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미끼’ 이엘리야, “몰입의 예술”
2023-01-27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이엘리야가 연기하는 <미끼>의 천나연은 과거 노상천(허성태)의 사기 피해자이자 지금까지 사기 사건의 진상을 캐고 있는 기자다. 그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수십개의 명함에서 알 수 있듯 천나연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은 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간 이엘리야도 천나연 못지않은 다양한 직종의 명함을 모아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44부 속기 실무관(<미스 함무라비>), 국회의원 6급 비서(<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정한일보 사회부 기자(<모범형사>)까지 주로 유능하고 야무진 ‘일잘러’로 존재감을 보였다. <미끼>에서 천나연은 기자로서의 모습보다는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의지와 태도가 돋보이는 인물이다. 데뷔 10년, 천나연과 같은 열정과 간절함으로 다시 한번 발돋움하고 있는 배우 이엘리야를 만났다.

- 앞머리 자른 모습은 처음 본다. 단발머리도 천나연 캐릭터에 맞춘 건가.

=앞머리를 처음 잘라봤다. 올해 회사를 옮기고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기분 전환차 잘랐다. 이전보다 더 의욕적이고 도전적인 마음을 갖고 싶었다. 이후에 <미끼> 미팅을 했는데 나연이라는 인물과 내 헤어스타일이 딱 맞아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앞머리가 있는 단발머리로 촬영하게 됐다.

- <미끼>의 대본을 읽고 어떤 점에 끌렸나.

=배우들은 항상 무언가 막연하게 기다려야 되는 시기들이 있잖나. 이번엔 나에게 어떤 삶이 올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게 된다. 배역을 맡는 일은 내 선택이라기보다 어떤 캐릭터가 나를 선택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미끼> 대본을 읽었을 때 사실 조금 힘들었다. 나연의 가족 전체가 노상천의 사기로 큰 피해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대본에 담긴 감정이 너무 깊었다. 내가 이 감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지만 대본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나더라. 이미 나연의 외로움과 아픔이 감정적으로 느껴졌고 이번에는 나연의 삶이 내게 왔구나 생각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라 진실을 밝히겠다는 나연이의 꿋꿋하고 강인한 마음과 잘 맞았다.

- 인터넷 매체 기자 천나연은 여러 직종의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하려고 한다.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주고자 했나.

=나연은 몰두해 있는 사람이다. 사기 범죄를 밝히겠다는 명확한 목표 하나에 몰두한 사람이라는 것을 외형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어떤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 옷을 갖춰 입거나 구두를 신고 다닐 리 없다. 촬영할 때 헤어 드라이도 아예 하지 않았다. 눈빛이나 말투를 통해 나연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드러내려 했다.

- <미끼>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천나연은 과거에 있었던 노상천의 사기 사건과 현재 광역수사대 구도한 형사(장근석)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한다. 커다란 이야기 속에서 천나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봤나.

=<미끼>는 악을 대변하거나 설득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선의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욕심을 부리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말하지만 피해자들 중에는 그저 좀더 나은 삶을 꿈꾸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나연이는 드라마에서 선의를 상징하는 인물이고 시청자가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거대 언론사의 기자나 국회 보좌관을 연기했었는데 그때는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을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면 이번에는 나연이 지닌 사연과 내면의 강인함을 잘 드러내려고 했다. 사기 사건은 살인 사건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방치되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구도한은 오로지 살인 사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나연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나연이 기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 방금 언급한 대로 기자 혹은 보좌관, 속기실무관 등 다양한 배경에서 일 잘하는 직업인을 연기해왔다.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강인하고 똑 부러진 이미지를 기대하는 것일까 혹은 배우로서 그런 캐릭터를 선호하나.

=주어진 기회 안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향하거나 선호한다고 할 수는 없다. 평소 관심사나 활동이 외향적인 편이 아니다.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독서를 즐겨하고 유일하게 즐기는 바깥 활동은 강아지 산책이다. 이런 성향이 20대부터 점점 응축되다보니 나를 보는 사람들도 내가 그런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본 게 아닐까. 이제까지의 캐릭터와 성향도 나와 같지만은 않다. 밝은 사람은 맞는데 낯을 많이 가린다. 외향적인 사람들을 보면 부럽지만 나는 그냥 나로서 만족한다.

- 함께 작업한 허성태, 장근석 배우와는 어땠나.

=허성태 선배님은 현장에서 마주친 신이 없다. 극에서 나연도 노상천을 머릿속으로만 떠올리기 때문에 가끔 세트장에 선배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할까 참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선배님을 노상천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인사를 드렸더니 정말 젠틀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장근석 선배님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항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밝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분이다. 무거운 감정을 연기할 때도 선배님 덕분에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 데뷔한 지 10년이다. 악역부터 다양한 직업인의 모습까지 점점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무엇이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웃음) 예전에는 악역을 주로 맡다보니 말도 트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쟤는 아마 저럴 거야’ 하고 지레짐작하는 시선이 있었다. 20대 때 악역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악역을 멋있게 잘하면 오히려 칭찬을 받잖나. 예능을 통해 연기 외적으로 나를 드러내보기도 하고 <미스 함무라비>나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선보인 모습을 통해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느낌이 든다. 덕분에 다양한 역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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