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알고 봐도 놀라운 ‘아바타: 물의 길’의 시각효과, “디테일의 끝판왕”
2022-12-29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최길남, 김기범, 박영빈 VFX 슈퍼바이저 대담

- <아바타: 물의 길>을 각자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기술 20자평을 남겨본다면.

박영빈 “알고 봤지만 깜짝 놀랐다.” 개인적으로 <아바타: 물의 길>을 가장 오래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많은 장면을 여러 번 보았는데도 스크린으로 다시 보니 실제로 촬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비족과 함께 자란 스파이더(잭 챔피언)도 카메라로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몸이 전부 CG다. 그래서 스파이더가 나비족과 함께 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각적으로 너무 평온해서 감탄하면서 봤다. 비 올 때 나도 모르게 손으로 빗물을 가리게 되고. (웃음)

최길남 “디테일의 끝판왕.” 특히 크리처와 물 효과를 눈여겨봤다. 보통은 물 위의 현상이나 아예 물 아래의 일들을 보여주는데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사람이 해수면에 걸쳐 있는 장면을 내보냈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보통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작동하는 인터랙션이나 아주 작은 송사리까지 디테일에 온 신경을 쓴 느낌이 들었다.

김기범 “무한 삽질을 가능하게 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 감사.” <아바타: 물의 길>을 작업하면서 테스트란 테스트는 다 해봤다. 인류 역사상 이런 적이 있을까? (웃음) 이 정도의 인원과 예산으로 이렇게까지 테스트에 몰입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버리는 테스트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테크니션과 R&D 엔지니어에게는 경제 논리상 경험하기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아바타: 물의 길>은 달랐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낸 것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감사하다.

지금껏 이런 VFX 작업은 없었다

- 정글이 배경이었던 전편과 달리 <아바타: 물의 길>은 산호초 부족인 멧케이나족과 살아가는 제이크(샘 위딩턴)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속편에 드러나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길남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물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뛰어나다. 이번 <아바타: 물의 길> VFX 작업을 맡은 웨타 디지털에서는 현실적인 물의 양태를 구현하기 위해 과학자까지 대동해 물리적 분석을 했다.

박영빈 웨타 디지털은 완전 과학 연구소다. (웃음) 과학자와 학계 박사님들을 모셔다 실제 구름이 생기려면 습도와 압력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기압이 얼마일 때 어떤 모양의 구름을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렇게 얻은 값들을 하나하나 넣어 구름을 완성했다. 웨타 디지털은 현실을 재현하고 싶어 하는 회사다.

김기범 물 색깔도 그랬다. 합성 작업자가 색깔에 맞춰 그냥 파랗게 만든 게 아니라, 특정 지역의 바닷가를 기준으로 플랑크톤 양이 얼마나 되는지, 빛 반사가 얼마나 되는지 그 특성을 조사했다. 사실 이전에 작업한 영화들은 가장 비슷한 모습과 가장 최상의 상태로 흉내를 내왔다. 스크린상에서 시각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면 크게 문제될 게 없고, 또 그래야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바타: 물의 길>은 다양한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물거품 개발에도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다. 그러니 초반에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가 VFX 작업을 자연스러워 보이는 수준에서 마감한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과학적 논리를 그대로 구현하려 했다.

박영빈 실제 촬영 방식을 CG 작업에 차용한 것도 있다. 보통 수면 아래를 촬영할 때 오렌지 필터를 끼워야 예쁘게 나온다. 바닷속은 전부 같은 색으로 보이지만 빛 반사나 위치에 따라 톤이 다르다. 이 지점을 오렌지 필터가 보완해주면서 색감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래서 <아바타: 물의 길>에서도 렌더링 과정에 똑같이 오렌지 필터를 끼웠다. 바다를 촬영하는 조건과 똑같이 CG 작업을 한 거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렌더러 자체가 일반 RGB(빛의 삼원색으로 빨간색, 녹색, 파란색을 이용해서 색을 표시하는 방식)가 아닌, 사람 눈으로 바라보는 가시광선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기범 또 다른 한국 작업자 중에서 수치해석을 전공한 분이 있다. 이분은 딱딱한 오브젝트가 부딪히는 장면을 만드는 리지드바디 시뮬레이션(Rigidbody Simulation)으로 잔디밭 시퀀스를 진행했다. 보통 배경에서 눈에 잘 안 보이는 영역은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스크린 모서리까지 섬세하게 작업했다. 그랬더니 시뮬레이션이 터져버렸단다. 과부하를 이기지 못한 거다. (웃음) 결국엔 적절한 값을 하나하나 찾아낼 솔버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과정과 실험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끝없이 무한정으로 작업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물은 VFX에서 어떤 소재인가.

김기범 한마디로 비싼 소재다. 시뮬레이션이나 렌더링 과정에 들이는 시간 자체가 다른 효과에 비해 훨씬 오래 걸린다.

박영빈 컴퓨팅 연산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데 <아바타: 물의 길>처럼 리얼하고 자연스럽게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물에서 사람이 걸어나온다면? 그러는 순간…. (웃음)

최길남 시간과 노동이 배로 증가한다. 물에서 막 나온 머리카락이며 외형까지 신경 쓸 게 늘어난다. 물이 유난히 어려운 이유가 있다. VFX에는 ‘파티클’이라고 점을 날리는 방식이 하나 있고, 또 연기를 내는 방식이 있다. 특히 이 연기 작업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기서 파티클과 연기를 합쳐야 물이 되는데, 물이란 게 반사와 굴절을 일으키지 않나. 그 속성을 함께 연산하면서 또 해수면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드러내야 해서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캐릭터가 나오면 난반사까지 더해줘야 한다. 차라리 비슷한 배경의 물속이 상대적으로 낫다. 물과 밖의 경계되는 부분이 나오는 순간 상황이 복잡해진다.

박영빈 엔지니어가 들으면 깜짝 놀랄 비밀이 하나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은 물과 캐릭터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렌더링으로 만들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쿠아맨>의 경우 캐릭터를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만들어서 배경이 될 물을 합성하고 색 변화를 주면서 합치는데, <아바타: 물의 길>은 진짜처럼 만들려다보니 분리해서 렌더링할 수 없었다. 분리하는 순간 이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길남 그게 가능한가?

김기범 그것만 2년 걸렸다. 그래서 내가 제발 분리해서 렌더링 걸자고 계속 설득하기도 했다. (웃음)

김기범 012VXR 대표, CG 감독.

최길남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식탁 위에 베이글과 샌드위치와 커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들을 합성하려면 베이글, 샌드위치, 커피를 각각 따로 작업해서 합쳐야 한다. 그래야 샌드위치 색깔을 바꾸거나 베이글 위치를 옮길 때 그것만 변경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바타: 물의 길>은 그 자체를 통째로 찍어냈다는 거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작업인데 딥 컴퍼지팅이라는 기술로 전체 요소를 통제했다고 보면 된다. 합성 분야에서는 없던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없다.

-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장면이 하나 있다. 멧케이나족의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해 스킴윙을 타려는 제이크가 스킴윙 손잡이 끈을 동여매는 장면이다. 끈 매무새를 고치는 과정에서 물이 살짝 튀긴다. 이 장면에 관해 이언 휴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지금까지 물 CG는 광활한 대양을 보여주는 게 보편적이었는데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인물이 무언가를 하면서 한쪽 구석에서 물이 첨벙거리는 모습까지 한 프레임에 담았다”라며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박영빈 그 장면은 미국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엄청 난리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로 촬영한 거다’, ‘CG다’ 하면서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심지어 이게 CG인 걸 알면서도 나 역시 영화를 볼 때 헷갈리더라.

최길남 사실 그 장면의 난이도가 영화 전체를 봤을 때 아주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순간조차 디테일을 살린 덕분에 영화 전체가 진짜처럼 느껴진다. 가까이 확대한 장면의 디테일이 이 정도라면 넓은 화면의 퀄리티가 어떨지 자연스레 예측되기 때문이다.

김기범 대부분의 장면은 레퍼런스가 있다. 이런 장면은 스탭들이 실제 촬영을 해서 똑같이 구현해내려 했을 것이다. ‘똑같이’가 중요한 거지. (웃음)

최길남 비슷한 맥락의 느낌을 받은 작품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다.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시저가 계속 앞으로 쭉 나아가는 장면이 있다. 시퀀스가 굉장히 길다. ‘이 정도면 끊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다. CG는 길게 나오면 나올수록 가짜인 게 티가 나기 때문이다. 비교적 간단한 장면에 높은 퀄리티를 이끌어내니 남은 영화에 힘을 줄 수 있었다.

박영빈 내게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그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숲속에서 배우들이 모션 캡처 슈트를 입고 촬영하면서 빛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라이팅에 관한 레퍼런스를 쌓아온 게 <아바타: 물의 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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