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 수행을 위해 잔인한 고문도 서슴없이 행한다.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 입장에선 같은 팀 요원인 장철성(허성태)만큼 미더운 후임도 없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장덕수와 달리 문신 하나 없는 멀끔한 정장 차림이어서일까. 비밀리에 움직이며 상대를 겁박하는 <헌트>의 철성은 어쩐지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허성태는 “이정재, 정우성 선배 사이에서 분장을 받는 스리숏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너무 뿌듯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헌트> 촬영 현장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이거 진짜 어떻게 다 찍으실 건가요?”라고 물었다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엄청 휘몰아치고 있었으니까. (웃음) 그런데 계획대로 영화에 잘 구현돼서 깜짝 놀랐다. 이정재 선배가 장면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서도 그 안에서 본인도 연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 <헌트> 출연 제의는 <오징어 게임>을 촬영할 때 받은 건가.
=<오징어 게임> 땐 식사 자리에서 <헌트>에 관해 간단히 귀동냥한 정도였다. 그러다 <신의 한 수: 귀수편> 뒤풀이 자리에서 정우성 선배에게 인사를 드렸고 곧이어 <고요의 바다>에 출연하게 됐다. 이정재, 정우성 선배 두분이서 따로 내 이야기를 하신 것 같더라. 그렇게 <헌트>에 출연해줬으면 한다고 연락을 주셨다.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헌트>의 결말이 전하는 메시지에도 관심이 있던 터였고 첩보 액션에 관한 로망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배우 이정재, 정우성과 함께할 기회가 내게 언제 또 주어질지 모를 일 아닌가.
- 철성은 안기부 국내팀 소속으로 김정도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눈치 빠른 행동파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이정재 감독님도 철성을 자신의 신념을 갖고 불도저, 탱크처럼 밀고 나가는 인물이라고 표현하셨다. 다만 그 신념이라는 게 대단한 가치관을 가리킨다기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미션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냥 직장 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인 거지. (웃음). 그외의 것을 덧붙이면 오히려 사족 같아서 단순하게 접근했다.
- 철성은 중간중간 사투리가 섞인 서울말을 쓰지 않나. 그래서 자연스레 철성의 출신과 과거를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5~6번 정도 일대일 리딩을 했는데 그때 사투리를 섞어보고, 빼보고 다 해봤다. 다들 표준어를 쓰니 철성에겐 차별점을 주고 싶었고 인물을 좀더 풍부하게 표현해보려는 작은 장치였다.
- <오징어 게임>을 위해 15kg을 증량했다가 <헌트>를 위해 다시 15kg을 감량했다.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다른 작품을 또 하기엔 부담스러운 체격이었으니까. 감독님이 의견을 주신 건 철성의 센 이미지를 위해 이마 라인을 0.5cm 정도 깎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대로 따랐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문제는 <헌트> 외에 다른 작품도 계속 맞물려 촬영하다 보니 모든 작품의 분장팀이 내 이마 라인을 깎아줘야 하는 거였다. 너무 미안해서 지금은 따로 관리한다. (웃음)
- 액션 신은 어땠나. 총기 액션에 폭발 신까지, 준비가 꽤 필요했겠다.
=이렇게 연발로 총을 쏴본 건 처음이다. 정우성 선배와 2층 세탁소 건물에 올라가서 총을 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전에 선배가 귀마개를 주시더라. 몇개 없을까봐 “괜찮습니다, 선배님 쓰십시오” 하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정말 총소리가 너무 큰 거다. 실내 공간이라 울림도 있고 옆에서도 쏘고 나도 쏘니까. 그래서 엔지를 내고 “죄송합니다. 다시 주십시오” 하고 귀마개하고 다시 촬영했다. (웃음)
- 칠성을 보며 재밌었던 건 김정도 앞에선 칼같이 각을 잡으면서도 뒤돌아서면 곧바로 풀어진다는 거였다. 액션 신이나 고문하는 신에서 오히려 에너지가 폭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철성과 김정도의 관계엔 평소 나와 정우성 선배의 관계가 녹아든 것 같다. 선배가 워낙 잘 챙겨주셔서 나도 마음을 다해 잘 따라가려는 게 있다. 고문 신 같은 경우는 사실 더 세게 가고 싶었다. 극중 안기부의 설정 자체가 그랬으니까. 그런데 감독님이 계속 주지하신 건 어쨌든 철성은 악역이 아니라는 거였다. 빌런이 아니니 그렇게 세게 갈 필요가 없다고 계속 정도를 잡아주셨다. 그런 면에서 이정재 선배에게 의지가 많이 됐다. 연출자이자 배우니까 배우로서 고민하는 지점들을 사전에 다 펼쳐두고 하나하나 설명하며 해결해나가곤 했다. 그러다보니 철성의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 <범죄도시>의 독사, <신의 한 수: 귀수편> 부산잡초, <괴물> 이창진 등 전부 주조연 여부에 관계 없이 맡은 신을 자기 것으로 확실히 가져갔다.
=그런 건 있다. 내가 작품을 골라 출연하고 그런 배우는 아니지만 와중에도 간간이 거절할 때가 있다. 주로 내가 전에 한 것과 비슷한 걸 보여주게 될 것 같은 경우가 그렇다. 분량은 상관없다. 한 장면만 나오더라도 작품의 큰 그림에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으면 하고 아니면 정중히 거절한다.
- 최근 쉼 없이 다작을 했다. <헌트> 개봉과 더불어 드라마 <인사이더> <아마다스>가 방영 중이고 <카지노>도 공개 예정이다. 연이어 촬영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작품에 깊게 몰입해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유형의 배우는 아니다. 확실하게 몰입하고 끝나면 바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다. 자세히 말할 수 없어 아쉽지만 지금 말씀하신 작품 외에도 영화 <소년들>을 포함해 여러 작품이 예정되어 있다. 분명한 건 전부 다 캐릭터 성격 면에서도, 장르 면에서도 다른 캐릭터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