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영화인생 25년만에 첫 단편영화를 공개했다. 신작 <심장소리>는 초등학생 철이(김건우)가 우울증 환자인 엄마(전도연)를 걱정하며 찾아다니는 모습을 원테이크로 쫓은 영화다. 지난 6월11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심장소리> 상영과 함께 이창동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이 감독과 같이 대화를 주고받은 이는 <씨네21> 전 편집장이자 소설가인 조선희 작가다. 1980년대 소설가와 문학 담당 기자로 만난 두 사람은 1990년대 영화감독과 영화기자로 재회해 오랫동안 공동의 기억과 신뢰를 쌓아왔다. 때문에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조망하던 대화는 두 사람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한국영화사의 순간들을 생생히 불러들이기도 했다. 그날 관객이 본 영화의 러닝타임은 28분이지만, 마스터클래스는 2시간 넘도록 이어졌다. 227석 규모의 좌석이 모두 매진됐는데,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대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늦은 밤 마스터클래스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극장에 남아 이 감독에게 싸인을 요청하는 긴 줄을 만들어냈다.
조선희 극장에 이렇게 관객이 빼곡하게 찬 모습을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두석 띄우고 한자리 앉아야 했는데, 이렇게 객석에 관객이 빼곡히 앉아있는 것만 봐도 굉장히 가슴이 부푸네요. 이창동 감독님의 <심장소리>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는데, 그때도 굉장히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죠.
이창동 전주에서는 저 영화뿐 아니라 많은 영화가 매진됐고, 관객이 꽉 찬 극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동적인지 실감했죠. 전주가 3년 만에 대면 영화제를 열어서, 흥행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참여했는데 사실 속으론 관객들이 잘 안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관객들이 객석을 채워주셔서 저뿐 아니라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조선희 제가 80년대 <연합통신>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거든요. 문학 담당 기자로 소설가였던 이창동 감독을 만났는데, 영화로 데뷔한 <초록물고기> 때는 제가 씨네21 편집장이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인터뷰를 꽤 많이 했는데, 문득 오늘 자리는 지금까지 인터뷰와는 뭐가 다를까 생각했어요. 답은 우리 둘 다 60대로 만났다는 것, 그게 참 큰 차이인 것 같지 않아요?
이창동 저는 조선희씨가 60대라는 게 안 믿겨지네요. <연합통신> 기자일 때 조선희 기자는 이미 등단한 작가여서, 기자와 작가라기보다 선후배 같은 만남이었죠. 우리가 60대가 되는 동안 한국영화에도 큰 변화가 있었고요. 그 변화를 이끈 것 중에 영화 매체의 역할도 컸었는데, 그 중에서도 <씨네21>은 주간지로 발행부수가 10만부를 넘길 정도로 관객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면서 한국 영화 발전의 중요한 물적 토대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희씨가 그 <씨네21>을 만들어서 포맷팅시킨 장본인이고요.
조선희 <씨네21> 편집장을 하면서 이창동 감독을 여러 번 인터뷰한 적 있는데, 당시 인터뷰를 뒤져봤더니 <심장소리>의 주인공처럼 질주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 느낌이 들었어요.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때와 달리 지금은 북한산으로 치면 사모바위쯤인 거예요. 이미 지나온 경로가 이미 다 보이고, 그가 어떤 재능을 펼쳐보일지 이미 다 본 다음에 대화를 나누는 것. 일종의 느긋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오늘 극장이 매진됐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긴장됐지만, 한편으로 느긋하고 푸근한 느낌이에요. 이건 아무래도 나이에서 오는 느낌이겠죠. 오늘 <심장소리>를 함께 봤으니까 <심장소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경위를 먼저 설명해주시겠어요?
이창동 코로나 블루도 있고, 또 갈수록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는 세계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WHO에서 기획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를 포함해 다른 나라 감독들 몇 명이 우울증을 주제로 단편영화 하나씩 만들고 옴니버스 스타일로 하나로 묶어 공개해서, 널리 우울증에 대해 관심을 촉구하겠다는 취지였어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영화로요. 제가 제안을 받았을 때 이미 저 말고 다른 감독들이 다 정해졌다고 들었죠. 취지가 좋은 데다 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수락을 했는데, 예상 밖으로 제가 맨 먼저 완성했고 다른 감독들이 영화를 완성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네요.(좌중 웃음)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꼭 옴니버스로 묶어서 공개해야 될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특별전’이 열리게 되었으니 우리가 먼저 영화제에서 공개해도 좋지 않겠나 제안했어요. 그렇게 공개된 거죠.
조선희 다른 감독들이 늦어지긴 하지만 결국 한편의 옴니버스 영화로 완성이 되겠죠?
이창동 그건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 건 완성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처음 기획한 시기에 해내지 않으면 예산 문제도 있고 쉽지 않죠. WHO에서는 다 완성되면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하고 OTT에 공개해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기획했던 것 같지만, 결과는 불확실한 것 같아요.
조선희 극장 개봉은 어렵겠죠?
이창동 이거 하나로요? 어렵겠죠.
조선희 관객 질문이 들어왔는데요. “아이가 뛰는 건 원테이크로 찍은 건지 궁금합니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긴장감과 공포가 느껴집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이창동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찍혀 있죠. 아이가 학교 교실에서부터 아파트 옥상까지 쉬지 않고 뛰어가는 아이를 카메라가 리얼타임으로 함께 보여주는 형식인데 실제론 원테이크로 찍진 않았습니다. 사이사이를 CG로 연결했어요. 이런 방식으로 연결하는 영화가 흔하진 않지만 장편영화도 더러 있죠.
조선희 아이를 따라가면서 영화에 집중하다보니 제 호흡도 점증적으로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아파트 복도에서 만난 옆집 아주머니가 철이에게 엄마가 옥상 올라갔다고 할 때 철렁하잖아요. 그때부터 아이가 또 다시 뛰기 시작하죠. 우리도 쫄깃쫄깃하면서 쫓아가게 되는데, 과연 연기를 하는 아역 배우가 그 흐름을 어떻게 유지했을까요?
이창동 캐스팅 때부터 그런 감성을 갖고 있는 아이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감성이 풍부한 것과 함께 내면이 얼마나 튼튼한가도 중요하게 봤어요. 역할에 몰입하면 배우들이 인물의 감정을 내면화되게 돼있거든요. 특히 아직 어린 배우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걱정하는 감정에 몰입하다보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내면이 튼튼한가가 중요했죠. 다행히 김건우란 친구는 내면이 튼튼했고 동시에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영화적인 센스도 있어서 감정이 점차적으로 더 불안과 공포에 쫓기게 되는 흐름 같은 걸 잘 이해했어요. 영화 속에 아빠와 전화하면서 감정이 터지는 신이 있는데, 사실 어려운 연기거든요. 옆에서 보면서 신기할 정도로 참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카메라를 자기 혼자 잘 이끌고 갔죠. 이 영화를 보면 카메라가 인물을 뒷걸음으로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물이 카메라를 밀고 가거든요. 영화에서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는 결국 감정의 거리이고, <심장소리>의 경우엔 카메라가 아이의 감정에 완전히 밀착돼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카메라가 뒷걸음을 치지만,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 조절은 사실 뛰고 있는 아이가 해주어야만 해요. 건우는 그런 센스가 있는 아이입니다.
조선희 핸드헬드로 카메라가 뒷걸음질 쳤나요? 참 쉽지 않은 테크닉입니다.
이창동 테크닉이라기보다 그냥 몸으로 하는 겁니다(웃음). 뒷모습을 핸드헬드로 따라가는 것보다 뒷걸음으로 배우의 앞모습을 담는 건 훨씬 어렵죠. 더구나 계속 뛰어야 하고, 특히 계단 내려올 때는 더 힘들죠. 혼자 뛰는 것도 아니고 포커스도 맞춰야 해서 어렵죠. 아이의 눈높이에 아이레벨이 맞춰져야 하고 달리면서도 아이 얼굴을 놓치면 안 되니까 촬영팀이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직접 할 순 없으니까 촬영팀 배에다가 아이 얼굴을 그려놓고 카메라로 뒷걸음으로 달리면서 연습했어요.
조선희 카메라 워크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는데요. “촬영을 롱테이크로 진행하셨는데 아파트 담 밑으로 넘어가는 신, 5층 베란다를 통해서 넘어가는 신을 어떻게 촬영하셨는지요?”
이창동 카메라가 지나갈 수 없는 좁은 담장 밑으로 카메라가 어떻게 지나가는가 하는 질문인데요, 담장 밖에서 들어가는 장면을 찍고 담장 안에서 받아서 찍은 다음 두 장면을 CG로 연결했습니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에요. 흔히 영화를 굉장한 기술로 찍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모든 발상은 아날로그에서 시작합니다. 아날로그적으로 상상하고 기술적으로 보충하는 것이죠. 아날로그는 다른 말로 하면 ‘잔머리’인데요. (웃음) 사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잔머리’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중요해요. 기술은 그것을 보완해주는 거고요.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옆집으로 넘어가는 장면의 경우, 아이가 실제로 넘었고요. 보통은 피아노 줄로 연결해서 CG로 지우는 작업을 하는데, 우린 그렇게 하지 않고 아이가 그냥 넘어갔어요. 안전장치는 아래에 매트리스만 깔고요.
조선희 아니, 거기가 5층이잖아요.
이창동 사실은 1층에서 촬영했습니다. 5층처럼 보이는 배경은 CG로 만들었고요. 그럼 철이가 5층으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1층 베란다로 나올 수 있었을까, 그건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잔머리입니다.(웃음)
조선희 정말 매직이네요. 마술쇼 같은 거죠.
이창동 기술적으로 대단한 것처럼 포장할 수 있겠지만, 영화란 매체에서 기술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1917>이나 <버드맨>을 보면 원테이크로 끝까지 가잖아요. <심장소리>의 경우는 ‘기술적인 걸 우리도 할 수 있어’라고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어요.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 철이의 불안한 마음, 엄마를 살리고 싶어 하는 아이의 순수한 영혼을 관객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하자는 영화의 태도가 중요했어요. 아이의 심장소리를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도 같이 느끼기 위해서 원테이크 문법을 취한 거죠. 기술적으로 놀라운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면 더 놀라운 걸 넣었을 수도 있겠죠.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을 관객이 함께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었죠.
조선희 OTT로 드라마를 보면 나쁜 버릇이 생겨요. 재생 속도 변환과 10초 스킵 장치들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요령을 피워가면서 보거든요. 하지만 절대 그렇게 보면 안 될 영화가 <심장소리>인 것 같아요. <심장소리>는 러닝타임을 그대로 준수하면서 달려가는 아이의 거친 호흡 소리를 그대로 같이 겪으면서 따라가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이런 종류 영화를 1.25배속으로 보게 되면, 문장으로 비유하자면 조사와 동사, 어미가 다 빠지고 명사만 남게 된 문장이 되지 않을까요.
OTT 시대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
이창동 <심장소리>를 만들기 시작할 때 오정미 작가와 이야기 나눈 의도는 “OTT 또는 요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버릇과 추세를 역행해보자”였어요. 그야말로 영화라는 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영화 속 인물과 세계를 같이 경험하는 것이죠. 그래서 관객이 동시에 함께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거였어요. 이런 의도에 걸맞은 인물과 서사를 찾았죠. 원래 타워크레인 농성에 대한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걸 영화화하려고 오래 노력했고 오정미 작가하고 시나리오도 거의 다 썼는데, 영화에 들어가기에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묵히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WHO의 제안을 받은 거예요. 엄마를 걱정해서 119를 불러달라고 하고 베란다를 넘어가는 디테일은 오정미 작가가 어릴 때 가족이 경험한 건데, 이걸 준비하던 장편영화의 설정에다가 붙인 거죠.
조선희 타워크레인 설정에 대해서도 질문하신 분이 계세요. “타워크레인 농성이 영화에서 소비되는 느낌이 있는데, 마치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시위에 무관심해진 시대를 다루려고 하신 건지요?”
이창동 그렇게 볼 수 있겠죠. 거대한 이야기를 왜 정면으로 못 다루고 배경처럼 썼느냐는 질문일 텐데…. 창작을 하면서 제가 경험하는 고민과 거의 일치하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해고 노동자와 관련한 장편영화를 만들려고 엄청 노력하고 시나리오도 썼고 심지어 테스트 촬영까지 했거든요. 테스트 촬영 한번 하는데 거액이 깨집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용기를 못 냈죠. 미학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의미 있을까에 대해서 제가 확신을 못 가졌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에서 이야기하려던 건 분명합니다. 관객 여러분이 느꼈을 거라 믿습니다만, 우울증이란 게 결코 개인적인 질환이 아니다, 사회적 맥락이 있고 관계의 문제이다. 결국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경제의 문제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가 옥상에 올라가서 아빠(설경구)가 높은 타워크레인에 있으니까 함께 높은 곳에 올라오고 싶었다고 말하는데요.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서 농성한다는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니까 정말 외롭게 싸우는 거거든요. 이젠 그조차도 신경 안 쓰는 세상이 됐어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간 누군가를 위해서 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 그 자체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엄마를 걱정해서 달리지만, 사실 엄마도 아빠한테 갈 순 없지만 아빠가 있는 곳 최대한 가까이 가는 이야기죠.
조선희 이창동 감독님은 개인의 일을 절대 개인사로만 다루지 않거든요. 감독님은 사회 심리적인 바닥을 깔고, 현실 사회의 구조를 배경에 장치를 하는 분이죠. 항상 우리 시대 삶이란 어떻고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또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던져놓고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울증 문제를 다뤄도 사회적인 맥락을 절대 포기할 분이 아니죠. 그래서 타워크레인이란 설정을 거의 습관적으로 집어넣으셨을 것이고요. 감독님은 타워크레인 농성에 대한 장편영화를 준비하다가 마땅치 않아서 <심장소리>에 던졌다고 했지만,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해요. <심장소리>는 28분 동안 아이가 절박한 마음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죠. 어쩌면 단순한 플롯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타워크레인이 들어오면서 조금 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텍스트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영화의 단순함이 방해받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조금 받았어요.
이창동 ‘너무 복잡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너무 단순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보는 이가 생각하기 나름인데요. 창작물이란 건 다른 사람이 아닌 그 누군가의 지문이 찍히고 그 사람의 심장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가치 판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조선희 WHO로부터 단편영화를 제안 받은 감독들이 다들 작품을 완성해서 <심장소리>가 옴니버스영화로 극장 개봉하길 저도 기대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심장소리>에 관한 세션은 마치도록 하고요. 이제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해볼까 해요.
*본 기사는 '이창동 감독 X 조선희 작가 대담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