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가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고 첫 상영을 마친 뒤, 포르투갈에서 온 어린 청년이 정주리 감독에게 조용히 다가와 한마디를 건넸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높은 취업률을 달성해야 생존할 수 있는 학교와 교육 체제의 주문대로 소희(김시은)와 친구들은 현장실습에서 차가운 현실을 직면한다. 누구도 보호해주지도 대신해주지도 않는 산업 현장에서 정주리 감독은 어린 세대의 심연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2017년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스스로 저수지에 투신한 실화가 <다음 소희>의 모티브가 되었다. 어떤 점에 영향을 받았나.
=제작사로부터 이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처음 받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죽음을 부른 실습-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 편을 보았다. 기가 막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분노하는 차원을 넘어 지적 호기심 같은 게 생겨났다. 아이들이 왜 이런 곳에서 일해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학교는 공적 시스템 아닌가.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내몰았다는 생각에 납득할 수 없어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실제 사건을 영화에 어느 정도 반영하려 했나.
=50% 정도. 1부에서는 소희가 일을 시작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그린다. 극적인 내용을 더한 2부에서는 취업률에 좌지우지되는 학교나 교육청의 모습을 보여주며 또 다른 현실을 더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고민도 컸다. 이 사안을 모든 특성화고등학교의 문제로 일반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영화의 현실성을 높이려 했다. 모든 문제를 대변하진 않지만 이 또한 현존하는 구체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실제 사건이 지닌 정보 공백만큼 영화도 빈틈을 갖고 있다. 실제 사건에서 CCTV가 없어 정확한 정황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영화 또한 소희가 결심을 실행하는 장면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또 소희가 자신의 심정을 직접 고백하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소희는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동시에 내가 다 알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연출자로서 다 안다고 단언하려 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촬영을 하는 동안 그런 자세를 견제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관객도 소희의 마음과 감정에 바로 공감하기보다, 천천히 짐작하고 곱씹고 자신을 반영해 돌이켜보면서 이해하길 바랐다.
-소희는 굉장히 저돌적인 성격의 아이다. 곱창집에서 아저씨에게 바락바락 소리지르며 맞서 싸우기도 하고, 친구에게 직설적으로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우울해지고 조용해지는 감정적 변화를 보인다.
=그렇게 씩씩했던 아이가 결국 혼자 죽는다. 그 결정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미묘하게 변해가는 감정이 필연적으로 드러나야만 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설계했다. 영화 바깥에 있는 사람들도 소희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납득하는 게 중요했다. 시나리오에 구체적인 지시를 넣은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감정선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녹여내려 했다. 현명한 배우들이 그것들을 잘 흡수해줬다.
-영화 속 소희는 무척 외로워 보인다. 일터에 내몰려서가 아니라 우리가 소희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 손목 그었을 때 소희가 뭐라고 했어요?” “선생님, 소희가 무슨 일 하는지 아세요?” “어머니, 소희 춤 추는 거 아세요?” 유진(배두나)이 묻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다음 소희>는 한 사람이 어떻게 고립돼가는가, 또 고립에 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다루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변인 사이에 나타나는 정보 결핍을 두고 누군가는 “부모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쉽게 비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당찬 소희가 왜 말하지 못했는지 생각해볼 질문이기도 하다. “회사 그만둘까?”라는 소희의 말을 어머니가 못 들었을 때, 한번 더 크게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소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해 친구와의 대화에서 소희가 스스로 답한다. “일은 아무나 그만두냐?”라면서. 이제 와서 일을 관둘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씩 누적된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