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4 SF영화는 A24 호러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이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저예산이라 일반적 할리우드 SF영화의 스펙터클을 충족시킬 만한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다. 그래도 A24에서 나온 SF영화들을 모으면 의외로 긴 리스트가 나온다. 조너선 글레이저의 <언더 더 스킨>, 데이비드 미코드의 <더 로버>, 알렉스 가랜드의 <엑스 마키나>, 드레이크 도레무스의 <이퀄스>, 패트리샤 로젬마의 <인투 더 포레스트>,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의 <잇 컴스 앳 나잇>, 존 캐머런 미첼의 <런던 러브스토리>, 클레르 드니의 <하이 라이프>,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SF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리스트는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SF의 장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장르에 포섭될 수도 있다. <언더 더 스킨> <잇 컴스 앳 나잇>과 같은 영화들은 호러로, <런던 러브스토리>는 로맨스로 분류될 것이고 그 장르 팬들에게 어필할 것이다. 이 리스트에서 가장 친숙한 SF의 모양과 내용을 갖고 있는 영화는 의외로 프랑스 오퇴르(Auteur) 클레르 드니 감독의 <하이 라이프>다. 제임스 그레이의 <애드 아스트라>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우주여행 이야기인데, 겉보기엔 훨씬 하드 SF스러운 <애드 아스트라>보다 과학적 아이디어를 더 깊이 다루고 있고(물리학자 오렐리앙 바로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SF적 상상력도 풍부하다. 여기에 클레르 드니 영화라는 설명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모든 걸 수긍하게 되는 프랑스 아트 하우스 영화의 분위기가 들어가 있다. 아트 하우스 정취가 담긴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A24 영화의 표준이라고 할 만하다. 인간형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알렉스 가랜드의 <엑스 마키나>는 대놓고 하드 SF다. 종종 영화판 테드 강연이라는 소리도 듣고 정통 하드 SF에 대규모 시각효과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예로 불려나온다. 가랜드는 이 장르 안에서 자기 길을 닦아왔으니 굳이 A24 없이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었던 영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성공적인 A24 SF영화들과 공유하는 주제가 있다. 그건 정체성의 문제이다. <언더 더 스킨> <엑스 마키나> <애프터 양>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비인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거나 중요 소재로 놓고 이들의 인간적이지 않은 특성을 파헤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도 포함된다. <언더 더 스킨>과 <엑스 마키나>는 스칼렛 요한슨과 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비인간 주인공을 연기하게 하고 관객은 이들과 지구인 남성 캐릭터들의 관계에서 성적 긴장감을 읽지만 이들(특히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이 인간 여성과 같거나 유사한 욕망과 동기를 갖고 있는지는 100% 확신하기 어렵고 이는 지금까지 장르 클리셰 안에서 남성 캐릭터들이 당연한 듯 갖고 있었던 성적 권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2022년 개봉한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전 A24 SF영화의 단아한 절제미는 티끌도 찾아볼 수 없는 모든 게 과도한 멜로드라마지만 여전히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스터리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비인간의 정체성이 아니라 무한하게 갈라지며 수많은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평행우주를 통해 보는 20세기생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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