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추모] 동료 영화인들의 추모 메세지: 당신을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2022-05-13
글 : 김성훈
사진 : 씨네21 사진팀

당차다, 여장부다, 올곧다 같은 표현만으로는 배우 강수연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그는 현장에서는 스탭과 배우들의 든든한 동료였고,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 시절에는 정권의 외압에 맞선 든든한 방파제였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아 충격에 휩싸인 많은 동료 영화인들은 “배우로서 더 보여줄 게 많은데…”라며 침통해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그를 부산국제영화제로 모셔온 사람이고, 떠밀다시피 집행위원장을 맡겼으니까. 미안함과 고마움이 크다. 곧 만나자는 말을 주고받았었는데…. 그럴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진짜 보고 싶다.

박중훈 배우

35년 된 동갑내기 오랜 내 친구 강수연 배우가 세상을 떠나서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나이인데…. 이 친구와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즐겁게 촬영하고 개봉해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대를 함께 신나게 보냈었다. 선후배 동료에겐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던 친구, 배우로서 영화인으로서 품위와 자존심을 올곧이 지킨 친구다. 지난가을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 촬영을 앞두고 오랜만에 연기한다며 다소 긴장하고 있던 그와 저녁을 함께했던 게 마지막이 됐다. 최근 촬영을 마치고는 곧 한번 보자고 했었는데…. 척박했던 1980년대 한국영화계에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인의 자부심과 의욕을 북돋워주었던 점은 오랫동안 기억해야 마땅하다.

연상호 감독

2011년 <돼지의 왕>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3관왕을 했을 때다. 칸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갑자기 불러서 짧은 영어 실력으로 당황해하고 있던 차에 옆자리에 앉은 강수연 선배님이 통역해준 적이 있다. 월드 스타가 통역을 맡아줘서 얼마나 신기했던지. 신작 <정이>를 캐스팅할 때 강 선배님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대본을 드리며 “선배님이 출연하시면 이 작품의 연출을 무척 하고 싶어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SF 장르라 낯설었을 텐데도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주셨다. <정이>는 로케이션 촬영 없이 세트에서 진행되는 생소한 환경이었는데도 선배님은 완벽히 적응하셨다. 촬영을 쉬는 날에는 사무실에서 모여 술 마시며 영화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때가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다.

류승완 감독

강수연 선배님을 가까이서 만난 적은 딱 한번이었다.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상을 받고 폐막식까지 마친 다음날 공항 카페에서였다. 선배님과 마주쳤는데, 커피 한잔 사주시며 함께 있던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소개해주었다. 이후에는 김동호 위원장님의 사진전에 갔다가 뒤풀이 자리에서 인사 드리고 좀 떨어진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며 건배를 제의하시는 모습을 봤다. <베테랑>에 그 대사를 쓰고 시사회 때 고 이춘연 대표님에게 강수연 선배님을 꼭 모셔야 한다고 부탁드렸더니 강 선배님이 시사회에 와주셨다. 선배님이 <베테랑>을 되게 재밌게 보시곤 “어머 저거 내가 쓰는 말이야”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언젠가 꼭 따로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김태용 감독

김동호 이사장님이 연출한 <주리>에 조감독으로 참여해 강수연 선배님과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 촬영 현장에서 강 선배님의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보니 굉장히 밀도 높은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시더라. 선배님 경력이면 힘을 좀 빼고 띄엄띄엄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연기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현승 감독

<그대안의 블루>를 촬영하던 당시 있었던 많은 일 중에서 부산에서 촬영했던 일화가 먼저 떠오른다. 안성기 선배와 한창 영화를 찍고 있는데 비가 살짝 내리기 시작해 난감한 상황이 됐다. 강수연씨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나는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이고, 솔루션은 감독이 찾아야 하지 않나. 그러라고 감독이 있는 거 아니냐”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강단 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현장에서 그는 스탭들에게 큰형이자 큰누나였다. <베를린 리포트>(감독 박광수) 조감독 시절, 김대현 감독이 제작부 막내 스탭이었다. 후반작업 중, 김대현 감독의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이 소식을 강수연씨한테 전하고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가 차려지기도 전이었는데 강수연씨가 자신의 카드를 꺼내 ‘일단 쓰라’며 김대현 감독에게 건넨 일도 기억난다. 배우는 20대 때 얼굴이 있고, 30대 때 얼굴이 있어서 시간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유성이 있지 않나. 강수연씨는 이제 50대의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걸 보여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게 안타깝다. 연상호 감독이 <정이>에 강수연씨를 캐스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에게 무척 고마웠다. 지금의 강수연 얼굴을 스크린에 기록해주어서.

이명세 감독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 시절, <고래사냥2>로 처음 만났다. 만나자마자 내게 ‘소주 사달라’고 해서 함께 술을 마시며 금세 친해졌다. 당찬 배우였다. <지독한 사랑>을 함께 작업했는데 수연씨가 ‘나는 개런티가 비싼 배우인데 얼굴은 안 찍고 커피잔 같은 인서트컷을 예쁘게 찍으면 어떻게 하냐’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친형제처럼 그와 편하게 만났다. 몇년 전 내가 힘들 때 수연씨가 술을 사주었고, 최근 연상호 감독의 <정이>에 출연한다는 소식도 직접 들어서 잘됐다 싶었는데 이런 비보를 들을 줄은. 너무 사랑스러운 배우가 농담처럼 떠났다. 농담 같다.

토니 레인즈 영화평론가

강수연을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임권택 감독과 함께 참여한 어떤 영화제에서 만난 게 거의 확실한데), 1980년대 후반인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과 무대 위에 올라 그녀가 출연했던 한국영화를 주제로 토론하는 기쁨을 누렸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를 아는 서양인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관객 중 어떤 남자가 영화 속 그녀의 연기를 두고 상당히 무례하게 굴었던 돌발 상황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친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 뒤로는 거의 매년 부산에서 그녀를 만났다. 김동호에게 임권택과 강수연은 거의 부산의 마스코트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저녁 식사 자리, 사적인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강수연은 언제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가 정권의 외압으로 힘든 상황에서 떠밀리다시피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았을 때조차 그녀는 내게 ‘토니, 모든 게 괜찮지 않은 상황이야’라고 솔직하게 말했었다. 우리는 김동호 ‘감독’의 영화 <주리>에도 함께 출연했는데, 내가 연기할 캐릭터가 배창호 감독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극중에서 강수연이 자신의 ‘이미지’를 패러디하는 모습을 보고 기뻤고, 자신의 인격을 무시했던 동료 심사위원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냉담하거나 까다롭기는커녕 강수연은 역할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도전에 맞선 훌륭한 배우였다.

임권택 감독

내가 (강)수연이보다 앞서간 뒤 수연이가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얘기해야 맞는데, 거꾸로 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착잡하다. 많은 영화배우들은 감독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연기하는 걸 어려워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강)수연이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배우였다. 그만큼 강수연은 영리한 배우였다. 우리 수연이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린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강수연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강수연은 천부적인 배우다. 왜냐하면 카메라 앞에서 맡은 역할을 연출자의 방향 안에서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 그는 외향적으로는 강성하지만, 속마음은 굉장히 여리고 감성적이며 포용력이 깊다. 그런 성향은 아마도 월드 스타로서 가진 중압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과 행동을 스스로 엄격하게 자제하는 것이다. 술을 워낙 좋아하는 성격이라 술자리에서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때 그의 감성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김지석 전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이 칸에 도착하자마자 숨졌을 때 그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강수연이 나를 붙잡고 엄청나게 울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주리>라는 작품에서 감독과 배우로 함께 작업한 추억도 있다.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이던 배우 안성기의 제안으로 <주리>의 연출을 맡았다. 자연스럽게 안성기, 강수연 당대 최고의 배우와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 영화에서 안성기는 안성기다웠고, 강수연은 강수연다웠다. 영화에서 안성기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강수연은 강성의 모습을 지닌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다. 아마도 <주리>는 강수연의 실제 모습을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강수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릴 때부터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평화롭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거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강수연이 눈감기 전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는데 상당히 평안한 얼굴이었다.

문성근 배우

강수연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경마장 가는 길>(감독 장선우)은 199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유일하게 초청받은 한국영화였다. 그때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가 세계 무대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것과 더불어 강수연은 연기 예술에 대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강한 자긍심을 가진 배우였다. 그가 보여준 능력과 성취는 후배 배우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그대안의 블루> 때 (강)수연씨와 처음 만났다. 서울극장을 퇴사하고 영화 제작자가 되기 위해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일할 때였다. 수연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명씨’라며 반말을 했다. 나보다 3살 어린 사람이 그렇게 불러도 좋았다. 30년 전에 봤을 때부터 그는 나보다 20년쯤 더 나이먹은 사람처럼 어른스럽고 의젓했으니까.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인 강수연과 안성기가 출연하고, 멜로드라마 장르치곤 제작비가 많이 투입됐던 <그대안의 블루>에서 나는 신인 프로듀서였다. 이후 영화 <그 여자, 그 남자>를 함께했고, 사적으로도 친분이 생겼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명필름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을 제작했다. 영화계의 대선배이신 임권택 감독님의 신작을 제작한다는 사실이 명필름으로선 조심스럽고 긴장이 많이 됐었는데, 수연씨가 우리와 임권택 감독님 사이에서 제작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가교 역할을 잘해주었다. 그때 도움을 많이 받아 너무나 고마웠다. <화장>이 끝날 때쯤 회식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는데 수연씨가 혼자 걸어가겠다며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가던 뒷모습은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여배우가 남자배우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받던 1990년대, 배우로서 본연의 역할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 투쟁,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같은 영화계의 대소사를 직접 챙긴 헌신적인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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