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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시네마] 온라인 친구와 오프했는데... 너였구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2022-03-18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몇초에 불과한 몸싸움, 손을 떠난 공이 링을 통과하는 짧은 순간을 확장해 각성이나 성장이 발생하는 밀도 높은 찰나를 보여주는 스포츠 서사의 맛을 만화 <슬램덩크>로 처음 알았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로 펜싱부가 없어져도 기어코 동경하는 선수가 있는 곳으로 전학 간 18살 나희도(김태리)를 통해 그 느낌을 다시 곱씹는다. 처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간 희도의 내레이션이 “여기 나보다 노력한 사람은 없어. 오늘 한 경기도 안 진다”에서 “그래 나는 아직 나를 못 믿어. 나를 알아봐준 당신들을 믿”는다고 뒤집힐 때 깨달았다. 희도는 어리구나. 그래서 처음, 생생하게 겪는 순간이겠구나. 또렷한 자기 확신으로도 모자랄 때, 누군가의 기대를 수혈해 돌파하고 그 경험을 다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다지는 성장의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다 보니 내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른다. 가만히 엎드려 드라마가 간질이는 옛 기억을 따라가다가 좋아하던 과학 실험이 떠올랐다. 사인펜을 칠한 종이가 물을 흡수하면서 여러 색의 잉크 층이 분리되는 크로마토그래피. 청춘의 개념이 천천히 번지고 복잡한 색을 드러내는 이 드라마는 그걸 닮았다. 시대에 부대끼는 백이진(남주혁)과 희도가 쌓아가는 유대감과 응원. 희도와 동갑내기 선수 고유림(보나)이 동경과 두려움으로 힘껏 따라붙고 밀쳐내며 함께하는 시간에 흠뻑 젖도록 무엇 하나 재촉하지 않아서 우리는 이들이 처음 겪어가는 감정의 다채로운 색을 본다. “다시 말해봐 네가 인절미라고?” “미안해 인절미가 나라서.” PC통신 닉네임 뒤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왔던 희도와 유림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는 9회. 대사를 글로 옮기면 웃음이 터지지만, 드라마를 함께한 이라면 아이처럼 엉엉 울던 유림이 이진 말고도 눈물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닿지 않는 위로에 애가 탔던 희도가 손가락을 걸며 처음 받아낸 약속에 분명 함께 울컥했을 테다. 라이벌이라는 단어가 눈물에 번지면, 두 사람 같겠지. 또 얼굴이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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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 / 웨이브

스포츠 청춘 드라마의 마스터피스. 4부작 <태릉선수촌>을 빼놓을 수 없다. 유도 선수 홍민기(이민기)가 양궁 방수아(최정윤)가 과녁을 두고 한 대사 “판대기잖아”를 경기 중,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장면을 보면 체육인끼리만 통하는 의미가 있겠구나 싶다. 수아가 민기를 손가락으로 만든 프레임을 통해 보는 장면은 기자가 된 이진이 군중 속에서 희도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다시 쓰인다.

<역도요정 김복주> / 왓챠, 웨이브

희도에게 바나나우유를 건네던 이진 역의 남주혁은 수영 선수 정준형으로 출연한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복주(이성경)에게도 바나나우유를 사다 준다. <태릉선수촌>에서 방수아도 마셨던 바나나우유는 체육인들의 사랑을 두루 얻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은 태양고 아이들더러 “너흰 아직 금수야!”라고 하지만, 체대생 정준형은 금수들보다 어린 초등학생 같은 장난을 일삼는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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