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10·19 여순사건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 발표 현장
2022-12-22
글 : 김수영
역사를 알리는 영화를 찾습니다

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에서 시작됐다. 1947년 3월1일, 무장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된 사건으로 제주는 이미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이듬해인 1948년 4월3일, 제주에서 항쟁이 일어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14연대 일부 부대원이 ‘동포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고 출동 명령을 거부한 1948년 10월19일, 여순사건이 시작됐다. 14연대 군인들은 여수를 장악한 뒤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소탕한다’며 우익세력을 처단했다. 이승만 정부는 반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세워 곧바로 진압에 나섰다. 14연대 군인들은 지리산으로 숨어 빨치산이 되었고 토벌군은 곧바로 여수, 순천 등 대부분의 지역을 탈환한 후 보복을 시작했다. 반란군과 동조했다며 지역민들을 빨갱이로 몰고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혐의가 있다고 손가락질만 받아도 즉결 처형됐기 때문에 ‘손가락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수, 순천뿐 아니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휘두른 폭력에 희생됐다. 1949년 이루어진 전남도 조사에서 총 1만1131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됐지만 실제 피해자 규모는 그 이상이었다고 알려진다. 10·19 여순사건 시나리오 공모전 장편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자 윤철중씨도 여순사건을 이렇게 전했다. “한국전쟁 때 고흥에 사셨던 할머니는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지내셨다고 한다. 그만큼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사는 동안 전쟁보다 여순사건과 5·18로 수많은 이웃들이 죽었다고 하더라.”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정부는 유족들을 연좌제로 묶어 감시하고 직업이나 진급을 제한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여순 반란사건으로 불리며 여순 지역은 반란의 고장이라는 오명도 참아내야 했다. 박정숙 전남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은 “중학교 역사책에도 여순 반란사건이라고 적혀 있던 기억이 난다. 모르는 사람들은 여순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인식했다. 반란이 아니라 항쟁이었던 여순사건의 정확한 명칭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도 여순사건 직후에 제정됐다. 한국전쟁으로 시작해 오늘날의 반공 체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순사건은 관계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2021년에야 관련 특별법이 마련되었다. 이에 발맞춰 순천시와 전남영상위원회는 여순사건을 알리기 위해 올여름 ‘10·19 여순사건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고 장편극영화 부문과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을 공모했다.

여순사건 알리는 데 출발점이 되고자

박정숙 전남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은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첫사랑-1989, 수미다의 기억> <소금-철도여성 노동자 이야기>와 한센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백아가씨>를 제작한 감독이다. 누구보다 영화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있기에 전남영상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여순사건과 관련된 창작물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지역에서 여순사건을 알리려고 애쓰는 사람은 많지만 영화나 문학으로 고민하는 창작자는 없더라. 제주 4·3의 경우 긴 시간 동안 영화도 나오고 연구가 되면서 알려졌지만 상대적으로 여순사건은 아직도 호남 지역의 동네 역사로 인식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공모전을 함께 추진한 박소정 여순10·19범국민연대 운영위원장도 “국가보안법, 연좌제 등 대한민국의 악법과 상처가 여순의 역사에서 만들어졌다. 일부 군인들의 반란사건으로 치부되어 국회와 정부에서 오랫동안 외면받고 뒤늦게 특별법이 제정됐다. 고령의 유가족이 거의 매일 세상을 떠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여순사건을 알리고자 시나리오 공모전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열린 공모전이라 응모작은 많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장편극영화 부문 수상작인 조유진씨의 <항쟁>과 장편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인 윤철중씨의 <1019 여순사건-그날의 기억>은 창작자가 오랫동안 여순사건을 고민한 시간이 담긴 작품이었다. <항쟁>은 평화로운 마을에 벌어진 여순사건을 꿈 많은 청년의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심사에 참여한 박정숙 사무국장은 “사실관계를 다루는 것이 역사라면 극영화는 역사 속의 사람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가 중요하다. 그 지점에서 <항쟁>은 인물들을 인상 깊게 그려냈다”고 평했다. <1019 여순사건-그날의 기억>의 윤철중씨는 오래전부터 유가족들의 증언을 기록해온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안을 제출해 공모전의 또 다른 취지인 아카이빙 면에서도 제격인 수상자였다. 박정숙 사무국장은 “나 역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제작지원을 받으면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공모전을 통해 창작자들에게 응원을 보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었다”고 덧붙였다.

2021년 6월29일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의 명칭은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다. 무엇이 시급한 일인지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다. 박정숙 사무국장은 “이제 시작이다. 여순사건을 다루는 더 많은 영화와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한다. 여순의 역사가 나의 문제고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여순사건 공모전이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여순 지역에서 시민운동으로 힘써왔던 박소정 운영위원장 등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공모전인 만큼 첫 번째 공모전은 “뿌리가 튼튼한 나무의 첫 열매”인 셈이다. “공모전이 더 널리 알려져 올해 심은 나무에 매년 좋은 열매를 맺길 기대한다”며 전 국민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 이어지는 기사에 수상자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사진제공 전라남도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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