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영화음악의 뉴웨이브가 다시 올까요?
2012-03-27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1990년대부터 2012년까지, 과거를 통해 살피는 한국 영화음악의 미래

추억 돋는 얘기 하나. 한때 O.S.T만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얘기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한 건 <파워 오브 원>(1992), 가장 갖고 싶었던 건 <트루 로맨스>(1993)였다. 둘 다 한스 짐머의 작품인데, 마림바가 인상적인 <트루 로맨스>의 <Amid The Chaos Of The Day>와 <You’re So Cool>은 94년 <정은임의 영화음악실> 오프닝과 엔딩 테마였다. 아무래도 <건축학개론>풍의 향수지만, 중요한 건 그때 O.S.T 인기가 꽤 높았다는 거다. 엄정화의 <눈동자>가 실린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나 <정글스토리>(1996),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접속>(1997) O.S.T는 90년대 한국 영화음악의 전성기를 상징했다.

한국 영화·드라마 음악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사실 한국에서 90년대만큼 역동적인 시절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하다는 건 비극이다. 몇편의 기술 논문들과 음악평론가 최지선의 <한국의 영화음악: 1955~1980>(2007) 정도가 있을 뿐. 그에 따르면 한국 영화음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춘향전>(1955)과 <자유부인>(1956)이 개봉한 때다. 영화음악계에 클래식 작곡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전문 영화음악가도 등장했고, 대중음악 작곡가들도 참여했다. 재즈, 팝, 샹송, 탱고, 룸바를 아우르는 ‘경음악’이 영화음악에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70년대 말까지 한국 영화음악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맨발의 청춘>(1964), 또 최초의 기획앨범으로 여겨지는 <별들의 고향>(1974)과 <바보들의 행진>(1975), 재즈풍의 <영자의 전성시대> (1975)와 <겨울여자>(1977) 등이 대표작이다. <바보선언>(1983)의 이종구, <고래사냥>(1984)의 김수철, <굿모닝 대통령>(1989)의 오태호, 장필순, 박정운이나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의 강인원, 김현식, 권인하 같은 이들은 80년대까지 이어진 영화와 대중음악의 타이 인(tie-in) 전략을 계승했다.

그런데 90년대에 이르러 영화, 문화산업의 기반이 바뀌었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일본 문화 개방이 논의되고 방송법도 바뀌어 민영방송 SBS와 케이블TV가 출범했다. 80년대 말의 UIP 직배는 할리우드의 지배력을 강화했고 PC통신을 중심으로는 ‘취향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하위문화 공동체도 생겼다. 대기업이 영화와 음악(심지어 만화)에 투자하고 배급도 담당했는데 이 맥락에서 90년대 초의 영화, 음악, TV(드라마) 시장은 보다 긴밀하게 연관되었다. TV가 먼저 성공했다. <여명의 눈동자>(1991), <모래시계>(1995), <카이스트>(1999)가 드라마와 음악의 밀착형 성공모델을 만들었고 영화에서는 <은행나무침대>(1996)와 <비트>(1997)에 이르러 새로운 경향이 제시되었다. 그때 <비트>는 비틀스의 <렛 잇 비>를 삽입하며 국제 저작권 분쟁에 휘말렸다.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던 그 사건은 국내 대중문화시장이 글로벌한 규모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반면 같은 해의 <접속>은 조영욱의 스코어에 최초로 라이선스를 획득한 팝송을 실어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은행나무침대>의 이동준이 맡은 <쉬리>(1998) 역시 100만장 판매로 스코어 앨범의 시장성을 확인시켰다. 인상적인 순간, 그런데 어쩌면 그게 마지막이었을까.

2000년 이후 사정은 급변했다. 대기업은 문화사업에서 철수했고 앨범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되었다. 당시 영화음악은 대부분 편집앨범이었는데, 이미연 표지의 <연가>(2002)가 음반판매 1위를 했던 것만큼 시사적이다. O.S.T 수집도, 90년대를 대표한 최경식, 송병준, 이동준의 입지도 줄었다. 영화음악은 흘러간 팝송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음악전문 프로덕션 M&F와 복숭아 프로젝트, 이병우가 한동안 영화음악계를 독과점하다시피한 점은 차라리 긍정적이다. 조성우 음악감독이 99년 설립한 M&F는 한스 짐머의 리모트 컨트롤처럼 TV와 게임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고, 복숭아 프로젝트는 장영규, 방준석, 달파란, 이병훈이 느슨하게 결합한 일종의 공동체였으며 이병우는 개인 작업의 연장이나 일환으로 영화음악에 참여하는 등 성격도 지향도 모두 달랐는데도 말이다. 여기에 조영욱이 가세하며 2000년 이후의 한국 영화음악계는 이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M&F는 <고양이를 부탁해>(2001), <가족의 탄생>(2006), 복숭아 프로젝트는 <복수는 나의 것>(2002),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병우는 <마리 이야기>(2001), <장화 홍련>(2003), <괴물>(2006), 그리고 조영욱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공공의 적>(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 (2005)에 이어 <이끼>(2010), <부당거래>(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김태성과 이지수에 주목할 것

하지만 M&F와 조영욱이 전통적인 영화음악 작곡가/그룹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복숭아 프로젝트와 이병우는 각자의 음악적 기반을 영화로 옮긴 것에 가까웠다. 그 점에서 최근 두각을 보이는 김태성과 이지수는 인상적이다. 예고편 음악으로 입문한 김태성은 믹싱 엔지니어링과 로직 프로그램의 노하우로 사운드 디자인의 영역에서 스코어를 고민한다. <크로싱>(2008),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 <최종병기 활>(2011), <퍼펙트 게임>(2012)이 그 궤적이라면 <겨울연가>(2002), <여름향기>(2003), <봄의 왈츠>(2006) 같은 드라마와 2003년 <실미도>와 <올드보이>에 조영욱과 함께 참여(<우진의 테마>를 작곡했다)하고 <마당을 나온 암탉>(2011)과 <건축학개론>(2012)의 음악을 맡은 이지수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활동했다(개인 앨범도 발표했다). 김태성이 소리의 공간감에 주목한다면 이지수는 내러티브에 천착하는 인상인데 비교적 선명한 대비는 두 사람의 미래도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이 2012년이란 점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음악학자 로열 브라운은 할리우드 영화음악이 유럽 낭만주의와 결별한 60년대를 모더니즘의 시작으로 봤다. 한국에선 90년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음반이 존재할 때의 얘기다. 대중음악에서 레코딩은 완결된 작품이란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영화음악은 늘, 배경음악과 독립작품 틈에서 엉거주춤했다.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음악이 과거와 이별하며 미래를 개척하는 건 분명하지만, 주목받은 음악들 모두 기존 음악가들의 ‘싱글’이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할리우드의 영화음악이 감정과잉 상태로 복제되는 것도, 스코어 작곡가들이 게임 분야에서 더 진지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태성과 이지수를 주목하는 건 스타일뿐 아니라 그 기반과 영역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과연 영화음악의 미래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