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받아둔 주소지로 걸어갈수록 향내가 강하게 진동했다. 연기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정희진 편집장’은 현관문을 활짝 열어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우엉차와 커피, 하루 종일 먹어도 동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다과를 내어주고는 아침에 천연 제초제인 빙초산을 쏟아버리는 바람에 급히 향을 피웠다고 별일 없는 안부 전하듯 말했다. 그 옆으로 거실 한편에 서로 빽빽이 몸을 붙인 화분들이 작은 화단을 이루고 있었다. 점심 무렵 시작한 대화는 하루가 끝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2023년, 대중에게 오랫동안 여성학 연구자로 소개되었던 그에게 새 직함이 하나 생겼다.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의 편집장이다. 한국 현실에 밀착한 연구로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공로한 <페미니즘의 도전>(2005)이 세 차례 개정판을 펴낼 동안 그는 “여성주의의 확산과 변화, 군 위안부 운동 논란, 팬데믹…. 믿어지지 않는 현실들이 공기를 채우고 있”는 현재에까지 당도했고, <아주 친밀한 폭력-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처럼 읽기> <혼자서 본 영화>, 5권의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등 총 10권의 단독 저서가 독자를 만났다. 그외에도 “25년간 평균 하루 원고지 10매 이상” 썼으며, “논문, 영화평, 서평, 해제, 각종 저널 기고문과 연재물 등 시와 소설 외에 거의 모든 장르의 글”(<정희진의 공부> 1월호)이 그를 거쳐갔다.
정희진의 언어를 활자로는 자주 접할 수 있으나 말로는 듣기 힘들어 갈급했던 이들에게 <정희진의 공부>는 신나는 파문(波紋)이다. 몰입하면 머릿속의 사유를 따라잡느라 2배속 재생을 의심케 할 만큼 빨라지는 말의 속도, 예측 불허로 터져나오는 호탕한 웃음, 고통과 절망이 떨림으로 전해져 오는 정희진의 목소리는 그 형식이 곧 내용이 되어 우리 마음을 해제시킨다. 특히 오랜 영화광으로도 알려진 그가 마련한 코너 ‘한 장면의 인생’은 상투적 대사나 지나가는 한순간을 낚아채 그 펄떡거리는 몸을 재인식하는 독창적 해석으로 가득하다. 예술의 파편으로부터 사회구조를 끄집어내 여성학적 관점을 더하는 선생의 행로를 따라가면 청취자들은 기습적으로 터지는 웃음과 주책맞게 차오르는 눈물을 선물받는다.
지금 <정희진의 공부> 댓글창은 나이와 계급, 고통과 몸, 커피와 부엽토, <머니볼>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사도 바울, 캄보디아와 아랍에미리트를 가로지르는 여사님의 행보에 관한 저마다의 ‘훌륭한 언설’로 복닥거린다. 편집장 역시 이치로99라는 닉네임으로 자주 출현해 공론장의 일원을 자처하고 있다. 푸근한 이웃 주민과 괴로운 지식인의 자리를 끊임없이 횡단하는 우리 시대의 공부인(工夫人), 정희진의 안부를 전한다.
*이어지는 기사에 <정희진의 공부> 정희진 편집장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