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27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우수상 소은성 작품비평 - '종착역', 세상의 프레임과 둥근 안쪽
2022-07-16
글 : 소은성
<종착역>(2020)

‘여름방학을 맞은 네명의 중학생들이 카메라를 들고 세상의 끝을 찍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서사를 작품의 한 가지 구성 요소로서 영화가 포함하는 한, 이 문장 하나에는 예측 가능한 서사적 형식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일종의 교양소설적 서사로서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보수적이다. 네명의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경로를 이탈하고, 적당한 시점에 길을 잃으며, 마침내 예정과 다른 장소에 도착한다. 그리고 결국 찾고자 했던 것,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얻는다. 그것은 영화에서 스틸 이미지로 제시된다. 나머지 친구 셋은 아직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난 시연은 열려 있는 경로당 출입문 앞에 앉아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에는 출입문에 걸린 투명한 문발 너머로 시골 마을의 지붕이 낮은 집들과 경로당 앞마당이 보이고, 그곳에는 자신과 친구들의 벗은 신발이 놓여 있다. 아마도 이 사진이, 시연이 찍고자 원했던 세상의 끝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친구들의 이야기에 덧붙여 이미지의 여정 또한 함께 보여준다. 영화에 구두점처럼 사용된 이 스틸 이미지들은, 세상의 끝을 향해가는 네명의 친구들에게 속했던 어느 한순간을 정지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관객에게 항상 제시되지는 않는다. 분식집에서의 소정이나 역으로 들어오는 전철처럼 영화의 디제시스 내에 연결점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육교 앞 굴다리나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게 찍힌 지하철 노선도, 역사에서 찍은 바깥 풍경, 재개발로 공사 중인 주택가를 보여주는 사진 등은 분명하게, 움직이는 영상으로 표현되는 친구들의 대화 장면 바깥에 있다. 어쩌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눈에 띄지 않게 지속되어온 사진 이미지와 움직이는 영상 사이의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난 때인지도 모른다. 투명한 문발이 드리워진 경로당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 움직이는 영상으로 찍힌 시연의 뒷모습과 그 바깥을 향해 있는 사진 이미지로서 말이다.

이 영화에서 움직이는 영상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로 수렴시킨다. 관객이 보아야 하는 것은 반드시, 따로 또 같이 흩어지고 모이는 네명의 친구들이다. 이를테면, 경로당에서 연우가 기겁하는 벌레나 송희가 언급하는 미러볼과 빔 프로젝터도 관객은 볼 수 없거나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오는 흔적들, 연우의 어깨에 비치는 빛, 거울을 통한 반영만 확인할 수 있다. 사운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네명의 친구들의 목소리는 카메라에서 등을 돌리거나 멀어지는 것에 관계없이 언제나 거의 일정한 정도의 크기를 유지한다. 이것은 그들이 프레임 바깥으로 퇴장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때의 사운드는 외화면 공간으로 확장되기보다, 인적 없는 텅 빈 시골길의 적막함을 강조한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시연의 불편한 감정을 바라보게 만든다. 교실에 앉아 있는 시연이 여름방학을 잘 보내야 한다는 담임의 잔소리를 들을 때나, 내려가던 계단을 다시 시연 혼자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머지 친구 세명의 목소리를 들을 때,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내화면을 긴장시킬 뿐 프레임의 확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렇게 움직이는 영상을 내부로 가두는 프레임은 영화 안에서 사각형의 이미지들로 전유된다. 영화의 첫신에서, 담임을 따라 시연이 교무실을 나가면 카메라가 함께 패닝하며, 그에게 맞춰져 있던 포커스가 교무실 전체로 이동한다. 이때 직선과 직선이 만나며 두드러지는 문과 캐비닛, 파티션, 커다란 칠판은 사각형이 학교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교실에 앉아 있는 시연을 보여주는 한신에서, 문에 달린 직사각형의 창은 그가 덫에 걸린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교실에서 시연은 담임의 잔소리를 통해 자신이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시연은 이 사각형의 세계 안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는다. 전학에 필요한 절차를 마치자마자 그는 사진부실을 찾는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온 그는, 콘택트렌즈 때문에 씨름하고 있는 소정, 연우, 송희에게 휴대폰 불빛을 비춰준다. 그리고 이때 그들 오른편에 놓인 빔 프로젝터 렌즈로부터는 원형의 불빛이 빛나고 있다. 영화가 <역마차>가 틀어져 있던 사진부실의 스크린과 공원에 있는 원형 운동기구를 연이어 보여주듯이, 이 원의 이미지는 사각형 이미지와 대립되는 쌍을 이룬다. 원형 이미지는 영화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그 의미가 비교적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것은 연우가 시연에게도 나머지 둘과 나눠가진 팔찌를 건네면서다. 전학생인 시연에게 너무도 소중했을 그 팔찌는 무엇보다 소속감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경로당에 머물기로 결정한 네명이 둘러앉아서 진실게임을 할 때, 사각형의 검은 천 아래에서 빛나는 LED 조명 거울의 동그란 불빛과 그다음, 카메라가 천장을 비출 때 프레임을 벗어난 둥근 손전등 불빛은 분명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예술적 재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도르노는 그것이 세상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능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시연은 사각형이 지배하는 공간인 학교에서 원형의 불빛이 있는 사진부실을 찾아냈다. 또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그것의 한 종점이 세상의 끝일 수 있다고 시연은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을 설득해서 결국 도착한 신창역 플랫폼의 끝에는 사각형의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이 철로가 끝나지 않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시연은 다시 예정된 경로를 이탈하여 결국 투명한 문발이 안과 밖을 완전히 가르지 못하는 문에 다다랐다. 비록 자신을 옥죄던 카메라의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시연은 그로부터 등을 돌리고 비로소 자신이 찍어야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하게 된 우정의 둥근 안쪽인 동시에 자신이 걸려든 세상의 프레임으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가서 발견한 바깥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