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1956)
|125분|드라마
자유부인
멜로드라마에서는 숭고한 세계도 비범한 영웅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타락한 세계와 구원받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의 고통이 있을 뿐이다. 멜로드라마에서는 개인의 욕망과 제도적 윤리가 충돌하고, 이렇게 관객과 소통하는 통속성에서 이 장르의 위력이 나온다. 관객들의 기대는 이중적이다. 관객이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확인과 등장인물에 대한 우월감에서 비롯된 연민이(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주로 관객의 처지보다 나을 것이 없는 여성이나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지닌 인물, 중하층계급의 소시민들이다) 멜로드라마 쾌락의 한축이라면, 이들을 통한 욕망의 대리체험은 멜로드라마와 관객이 소통하는 또다른 통로이다(등장인물의 외모나 배경의 호화로운 치장과 시각적, 정서적 과잉 등). 이러한 의미에서 멜로드라마는 근대사회의 대중심리를 엿보는 전시장이다. 멜로드라마의 은밀한 소통의 언어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근대의 영토를 도발하기에 이른다. 5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근대적 여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던 영화 (자유부인)이 여전히 매혹적인 이유는 여성관객들의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는 통로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대 육체파 여배우로 호명되었던 김 정 주연의 (단발머리), 이만희감독의 (귀로), 음란한 표현으로 입건되기도 했던 (벽속의 여자)도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현란한 수사법을 쓰고 있다. (자유부인)에서 문지방을 넘어서는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발걸음을 따라 카메라는 전후 폐허의 서울 한가운데 화려한 근대적 비전으로 채택된 상상의 영토를 비춘다. 그곳은 온갖 최고급 외제 화장품과 수입산 악어백이 장식하는 서구화의 장소이자 살갗의 경련에 영혼을 맡기는 맘보춤이 넘치는 댄스홀의 공간이다. "25시다방"에서는 대한민국 제비의 원조라고 할 만한 대학생 춘호가 기름기 흐르는 눈으로 "마담 아이러뷰"를 외치며 오선영에게 접근한다. 유난히 강조되는 오선영의 시선을 통해 여성은 시선의 대상에서 욕망하는 시선의 주체로 변신을 꾀한다. 비록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윤리가 여성의 존재 자체를 송두리째 내다꽂을지라도. "당신이 장태연 교수라면 아내에 대해서 어떠한 결정을 지으시겠습니까?"라는 당시 영화포스터의 질문은 이제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질문의 각도를 바꾸어보자. 당신이 오선영이라면 젊은 제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아내에게만은 정숙을 요구하는 이중적인 가부장이자 지식인 장태연 교수에 대해 어떠한 정을 지으시겠습니까? 90년대 여성관객들은 집 문턱에서 멈춘 오선영에게 어떠한 주문을 하겠는가? 남인영/ 서울영화제 프로그래머 [씨네21 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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