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소개]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통계물리학과 복잡계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세상물정의 물리학> <관계의 과학> <김범준의 과학상자> 등이 있으며 현재 <경향신문>에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을 연재하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모두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평행우주 얘기다. ‘에에올’도 좋고, ‘모모모’로 줄여 말할 수도 있겠다.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그리고 스페이스(space)가 모두 ‘우주’로 번역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것의 모임이 유니버스이고, ‘질서 있는 우주’라 할 수 있는 것이 코스모스다. ‘우주선’(spaceship)의 스페이스는 인간이 탐사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인간의 이해로 유니버스는 코스모스가 되고 인간의 탐험으로 유니버스는 스페이스가 된다.
하늘 천 따 지로 시작하는 천자문의 우주홍황(宇宙洪荒)은 크고 끝없는 우주를 말해 유니버스의 뜻과 통한다. 또 집 우(宇)에 집 주(宙)를 쓰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우주 전체가 유니버스다. 모든 것을 담은 전체는 결국 하나일 수밖에 없어서 유니버스에는 ‘하나’(uni-)의 뜻도 담겨 있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우리 우주 밖 다른 우주의 존재는 반증불가능의 영역이었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도 넣어야 우주고,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하나를 뜻하는 ‘uni’를 여럿을 뜻하는 ‘multi’로 바꿔 멀티버스(multiverse)를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과연 우주가 여럿일 수 있을까?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는 물리학의 여러 평행우주에 대한 책이다. 어떤 정보 전달도 빛보다 빠를 수 없어서, 아주 먼 곳에서 지금 일어난 사건은 한참 시간이 흘러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1레벨의 평행우주는 기다리면 볼 수 있는 우주다. 기본 상수들이 아주 조금만 달랐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이런 모습이 될 수 없다는 물리학의 ‘미세조정문제’에 대한 (약간 궁색한) 답변이 2레벨 평행우주다. 평행우주의 대부분은 생명은커녕 별 하나 없는 쓸쓸한 불모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두 바위 장면 같은 모습이다. 숱한 2레벨 평행우주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별빛 찬란한 우주가 바로 우리 우주다. 우리 사는 이곳의 소중함은 엄청난 우연의 결과일 수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3레벨의 양자역학 평행우주를 그린다. 입자가 어디에서 관찰될지는 확률로만 정해진다. 양자역학은 왼쪽, 오른쪽에서 입자가 관찰될 확률이 각각 얼마라고 예측할 수 있지만 정말로 왼쪽에서 관찰되는 순간, 오른쪽의 가능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이다. 한편 다세계 해석은 측정의 순간 우주가 두 갈래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내가 지금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순간, 3레벨 평행우주로 분기한 또 다른 나는 카페라떼를 주문한다. 매번의 우연한 선택으로 우주가 끊임없이 분기하고 시간이 흐르면 두 평행우주에 있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물리학에서는 수많은 3레벨 평행우주가 (비록 존재하더라도) 내가 있는 이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상정한다. 그곳의 나도 나지만, 이곳의 내가 그곳의 나를 만날 순 없다.
끊임없이 매 순간 분기하는 3레벨 평행우주는 존재하는 것일까?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에 재밌는 검증법이 소개되어 있다. 1초에 한번씩 방아쇠가 자동으로 당겨지고, 총알은 50%의 양자역학의 확률로 발사되는 ‘양자 기관총’ 사고 실험이다. 1초마다, 내가 살아 있는 우주와 내가 죽은 우주, 두 평행우주로 분기가 이어진다. 평행우주가 없는데도 한 시간 뒤 내가 살아 있을 확률을 0.000…의 꼴로 적으면 소수점 아래 0을 1천개쯤 적어야 처음으로 0이 아닌 숫자가 나온다. 양자 기관총 실험 시작 1시간 뒤 내가 살아 있다면 평행우주의 존재를 아주 높은 확률로 증명한 셈이 된다. 좀 덜 끔찍한 방법도 있다. 만약 내 나이가 1천살이 되어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도 평행우주는 높은 확률로 존재한다. 3레벨 평행우주의 수많은 다른 우주 어딘가에는 한주도 거르지 않고 10년 동안 연이어 로토 1등에 당첨된 나도 있을 수밖에 없다. 평행우주의 숫자는 무한대니, 아무리 적은 확률의 사건도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조부 투파키가 말하는 통계적 불가피성(statistical inevitability)의 의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멋진 상상이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젊어서 웨이먼드(조너선 퀘 콴)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이 있는 우주, 웨이먼드와 헤어져 배우로 성공한 에블린이 있는 우주도 있다. 쿵후의 고수가 된 에블린, 요리사로 살아가는 에블린도 가능하다. 모든 인간이 핫도그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우주, 에블린이 바위로 존재하는 우주도 있다. 또 영화 <라따뚜이>의 제목이 사실은 라카쿠니(Racacooni)여서 생쥐가 아닌 너구리(racoon)가 요리사로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 게다가 실제 현실에서도 너구리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어내는 우주도 당연히 가능하다. 물리학의 3레벨 평행우주의 수는 실로 무한하니, 모든 것(everything)이 어디에선가(everywhere) 지금 이 순간(all at once)에 일어나고 있다는 멋진 상상이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나 카페라떼를 주문하나 선택으로 분기한 두 평행우주는 그리 다를 리 없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벌거벗고 캠퍼스를 달리고 맞닥뜨릴 내일 아침 평행우주는 무척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 세계와 현실을 잇는 통로(exit)가 공중전화라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른 평행우주로 훌쩍 건너가는 통로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황당한 선택을 이용한다. 선택이 황당할수록 훌쩍 더 먼 평행우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재밌는 발상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사 중 “모든 새로운 발견은 우리가 얼마나 사소하고 멍청한지를 다시 일깨울 뿐이다”가 기억난다. 맞다. 과학의 역사는 인간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존재의 사소함을 깨달아 끊임없이 겸허를 배운 역사다. 지구의 위치는 우주에서 특별할 것이 전혀 없고,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다면 우리 우주도 수많은 평행우주 중 어쩌다 우리가 살게 된 평범한 우주일 수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우리에게 특별하지 않지만 이곳은 여전히 소중하다고 속삭인다. 매일 서로 부대끼며 모두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정말 사소하고 평범한 우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 그래서, 더욱 소중한 곳이 바로 여기다. 이곳이 평행우주의 가장 끝자락 오메가버스면 또 어때? 알파버스가 아니어도 지금 이 우주는 그 자체로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SF, 코믹, 가족영화면서 소수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온갖 재료가 버무려져 맛있는 비빔밥 먹듯 영화를 보고, 비빔밥 속 여러 재료를 가만히 음미해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 장르의 탄생을 축하하며, 모든 영화제 전 부문 상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석권하는 평행우주를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