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보편적이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삶과 노동에 대한 질문”
2022-08-18
글 : 김수영
사진 : 백종헌

- 매일 교외에서 파리 시내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 교외에 살면서 먼 거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늦지 않을까,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 많을 테고 예쁘지도 않은 파리의 외곽 풍경을 보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고 싶었다. 이 삶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디테일하게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일하는 풍경,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풍경, 심지어 아이를 목욕시키는 풍경까지 일상의 디테일을 스크린에 담으려고 했다.

- 첫 장편 <충돌테스트 아글라에>(2017)에 이어 일하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 내 관심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의 이야기. 두 번째는 사람이 노동과 맺는 관계. 나는 커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주체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한번쯤 해봄직한 질문에서 내 영화도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단어 그대로 옮기면 ‘인생에서 뭐 하고 있니?’라는 말이 된다. 또 ‘먹고살다’라는 표현도 단어 뜻대로 풀어보면 ‘그 삶을 얻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노동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는 하나의 톱니바퀴 같고, 우리는 그 안에서 톱니를 굴리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이런 생각들을 담아보고 싶었다.

- 극도의 클로즈업과 전자음악, 빠른 편집으로 일상의 노동을 다이내믹하게 담았다.

= 주제만 놓고 보면 소셜 필름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미장센을 연출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항상 느꼈던 걱정스러움 혹은 공포 등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리고 싶었는데 그게 바로 액션, 스릴러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내 감정을 관객 역시 고스란히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액션, 스릴러적인 요소를 활용해 연출했다.

-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쥘리 역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로르 칼라미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프랑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의 코믹한 연기만 봐왔는데, 이 영화에서 엄마로서의 따뜻한 얼굴과 직업인으로서의 단호한 모습을 연기해냈다. 특히 자신을 해고하려는 실비(안 수아레즈)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장면은 배우와 어떻게 해석해나갔나.

= 쥘리가 투쟁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다른 신에 비해 길이도 긴 신이라 굉장히 공들여 찍었다. 로르에게는 다양한 연기를 자유롭게 하면 내가 거기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양한 버전으로 여러 번 촬영했고 그중엔 주인공이 울음을 터트리는 버전도 있었다. 찍고 나서 보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인공이 여기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국 담담하고 투쟁적인 얼굴을 골랐다. 로르와 각 신의 적절한 감정과 그에 맞는 연기 톤을 함께 찾아나갔다.

- 쥘리의 호텔 동료들도 흥미롭다. 쥘리를 돕다가 일자리를 잃는 견습생도 그렇고 쥘리의 상사 실비도 삶이 녹록지 않다. 그녀들의 삶은 닮아 있다.

= 맞다. 그렇게 보였으면 했다. 나의 첫 번째 영화 <충돌테스트 아글라에> 역시 비슷하게 전개된다. 카메라를 타이트하게 잡아 쥘리의 삶을 따라가고 있지만 결국은 여기 나오는 모든 여성이 다 쥘리인 셈이다. 대사를 통해 모든 걸 말하지 않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각자의 스토리가 있을 거다. 아마 15년 전의 쥘리도 면접관 들라클루아의 모습이지 않을까? 아이를 봐주는 이웃 부인 역시 쥘리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여성들이 인생의 단계마다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 <풀타임>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요하게 다룬다. 감독 자신은 삶의 균형을 찾았나.

= 그걸 찾았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균형이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왜 언론이나 영화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궁금했다. 파업도 그런 맥락에서 꺼낸 이야기다. 왜 파업하는 조직 안에서 싱글맘이나 싱글맘에 관한 이슈를 찾아볼 수 없을까? 왜 야망 있는 남자에 비해 야망 있는 여자는 잘 드러나지 않을까? 쥘리는 집착도 강하고 본인의 이상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일에서 성공하고 가정에서도 엄마로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이 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다뤄지지 않는 질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이런 질문에 관한 자기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 관객이 자신의 출퇴근길과 돌봄,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관객에게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제일 먼저 선보이고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막상 프랑스에서 개봉할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시위를 반대하는 입장을 다룬 건 아니지만 어쨌든 배경이 되는 시위를 두고 프랑스인들이 왜 시위를 이런 식으로 묘사했느냐고 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프랑스 관객도 영화를 지지해줬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물질적인 부담감 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얘길 들었다.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라고 확인받은 것 같아 굉장히 감동받았다.

- 프랑스에서 직업을 묻는 말처럼 당신에게 ‘인생에서 뭐 하니?’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겠나.

= 내가 하는 일을 묘사해야 한다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구현해낸다.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감독이 되기 전에도 영화 업계에서 편집 및 후반작업을 하는 테크니션으로 일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 기분이고 이 일로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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