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괴이' 김지영, 우리가 잘 아는, 어쩌면 전혀 모르는
2022-05-04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정기훈이 만드는 오컬트 잡지 ‘월간 괴담’? 원래 그런 걸 좋아해서 촬영장에서 맨날 봤다. 제작진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 실제로 아주 공들여 제작했더라. (웃음)” 문화인류학 전공자인 배우 김지영에게 유적에 얽힌 초자연적 스릴러 <괴이>는 숨겨진 관심사를 저격하는 반가운 텍스트였다. 그는 촬영 중 틈틈이 현장 귀퉁이에 떠도는 소품과 자료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내심 ‘이거 참 흥미로운데?’를 연발했다. 1993년 데뷔해 올해 30년차를 맞이한(“우리 (시)부모님과 살다보면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분들은 데뷔 60년차가 되어가시거든!”) 이 배우의 경륜은 커버 촬영 현장에서도 덤덤한 여유를 지닌 분위기 메이커의 자질로 자연스레 드러났다. “하하, 그런가? 촬영이 끝나면 동료들과 술 한잔하면서 돈독해진 것만은 확실하다.” 그가 <괴이>에서 연기한 파출소장 한석희 역시 진양군 주민들에게 그렇게 미덥고 안심되는 존재다. 귀불이 출토된 후 평화롭던 마을에 하나둘씩 미쳐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석희는 하나뿐인 아들 도경(남다름)을 위험에서 구하고자 한다. 귀불의 눈을 바라보면 자기 마음속의 지옥이 펼쳐진다는 섬뜩한 풍경 속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김지영은 평생 경찰로 살아온 베테랑의 몸짓부터 고심했다. “현란한 제스처 없이도 매의 눈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포착해 한방에 제압하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액션을 하고 싶었다. 무술감독님과 나 둘 다 그게 훨씬 어렵다는 걸 금방 알게 됐지만 말이다. (웃음) 기술이 빠진 자리를 채워야 하는 건 진짜 ‘힘’이었다.”

<괴이>에서 액션 연기에 제대로 시동을 걸기 이전에 몸풀기는 이미 시작되었으니, 호평 일색이었던 SBS 드라마 <굿캐스팅> 속 국정원 요원 캐릭터가 있었던 덕분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김희정 감독의 <프랑스여자> 속 영화감독 역할까지 더해 ‘최신의 김지영’은 그가 담보하는 스타로서의 친숙함 위로 한결 쨍한 경쾌함 또는 날것의 뾰족함을 드러냈다. 지난 몇년 새 필모그래피가 예리해지고 있는 까닭을 묻자 “이런 변화를 바라고 준비한 지 벌써 10년도 넘은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제의받은 아침·주말 연속극을 끊임없이 소화하는 사이 TV 속에 매일 나오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지는 순간이 오더라.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연기한다는 자부심은 사라지고, 나의 친근함이 곧 지겨움은 아닌가 하는 자조가 시작됐다.” 그래서 김지영은 교단에 서서 젊은 배우들과 호흡하고 단편영화와 카메오 출연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자발적으로 워크숍 스터디를 조직해 쇄신의 가능성을 긴 시간 도모했다. 결과를 도출하는 것보다 연기하는 과정의 재미를 찾아보자는 마음에 충실한 시간이었다. “<전원일기>부터 주로 선배 배우들과 연기했으니 현장에서 엔지 없이 정확도를 추구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현장에서 발견해가는 연기에 갈증이 생길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괴이>의 배우 구교환은 파트너로서 최상의 적임자였다. “마치 로드 무비처럼 기훈과 석희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퀀스가 꽤 길다. 구교환의 유니크함, 탐구심, 그리고 에너지에 크게 자극받았다. 매 테이크 다르게 실험하고 애드리브에 능한 상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촬영이 재밌고 흥분됐다. 가끔 내 에너지가 달려 수그러들 만한 순간에도 같이 신나게 끓고 있더라.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통성명하는 장면은 순전히 애드리브로 만들어낸 건데 아주 마음에 든다. <괴이> 속에서 우리는 항상 98℃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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