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27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우수상 김예솔비 작품비평 - '쁘띠마망', 조용한 환상
2022-07-16
글 : 김예솔비
<쁘띠 마망>을 움직이는 외화면의 정교한 상상
<쁘띠 마망>

운전을 하고 있는 마리옹의 옆얼굴. 뒷좌석에 앉은 딸 넬리의 손이 불쑥 들어와 간식을 나눠준다. 말없이 웃는 두 사람. 단순히 상황만 놓고 보자면 여느 다정한 모녀의 모습처럼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분명 어딘가 기이함을, 다정함으로 미처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남긴다. 카메라가 간식을 건네는 넬리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화면 안쪽에는 말없이 간식을 받아먹는 마리옹의 옆얼굴과 간식을 건네는 넬리의 손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개구지게 웃는 넬리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이 순간 넬리의 얼굴은 영화의 외화면 영역(hors-champ)으로 밀려난 것이다.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에 관습적으로 공포와 스산함을 동원한다. 물론 우리는 이 손의 주인이 넬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장면에는 모녀의 다정함과 더불어 이상한 기운이 달라붙는다. 외화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쁘띠 마망>에서 외화면은 사실상 화면상의 기교일 뿐 아니라, <쁘띠 마망>의 판타지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적 양식이기도 하다. 유품을 정리하러 외할머니 집으로 간 넬리가 자신의 엄마 마리옹의 어린 시절을 만나게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사실 넬리의 엄마 마리옹이 잠시 넬리 곁을 떠났을 때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미스터리로도, 그 흔한 타임 패러독스로도 이어지지 않는 이 조용한 환상은 엄마가 화면 밖으로 떠난 세계에서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넬리가 잠든 사이 마리옹은 넬리의 세계에서, 할머니의 집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이러한 판타지가 마리옹과 넬리의 분리로부터 추동되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넬리가 하는 패들공 놀이다. 패들공 놀이는 기다란 줄에 공을 매달아 공을 쳐도 공이 다시 되돌아오게 함으로써,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놀이다. 흥미롭게도 넬리가 처음 엄마의 어린 시절 요새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는 이 패들공을 연결하던 줄이 끊어져 담장 밖으로 넘어갔을 때다.

<쁘띠 마망>

넬리가 하는 공놀이는 상당히 직설적인 방식으로 포르트-다(Fort-Da) 게임을 연상시킨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의하면 포르트-다 게임은 엄마와의 분리에 불안을 느낀 아이가 공을 멀리 보냈다가 다시 끌어당기는 놀이의 방식으로 상실을 상징화하여 극복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을 가지고 넬리를 바라볼 때, 멀리 보낸 공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담장 바깥으로 넘어가버린 것은 상징화 과정의 실패를 의미한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사이에서 왕복하던 연결이, 두려움의 편에 멈춘 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셀린 시아마는 이 실패를 우악스럽게 과장하지도, 아이의 불안을 위태롭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실패는 상상으로 부드럽게 우회한다. 공이 끊어지고, 넬리가 끊어진 공을 따라 담장 바깥으로 향할 때, 영화는 외화면이라는 가상적 공간의 비밀에 다가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외화면 공간은 우리의 상상으로 채워지는 가상적 공간이다. 이러한 상상의 영역 속에서는 타임머신도, 구구절절한 시간 여행의 단서도 없이, 엄마의 유년 시절과 불쑥 조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모두 넬리의 상상이라는 말이 아니다. <쁘띠 마망>은 영화의 외화면 영역에서 축조되는 상상적 공간을 빌려 우아한 시간 여행을 탄생시킨다.

어린 마리옹과 넬리는 같은 불안을 공유한다. 넬리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렵고, 엄마의 우울이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리옹 또한 마찬가지다. 마리옹의 엄마는 곧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산다. 마리옹과 넬리를 일란성쌍둥이 배우로 캐스팅한 것은 모녀가 겪는 상실의 슬픔이 같은 연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이고 정확한 방식일 테다. 넬리의 외할머니의 죽음은 마리옹에게는 엄마의 상실이기도 하다는 점, 넬리라는 이름이 마리옹의 할머니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점은 세대와 세대간의 관계를 일방향적인 족보가 아닌, 서로를 향해 되돌아오는 순환의 구조로 만들어낸다. 넬리가 어린 마리옹의 이름을 부를 때, 어린 마리옹의 엄마가 넬리를 부를 때, 어른 마리옹이 넬리를 부를 때, 그리고 다시 넬리가 자신의 엄마의 이름을 부를 때,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끊어졌던 패들공이 서로의 품으로 일순간 되돌아오고, 찰나의 위로로 작용한다. 작별 인사는 아무리 해도 충분치 않은 것이지만, 우리는 좀더 용기내어 있는 힘껏 작별할 수 있다. 거울처럼 닮은 마리옹과 넬리의 얼굴 위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다른 여성들의 얼굴을 겹쳐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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