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픽사의 <업>으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마이클 지아키노는 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이런 수상 소감을 전했다. “아홉살에 아버지가 쓰던 8mm 카메라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사정없이 찍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시간낭비라 말하지 않았다. 부모는 물론 선생님도, 심지어 대학까지 가서도 그런 소릴 듣지 않았다. 어이, 아홉살 친구들, 듣고 있나? 내가 들어왔던 말을 돌려주려고. 만드는 일을 꿈꾼다면 당장 뭐든 시작해. 그건 절대로 시간낭비가 아니야.” 소년기의 지아키노가 카메라만큼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음악이었다. 그는 뉴욕 비주얼 아트 스쿨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줄리어드에서도 수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독을 꿈꾸던 지아키노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을 찍곤 했는데, 다 찍고 직접 사운드를 입히는 일에 유난히 집착을 보였다고 회고한다. 그 집착이 영화음악가로서의 미래가 된 셈이다.
지아키노의 영화음악에 대한 관심은 게임업계에 취업하면서 어떤 조절이 이루어졌다. 그는 디즈니사의 콘텐츠를 16비트 게임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음악 스탭으로 투입된 뒤, 드림웍스사의 <쥬라기 공원> 게임을 맡으면서 게임음악에 무려 오케스트라를 엮는 일을 해낸다. 지아키노의 이 시절 전문분야는 <메달 오브 아너> <볼 오브 듀티> <터닝 포인트> 같은 1인칭 슈팅게임이었다. 거론하기도 벅찰 만큼 많은 게임 작업들은 지아키노에게 캐릭터에 집중하면서도 작품의 형식과 시간을 모두 고려하는 총체적 이해를, 중추가 되는 테마음악과 주변부의 효과음을 배합하는 균형의 과정을 일러주었다. 향후 이력에 보탬이 되는 기본기를 게임업계에서 연마한 셈이다. TV시리즈 <앨리어스> 게임판의 음악을 마무리한 직후 그는 게임음악가 이상의 직함을 얻는다. 당시 드라마의 프로듀서였던 J. J. 에이브럼스가 다음 시즌의 음악을 의뢰하면서다.
지아키노는 에이브럼스를 인생의 은인으로 여긴다. <미션 임파서블3, 4> <클로버필드> <스타트랙> <슈퍼 에이트> 등 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작품에 지아키노를 늘 동반했기 때문이다. 그의 자질을 일찍 알아본 에이브럼스는 <앨리어스>의 음악을 주문하면서 이전 시즌 드라마의 관습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더 고전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고, 전공과 경험을 살려 완연한 마에스트로가 된 지아키노는 37인조 오케스트라를 대동해 만든 음악으로 제작팀에 만족을 안겨주었다. 콤비의 작업은 <로스트>로 이어졌고, 에이브럼스의 입지 상승에 따라 대작영화로 확장됐다. 한편 디즈니사와 게임음악을 만들며 쌓은 인맥과 신뢰 또한 유지됐다.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업>을 통해 지아키노는 여느 영화인들만큼 시상식 현장에 익숙해졌다.
지아키노는 뉴저지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름이 말해주듯 이탈리안 혈통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정서적 후예가 아닐까 판단하는 이들에게 그는 “내 취향은 존 윌리엄스에 더 가깝다”는 답을 준다. 존 윌리엄스가 그랬던 것처럼 SF와 만날 때면 그의 음악은 웅대해지고, 애니메이션을 만날 때면 분야의 특성을 따라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출렁인다. 체계적이고 풍성한 경력은 그에게 스코어의 근본을 일깨웠지만 근본에 너무 충실한 까닭에 귀에 걸리는 인상적인 메인 테마곡을 찾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건 지아키노의 음악이 “영화음악가는 또 다른 스토리텔러이며, 따라서 영화음악은 스토리를 따라 잔잔하게 움직인다”라는 양보의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라따뚜이> 중에서 <Le Festin>
<라따뚜이>를 작업하면서 마이클 지아키노는 주인공 레미의 상반된 성격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요리사를 꿈꾸는 순박한 소년, 쥐의 습성을 반영하는 도둑의 특성을 함께 살려야 했다. 동시에 낭만적인 파리도 음악으로 묘사해야 했다. 그는 전례를 뒤엎는 것으로 답을 찾았다. <라따뚜이>는 영화가 끝나려는 순간 가수 카미유의 목소리를 타고 매끈한 샹송이 흘러나온다. 스코어 작업에 익숙했던 지아키노가 이례적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입힌 노래를 터뜨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