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④ 이승한 TV칼럼니스트의 관점에서: 에에원의 이민 가족의 딜레마
2022-11-03
글 : 이승한 (TV 칼럼니스트)

[필자소개]

영화를 힐끔거리는 TV칼럼니스트. <한겨레S>에 ‘술탄 오브 더 티브이’를 연재 중이다.

조부 투파키(스테파니 수)는 왜 이 평행우주의 에블린(양자경)을 콕 집어 찾아 헤맨 걸까? 그 답은 에블린이 가지고 있다. “난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걸.” 에블린은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이나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 꿈 대신, 남편 웨이먼드(조너선 케 콴)와 함께 허름한 세탁소를 꾸리며 사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희생한 결과는 무엇인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이 된 세탁소는 언제 압류되어도 이상할 게 없고, 남편과의 사이는 서먹해졌으며, 한때 가득했던 가능성들은 죄다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그런 것처럼, 이 모든 희생을 감수한 부모는 그 결실을 자식에게서 보고자 한다.그러나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에블린의 기대와 달리 대학을 중퇴하고 팔에 문신을 새긴 성소수자로 자랐다. 엄마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지만, 부모의 기대를 실망시키는 자녀로 성장한다는 것도 즐겁지는 않다.

어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일 이 부담은, 자식의 성취를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증거’로 삼는 이민자 가정에선 한층 더 무거워진다. 자신의 삶이 온전히 제 것인 게 아니라 부모 세대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여야 하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부채의식이 실리는 것이다. 조부 투파키가 ‘에브리씽 베이글’을 설명하면서 “모든 게 부질없다면, 살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고통과 죄책감도 사라진다”고 말하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부모 세대는 모든 걸 희생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자식 세대는 그런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겉돈다. 미국 사회에 단단하게 정착하지 못한 채 부초처럼 둥둥 떠 있는 상황 속에서, 조부 투파키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지금껏 당신을 죽이려고 당신을 찾아다닌 게 아니야. 내가 보는 걸 보고, 내가 느끼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던 거야.” 그래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이 평행우주의 에블린이어야만 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간신히 미국 사회 끝자락에 매달린 한 중국계 가정의 속내를 오래 바라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지님으로써 단숨에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삼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더 절박하게 다가올 설정이지만, 사실 굳이 ‘아시아’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그 어느 디아스포라에도 해당될 법한 설정이다.

이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동시대 할리우드의 아시아-디아스포라 영화들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노-디아스포라(Sinoꠓdiaspora, 정치적 혼란이나 경제적 이유로 중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중국계 이민자들의 이산. 이 글에선 그와 같은 이산을 다룬 예술의 한 조류를 일컫는 단어로 쓰였다.-편집자) 영화들은 ‘부모와 자식간의 문화 장벽, 세대 차이’로 갈등하다가 어느 한쪽으로 저울이 기울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방향을 택한다.

생각해보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자유분방한 중국계 미국인 2세대 레이첼(콘스턴스 우)이, 가문의 전통을 지키려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예비 시어머니 엘레노어(양자경)와 대결해 승리하는 이야기였다. <페어웰>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할머니에게 그 사실을 밝혀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중국계 미국인 2세대 빌리(아콰피나)가, 미국에 살면서도 여전히 중국적인 정서를 버리지 못해 그 사실을 비밀로 하자는 아빠(티지 마)를 이해한 끝에 그 뜻을 따르게 된 이야기다. 심지어 픽사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조차 그렇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자유로운 캐나다의 문화와 부모를 공경하라는 중국의 문화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국계 캐나다인 2세대 메이린(로잘리 치앙)이, 제 개성을 꾹 누르고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엄마 밍(샌드라 오)을 설득해 제 삶을 쟁취한 이야기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방향이 다르다. 에블린과 조이 사이에 중국 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라 할 만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 해야 조이의 중국어가 “갈수록 엉망”이 되고, 에블린이 좀처럼 따뜻한 말을 하지 못해 자식에게 외모를 지적하는 정도가 전부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긴장감은 문화적 장벽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불안감, 즉 ‘정착에 성공하지 못했다/부모에게 정착 성공의 증거가 되지 못했다’는 공포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 또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동시대 시노-디아스포라 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제 삶의 방식을 인정받거나 혹은 부모 세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식 세대를 주인공으로 세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페어웰> <메이의 새빨간 비밀>과 달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부모 세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다니엘 콤비(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가 자신들을 투영해 만든 캐릭터 조이는 부모에게서 자꾸 멀어지려 달아나고, 멀어져가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오히려 이민 1세대인 에블린이다.

그리고 에블린이 조이의 삶을 받아들이는 건, 쳇바퀴 돌 듯 세탁소와 세금 납부에 매몰되어 사는 초라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 이후에나 가능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자신들의 부모에게 바치는 러브 레터라는 다니엘 콤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감독들은 우선 모든 걸 희생해 제 것이라 할 만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 세대의 삶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삶도 인정받기를 노린 셈이다. 부모의 삶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야, 자식의 삶이 부모가 치른 헌신의 결과물이 되어야 하는 볼모의 굴레를 끊을 수 있으니까.

이제 막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 코리아-디아스포라와 비교해봐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방향이 다르다. 코리아-디아스포라는 아예 부모 세대에 바치는 송가 형식을 택함으로써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브리핑하는 방식을 택한다. 정이삭 감독은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성공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낯선 미국 땅에 정착하려 했던 부모 세대의 좌절과 환희, 아메리칸드림을 담아 <미나리>를 만들었다. 이민진 작가와 코고나다, 저스틴 전은 <파친코>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일본 내의 인종차별을 경유해 마침내 3세대를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에 진출시키는 한 한국계 가정의 생존 투쟁기를 들려준다.

반면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초라한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부모 세대가 살아온 삶을 흔쾌히 긍정하지만 그 과정을 공들여 예찬함으로써 부채감을 상속받는 것은 거부한다. 에블린의 삶은 에블린의 삶인 채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조이가 물려받아야 할 것이 아니니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선택한 방식은, 서로의 삶과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공존하는 방식이다. 에블린은 “그 어느 우주에 갈 수 있다 해도 난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조이의 체중 증가와 타투에 대한 불만을 함께 토로하는 사람이고, 조이 또한 에블린과 화해의 포옹을 나눈 뒤에도 에블린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어 살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 아슬아슬한 공존은 사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다정함”의 결과다.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언제 굴러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에 놓인 이민자 가정이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다정함으로 붙잡아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막대한 부도, <페어웰>과 <파친코>의 거대한 뿌리도, <메이의 새빨간 비밀> 속 레서판다 신령의 도움도 없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세계에선, 웨이먼드의 말처럼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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