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사정을 추적해가는 유진은 그와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의 얘기를 회피하거나 형사부 사무직만 담당했다는 대사를 통해 소희에게 이입할 만한 그만의 속사정이 있는 듯해 보이지만 뚜렷하게 전사가 드러나진 않는다.
=유진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인물이다. (웃음) 그런데 유진의 정보를 모른다는 게 영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딱 그 정도의 궁금증을 일구는 인물이길 바랐다. 유진이 영화 중간에 등장하잖나. 관객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히면 중심 맥락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이 죽은 시점에 등장해서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축으로 그려내려 했다. 형사 과장이 유진의 어머니 얘기를 꺼내려 하자 유진이 “저 바로 가봐야 해요” 하면서 빨리 가버린다. 돌이켜보면 그게 내 심정이다. 지금 빨리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데! (웃음)
-유진은 경찰, 콜센터, 학교, 교육청 등을 헤집으면서 그들의 책임을 묻는다. 헛소리하는 사람에겐 주먹을 날리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유진은 정주리 감독의 분신인 걸까.
=많이 투영돼 있다. 한편으로는 내가 못하는 것을 유진이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도 했다. 다만 연출자의 대변자이거나 아바타로 그려져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나 반응을 유진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직업적으로 정황을 살피고 대응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해주고 행해주길 바랐다.
-<다음 소희>라는 제목은 소희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현실에 또 존재할 수 있다는 미래적 의미를 담기도 하지만, 소희 곁의 친구들이 ‘다음 소희’로 보이기도 한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백화점 안내원이 된 친구나 학교에서 이탈해 맞지 않는 먹방을 억지로 하는 친구가 그렇다.
=영화가 의도한 정확한 맥락이다. 2부에서 소희와 연락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유진은 그 친구들을 한명씩 만난다. 그 여정이 바로 유진이 다음 소희들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태준(강현오)을 만난 순간 유진도 그 감정을 강렬하게 느꼈을 거다. 이 장면은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현장실습에 관한 하나의 사례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시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일을 맡길 때에는 성인만큼의 책임감을 강조하고, 돈을 줄 때에는 고등학생 실습생이라는 것을 꽉 붙잡은 느낌.
=그 지점이 많이 드러나길 바랐다. 새로 부임한 콜센터 팀장과 싸운 소희에게 선생님이 “이게 다 교과 과정의 일부인데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결국 한마디로 ‘너의 행동은 무례하고 학생은 그러면 안된다’는 뜻이다. 참 뻔뻔한 말이다. 선생님 입장에선 자연스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몇 발자국만 떨어져 보면 정황상 이치가 맞지 않는다. 또 사건을 수사하는 유진에게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은 “이게 현실이에요”라는 말이다. 결국 각자의 이해관계와 처한 사정이 다르고 저마다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두 악의를 갖고 일부러 그렇게 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커다란 톱니바퀴 하나가 이들 사이에 돌아가면서 희한하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게 참 씁쓸하다.
-팀장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따지고 보면 새로 부임한 냉혹한 팀장이 더 현실과 가깝다. 양심 있고 고단할지언정 실습생의 방패막이 되어주는 전 팀장이 왜 영화에 필요했을까.
=조사를 하다가 실제 사건의 그 친구가 일했던 콜센터에서 3년 전 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화적으로 둘을 연결하면 어떨지 궁금했다. 제목이 상징하는 바도 있었다. 팀장이 비슷한 일을 겪고 커다란 개선이 없었기 때문에 그다음에 소희가 희생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오른 뒤로 프랑스 아미앵국제영화제, 중국 핑야오국제영화제, 일본 도쿄필맥스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다. <다음 소희>는 한국 제도의 문제를 다루는데 어떤 점에서 세계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 신기하게도 각 나라에서 젊은 세대의 친구들이 이 영화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가깝게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라마다 교육 체제와 분위기, 상황 등이 다를 텐데도 소희가 느꼈을 압박과 고통을 이해하고 있었다. 개별적인 특수사례가 아니라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처럼 받아들이며 깊이 공감하더라. 이렇게 젊은 세대를 몰아세우며 책임지우는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더 오랜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