼 여러 담론들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공간을 생존권 투쟁의 측면에서 많이 다뤄왔지만, 이제 그 시기는 조금 지난 것 같다. ‘공간이 누구의 소유인가’라는 문제에 관해 좀더 다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부분은 지극히 짧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공간도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공간을 더 긴 역사로 바라본다면 분명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도시도 생성과 소멸을 한다. 재건축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곳이 있는 반면 일본 후쿠시마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처럼 재난으로 완전히 버려진 도시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 나면서 또 다른 생명이 안착해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재은 감독의 말대로 ‘공간의 역사’ 측면에서 도시의 생애를 바라본다면, 지극히 짧고 한없이 작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인식하는 바와 다르게 우리는 공간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당연하게 배제해온 다른 생명들과 우리는 이제 이 공간을 제대로 공유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점만 앞세워 함부로 공간을 재배치하는 대신, 공생관계에 놓인 이들의 터전을 고려하며 도시 계획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사례를 들어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훨씬 깊고 두텁다. 도시와 건축에서 동물권, 환경 등의 주제로 이어지는 정재은 감독의 시선이 가닿을 다음 공간은 어디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