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도 갈아 신었고 끈도 새로 묶었다. 이젠 <미끼>로 달려가보려 한다.” 군 복무와 재충전에 충실한 5년을 보낸 장근석이 이어 달릴 준비를 마쳤다. 올해로 경력 31년차인 그는 지금까지 아역 모델, 배우, 가수, 라디오 DJ, MC 등 다양한 트랙의 경기를 지나왔지만, 이제 막 예열 과정을 거친 신인 선수처럼 생동감 넘치는 설렘을 내비쳤다. 본능적으로 의문과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는 형사 구도한이 된 그는 이야기가 감춰둔 암막을 거두고 비밀과 진실의 간극을 좁힌다. 마침내 장근석의 시간이 왔다.
- 5년간의 공백을 깨고 복귀작으로 <미끼>를 선택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부터 가슴 뛰고 설렜다. 지금까지 쌓아온 익숙한 이미지와 정형성을 깨는 게 내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였는데, 이 작품을 통해 나를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구도한 형사는 징계받고 있던 와중에도 살인 사건이라는 말 한마디에 본능적으로 현장으로 돌진하지만, 동시에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강조하기도 한다. 처음 인물 분석에 어떻게 접근했나.
=표면적으로는 구도한이 이성적인 형사로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감성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 서로 다른 두면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시청자를 설득하는 게 목표였다. 남부러울 것 없이 멋지게 살던 변호사가 어떻게 극악한 살인범만 생각하며 살게 되었는지 개연성을 자연스레 녹여내고 싶었다. 특히 <미끼>는 장르성이 강한 작품이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몰입의 밀도가 중요하다. 촬영하면서도 어떻게 구도한이 긴장감을 이어갈지 고민했다.
- 사실 장근석 하면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하게 떠오르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수염도 기르고 주로 어두운 톤의 의상을 고수한다. 구도한을 표현하기 위한 외형적 변화가 눈에 띈다.
=티저와 예고 포스터가 나가고 주변으로부터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 진짜 수염이냐고. (웃음) 일상에서도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처음이긴 하다. 분장감독님과 의논하면서 메이크업을 크게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억지스럽게 고독한 형사를 그려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도 거울을 거의 안 봤다. 나의 집착을 버리는 것도 중요했다.
- <보이스> <손 the guest>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등 미스터리 스릴러를 다뤄온 김홍선 감독과 함께했다. 감독과 논의한 점이 있다면.
=완급 조절을 어떻게 유연하게 할 수 있을지 이야기했다. 도한은 자신의 응어리나 감정을 외부로 발산하는 유형의 인물은 아니다. 자기 안의 내적인 변화를 감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이 표출의 정도를 어떻게 다룰지 감독님과 함께 고민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간단한 장면조차 눈동자의 떨림이나 비언어적 장치를 더해 메시지의 폭을 넓혀나갔다.
- 작품에 대한 설렘과 벅참이 느껴진다.
=<미끼>는 내게 의미가 깊다. 내가 왜 배우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다시금 설명해주고 내가 나를 뛰어넘을 도전의 기회를 주었다. 아직도 첫 촬영 첫 테이크를 잊지 못한다. 첫 대사의 질감을 여러 감정으로 나누어 표현하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만약 내가 구도한을 멋지게만 보여주려 했다면 그거야말로 어릴 적 나의 별명이던 허세와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구도한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그의 전사와 설정에 대해 더 고민하고 납득하려 한다.
- 구도한은 혼자 움직이고 혼자 문제를 처리한다.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세상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이지만 동시에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구도한이 외강내강형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는 극중에서 밥을 먹지도 치아가 드러나게 웃지도 않는다. 세상 따위에 관심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구도한을 연기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깨달았다. 변호사에서 형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역사가 있지만 오직 개인의 복수로 끝내지 않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까지 도와주려 나선다. 결국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와 아픔이다. 그래서 눈빛 조절이 필요했다. 호수처럼 젖어 있는 눈빛. 왜 이런 극악무도한 세상에 들어오길 자처했는지 그 틈과 여백을 나타내려 했다.
- 2016 SBS 연기대상에서 <대박>으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고 나서 “서른이 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이젠 나만의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20대 후반엔 30대가 된다는 것에 항상 겁이 났다. 30이 주는 이상한 압박감이 있지 않나. ‘너는 진짜 남자가 돼야 해,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해야 해’라고 온 세상이 요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된 1월1일엔 술이 안 깬 채로 어제의 나와 똑같더라. (웃음) 서른일곱이 된 지금은 나이로 인해 초조해하지 않는다.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압박으로부터 초연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여유가 30대 후반 들어선 이점 같다. 다만 어떤 일을 하든 적당하게 했다는 소리는 여전히 듣고 싶지 않다.
- 어린이 드라마 <요정 컴미>와 라디오 <장근석의 영스트리트> 등 많은 대중이 어린 장근석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추억한다. 이런 연결 고리가 배우 장근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나 또한 문화가 추억의 힘이 된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기쁘다. 배우 일을 30여년 해온 만큼 세대에 따라 나를 기억하는 모습이 다를 것 같다. 누군가는 라디오 DJ로, 누군가는 <프로듀스101>의 MC로 장근석을 떠올릴 것이다. 과거를 함께해온 친근함과 또 앞으로의 새로움을 계속 연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계속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