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은 “이 작품은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영화들의 자취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DNA가 된, 영감의 원천을 소개한다.
왕가위의 영화들
에블린의 수많은 다중우주 중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우주는 역시 배우 에블린이 사는 우주 아닐까. 배우는 현실의 에블린이 어린 시절 품은 꿈이기도 하다. 다른 우주에서 에블린은 알파 웨이먼드와 이별한 후 배우로 대성한다. 자신이 주연한 영화의 프리미어 상영회에서 에블린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한 웨이먼드와 해후한다. 둘은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양 녹색 빛이 감도는 어두운 밤거리에서 랑데부한다. 이 시퀀스의 프레이밍은 누가 보아도 <화양연화>의 유명한 이별 연습 시퀀스를 떠오르게 한다. 두 감독은 왕가위의 영화가 이미지 연출에 주안점을 둔다는 사실에 기반해 관객이 왕가위의 영화들을 잘 모르더라도 숏만 보고 한눈에 해당 장면이 왕가위 영화의 오마주임을 알아챌 수 있게 프레임을 구성했다. “영화에서 인유(引喩)를 할 때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레퍼런스를 가져와 관객이 ‘나 저거 알아, 나는 지금 농담을 보고 있구나’라고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찍곤 한다. 우리는 그런 패러디보다는 장면의 장르성에 집중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갖고 놀며 다중우주를 활용해 그것들이 모두 충돌하게끔 한 것이다.” 랑데부 시퀀스의 대사는 왕가위 특유의 가정법 대화를 떠올리게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이 시퀀스의 모든 대사가 중국어로 구성돼 있다는 점 또한 뚜렷한 왕가위의 인장이라 할 수 있다.
<라따뚜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관객의 가장 큰 폭소를 부르는 순간 중 하나는 라카쿠니의 등장이다. 생쥐 레미가 요리사 링귀니의 요리 모자 안에서 링귀니의 머리카락을 조종해 요리를 만드는 픽사의 장편애니메이션이 유쾌하게 인용돼 있다. 에블린이 처음 라카쿠니를 언급할 때 관객과 조이는 이것이 영어 명사를 종종 헛갈리는 에블린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에블린은 쥐가 아닌 너구리가 요리를 한다며 관객의 의문을 부른다. 에블린이 철판구이 요리사로 존재하는 다중우주까지 가고 나서야 관객은 에블린의 동료 요리사 채드가 <라따뚜이>에서처럼 너구리를 모자 안에 대동한 채 일했음을 알게 된다. 영어 이름을 헷갈리는 에블린의 습성은, 영화 <굿 윌 헌팅>을 ‘굿 피플 슈팅’ 으로 말하는 등 제목을 전혀 기억 못하는 프로듀서의 아버지로부터 비롯했다고 한다. 처음 <라따뚜이>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오기로 결정할 무렵 에블린과 채드는 평범한 셰프였지만, 두 감독이 미국 내 아시아계 이주민의 보편적 이미지들을 모으며 지금과 같은 철판구이 요리사로 설정됐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유인원이 공중에 내던진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바뀌는 매치 컷이다. 또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장엄하게 사용된 오프닝 또한 언제나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명장면과 교향시를 신인류의 기원과 현재로 가져온다. 영화에 의하면 기원전 1천만년의 인류는 양손에 손가락 대신 열개의 핫도그가 달린 모습으로 진화했다. 이 우주의 인류는 서로의 입에 자신의 핫도그를 물려주며 애정을 표하는데, 서로의 손가락엔 머스터드 소스가 흥건하다. 이 우주에서 핫도그 에블린과 사랑에 빠지는 존재는 현실의 에블린을 극도로 괴롭히는 공무원 디어드리이다. 둘은 더글러스 서크풍의 디자인이 눈에 띄는 아파트에서 지내며 <캐롤>의 특정 숏을 생각나게 하는 프레임으로 절절한 관계를 보여준다.
쿵후영화와 <구니스> 그리고 성룡
다른 우주에서 에블린이 배우로 성공하기까지는 쿵후의 공이 컸다. 후미진 골목에서 불량배들에 포위당한 에블린을 구해준 이는 흰 눈썹의 여성 쿵후 마스터이다. 에블린은 그로부터 쿵후를 사사해 액션영화를 찍고 스타덤에 오른다. 흰 눈썹의 쿵후 스승 파이메이는 70~80년대의 홍콩영화 <홍희관> <홍문정삼파백련교> 등에 등장하는 쿵후 실력자의 전형이다. 버스점프를 통해 액션배우인 자신과 접속한 에블린은 자신을 잡으러 온 수많은 알파인들을 쿵후로 물리친다. 알파 웨이먼드가 세무서에서 처음 선보이는 액션은 웨이먼드를 연기한 배우 조너선 케 콴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가 복대를 활용해 자신을 저지하려는 세무서 경비들을 무찌르는 호쾌한 액션 시퀀스는 아역배우 시절 출연한 영화 <구니스>에 대한 오마주다. 그는 <구니스>에서 복대에 잡동사니를 챙겨 다니며 여러 위기에서 팀원들을 구해내는 리처드 데이터로 분한 바 있다. 웨이먼드의 복대에선 립밤이 나오는데, 이 립밤을 웨이먼드가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보면 <구니스>의 똘똘한 발명가가 장성해 여전히 다른 우주의 위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있는 듯한, 기묘한 세계의 연결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두 감독은 전반적인 액션 시퀀스를 직조할 때 양자경과 인연이 깊은 성룡의 액션들을 활용했다고 한다. 가령 <폴리스 스토리4>의 유명한 장면인 사다리 활용 결투 장면은 세무서 사무실 비품을 활용한 액션으로 재탄생됐다. 관객의 폭소와 비명을 동시에 유발하는 트로피를 활용한 버스점프 장면도 성룡식의 유머에 기인한다.
<매트릭스>
다중우주에 관한 영화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릴 영화.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다. 다니엘 콴 감독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 또한 “우리 영화는 <매트릭스>에 대한 100%의 응답”이라 밝힌 바 있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컴퓨터 해커로 살아가던 네오가 모피어스에 의해 가상 현실의 존재를 인식하며 자신이 ‘the One’임을 알아채듯, 에블린 또한 알파 웨이먼드에 의해 자신이 혼돈의 우주를 바로잡을 영웅임을 깨닫게 된다. 한편 쉐이너트 감독은 10여년 전 로스 맥켈위 감독의 1986년작 <셔먼의 행진>을 본 후 다중우주에 관한 개념을 영화에 접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콴 감독과 작업을 할 무렵 다중우주를 소재로 한 성인애니메이션 시트콤 <릭 앤 모티>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연달아 공개되었고, 두 감독은 해당 작품을 본 관객이 자신들이 준비 중인 영화를 공격할 수도 있을 거란 걱정에 빠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