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라는 매끈한 외피를 두른 빌런, <빈센조>의 장한서는 잊어도 좋다. 상처로 불긋한 눈가가 범상치 않다 느낄 찰나, 인사 대신 욕설을 내뱉은 <괴이>의 용주는 출소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야 만다. 불상의 저주로 혼란에 빠진 진양군은 용주가 “뒤틀린 감정을 여과 없이 터트리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곽동연은 어느 때보다 거친 결을 살려 용주가 지닌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 <괴이>가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칸의 레드 카펫을 밟은 소감을 말해준다면.
= 배우들에게 칸이라는 도시가 지닌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출연작과 함께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기뻤다. 또 상영 뒤 관객의 호응이 뜨거워 정말 기분 좋았다.
- 용주의 첫 등장이 인상적이다. 등을 가득 채운 커다란 문신이 예사롭지 않았다.
= 그 문신을 어느 정도, 어떤 크기로 할 것인지 여러 논의가 오갔다. 나는 이렇게 캐릭터성이 강한 역할은 처음이라 ‘더 세게 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었다. 용주의 문신을 잘 보면 도깨비 얼굴 같은 게 그려져 있다. 그 덕에 이 문신이 용주에게 일종의 부적으로 작용한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촬영을 여름에 진행했는데 문신을 노출시킬 경우 계속 수정을 해야 해서, 첫 등장 이후로는 재킷을 벗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웃음)
- 용주에게 어떤 전사도 없었으면 했다던데 이유가 무엇이었나.
= 용주의 과거는 후반부로 가면 밝혀진다. 하지만 나는 어떤 전사도, 이유도 없이 용주를 순수악으로 그려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라 용주에게 서사를 주고 싶어 하시더라. 결국 내가 설득됐다.
- 빌런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하나. 도덕적으로는 이해가 불가한 인물일 텐데.
=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극대화하는 편이다. 용주의 경우 무더운 여름, 에어컨 없는 뙤약볕 아래 흐르는 땀과 더위를 그대로 견뎌야 하는 짜증, 그의 몇십배에 이르는 분노를 계속 상기하며 촬영에 임했다.
- 불상의 저주에 노출된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군청 앞을 뛰어다닐 때, 용주는 신난 채로 전쟁터 같은 상황에 뛰어든다. 품어온 분노를 터트릴 수 있었기 때문일까.
= 그렇다.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데 자신을 제재할 사람 하나 없는 상태로 재난이 일어난 거니까. 며칠 굶은 야생동물이 지천에 널린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의 정서를 계속 떠올리려고 했다.
- 당시의 액션도 눈에 띄었다. 몸이 굉장히 가볍던데 어떻게 준비했나.
= 일단 멋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용주는 제대로 몸 쓰는 걸 배운 인물이 아니라서 현실적으로 싸운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용주의 움직임에 관해 무술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개인적으로 몸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즐겁게 준비하고 촬영했다.
- 듣다보니 용주라는 역할에 여로모로 욕심이 많이 났던 것 같다.
= 배우로서 갖고 있는 욕심 중 하나가 계속 얼굴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빈센조>의 장한서로 나를 기억하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안기고 싶었다. 그래서 용주 캐릭터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관해 계속 고민했다. 그래서 내 욕심이 얼마나 충족됐고, 관객이 얼마나 기시감을 느끼지 않고 바라봐주실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