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감독 "동물과의 공생을 고민할 때"
2022-03-20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아주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부드럽고, 유연하고, 사람에게 일정 부분 거리감을 유지하고. 그런 고양이라는 존재에 관해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물론 피사체로서의 매력도 있고. (웃음)” 정재은 감독이 신작 <고양이들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고양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둔촌냥이’ 모임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둔촌냥이 모임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되 이들을 단순히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도시 공간을 공유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유기체로 여긴다. 이들과 어떻게 공생하며 도시를 가꾸어나갈지 사려 깊게 탐문하는 영화의 태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고양이를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 전작 <아파트 생태계>는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을 염려하며 끝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그 엔딩의 연장선상으로 보이는데, <아파트 생태계>를 연출할 때부터 이번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 그렇다. <아파트 생태계>를 찍으면서 둔천주공아파트 이야기를 장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생태계>가 본편을 만들기 위한 예고편이 된 셈이다. 둔촌냥이 모임이 결성되기 전, 모임의 멤버인 이인규씨와 김포도씨가 아파트의 고양이들을 구조하는 프로젝트에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프로젝트의 기록물로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

- 둔촌냥이 모임의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가담하기도 했나.

= 촬영 도중 아픈 고양이를 발견해 구조 요청을 하는 등 긴급한 상황을 몇 차례 맞닥뜨렸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처음으로 같이 활동하게 된 프로젝트였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만 만들었지 사회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본 적도 없고, 고양이의 밥을 챙겨본 적도 없었다. 모임에 참여하고, 이들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고양이와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개체수가 굉장히 많다. 생김새가 비슷한 고양이들끼리는 분별이 어려웠겠다.

= 초반에는 정말 구분을 못했다. 개체별로 그렇게 자세히 촬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눈에 보이는 대로 전부 찍고 촬영본을 리뷰하고 편집하면서 구별해갔다. 예냥이의 상황이 재밌었는데, 거리 생활을 청산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편집하다가 다른 회상 신에 나오는 고양이도 예냥이였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개체별 스토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 얘가 여기 찍혀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발견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 “고양이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말한 건 어떤 의미에선가.

= 과거 농경사회에선 고양이가 쥐를 잡기 때문에 이들을 귀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다 1970~90년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식량과 같은 나의 재화를 탐내는 ‘도둑’ 고양이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예쁜 것을 갖고 싶은 욕망,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욕망을 고양이에 투사하는 것 같다. 반려묘였다가 버려지고, 길고양이로 살아가며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이런 상황에 놓이면서 고양이와 사람의 관계가 굉장히 밀접해졌다. 그렇기에 길고양이에 관해 더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고양이라는 동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길고양이에서 시작해 도시 안의 자연, 다른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논의를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다.

- 2년 반 동안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무엇이었나. 영화를 보면서 후반부의 아파트 철거 시기가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가깝게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전부 멀리서 촬영했다. 오히려 힘들었던 건 고양이의 미래에 관해 논의하면서 사람들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였다. 가령 이런 거다. 250여 마리의 고양이 중 조건이 좋은 보호소로 5마리만 보낼 수 있다면 어느 고양이를 택해야 할까. 둔촌냥이 모임에선 나이가 어리거나 병이 있는 고양이들을 우선순위로 뒀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았다. 누군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밥을 주고 돌봐오던 고양이들이 보호소로 가길 원했다. 사실 양측의 입장이 다 이해된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누구를, 무슨 기준으로 먼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선택의 문제다. 여기에는 비단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를 돌본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을 돌보는 것은 아직 현재진행 중인 문제다. 영화를 지금과 같이 결말 짓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부터인가.

= 말한 대로 사람들은 아파트 주변으로 스며들어간 고양이들을 여전히 챙겨주고 있다. 범위를 넓혀보면 다른 곳에서도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아파트 철거로 끝나는 영화의 엔딩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거였다.

-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 길고양이와 소통하는 게 과거에 비해 많이 대중화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에게 길고양이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고양이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주의 깊게 봐주셨으면 한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동물들, 약자를 돌보는 분들이 많은데 공교롭게도 대부분 여성들이다. 약자를 돌보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영화를 통해 그분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나가면서 수고가 많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이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나.

=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사극을 찍고 싶어서 현재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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