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스트 없이 이어지는 1인 방송, 자유로운 전개, 노골적인 풍자 등에 반응한 청취자들은 <정희진의 공부>를 일종의 스탠드업 코미디로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당사자인 저는 심각합니다. (웃음) 제가 강의를 오래 했잖아요? 생계의 문제로. 대학교수든 죄수든 제 강의를 들을 때 조는 사람은 없었던 건 사실이에요. 가벼운 얘길 하는 것도 아닌데 절 보고 다들 웃으니까 이젠 그냥 제가 그런가보다 생각하죠. 내향적인 인간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사실이고요. 20년 동안 삭발하고 (선생은 이 대목에서 쓰고 있던 두건을 잠시 슬쩍 들어올렸다) 별다른 사회생활 없이 집 밖으로는 잘 나가지도 않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쓸데없이 아는 게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제가 팟캐스트에서도 그랬잖아요, <정희진의 공부>가 ‘당나귀 귀, 아니 당나귀 숲’ 같다고.
- 네, 대나무 숲이요. (웃음) “선생님이 계신 곳이면 당나귀 숲도 좋다”는 댓글이 있던데요.
= 고마워라!
- 대면 인터뷰에 응해주시는 경우가 그동안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번 만남은 영화광으로서 <씨네21>에 대한 애정 때문인가요?
= 칼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로’를 꽤 오래 썼죠. <씨네21>은 창간호부터 챙겨 봤어요. 지금도 표지가 선명히 기억나는데…. 한때 의욕이 좀 있을 때에는 ‘내 인생의 영화’ 코너에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인생의 영화란 건, 개인의 맥락이니까. 그게 좋았습니다. 근데 난 안 불러주더라고요! 혼자서 써둔 것도 있어요.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소더버그가 26살 때 이 영화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그 나이에 인간에 대해 이런 통찰을 할 수 있다니 충격을 받았죠. 제 어머니가 수녀였다가 국어 선생님이 되셨는데, 나중에 자식들한테 선생님이나 교수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진짜 사상가는 소설가”라고요. 아니, 누가 소설가 시켜준대요? (웃음) 이문열, 황석영을 읽으면서 저는 일찍 주제 파악을 했어요. 그런 제 인생의 맥락 속에 소더버그의 작품도 있는 거지요. 이런 사람이 있는데 나까지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겠구나, 싶은.
- 영화는 보통 언제, 얼마나 보시나요?
= 지금도 하루에 한두편은 꼭 봐요. 그러나 제 인생에 특히 영화를 몰아 본 시기가 있었는데, 석박사 논문을 쓸 때였지요. 학교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다가 막차를 타려고 밤 11시에 나오면 12시쯤 집에 도착해요. 너무 피곤하고 각성된 상태라 잠이 금방 안 오니까 그때부터 비디오를 두번 ‘때리면’ 새벽 4시. 그즈음 몸이 견디질 못해 아침 10시까지 곯아떨어졌어요. 6시간을 푹 자고 다시 오전 11시까지 학교 출근. 매일 그 생활을 반복했어요. 논문 쓸 때 영화를 제일 많이 본 셈이죠. 영화 보는 시간은 제게 그 어떠한 사회생활이나 노동이 없는, 오직 나만을 위해 집중한 시간이었어요.
- 거실 벽에 신문에서 오려낸 박해일 배우 사진이 붙어 있네요.
= 박해일씨 보려고 <헤어질 결심>을 본 거죠. 영화적으로 너무나 잘 만들어졌지만, 저한테 <헤어질 결심>은 사실 심플한 영화예요. ‘한남’과 이주 여성 노동자의 사랑이죠. 그래서 제가 본 가장 웃긴 리뷰는 해준(박해일) 캐릭터를 향해 “마지막 그 바닷가에 몇초나 서 있었냐”고 한심하게 질타하는 얘기였죠. (웃음) 이 영화에서 사랑은 여자에게 훨씬 중요하죠. 한국 사회에서 경찰로 사는 남자한텐 최소한의 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남자가 자꾸만 여자의 사랑을 진심이 아니라고 의심하니까 여자는 죽어서 보여주죠. 그러니 이 네티즌 리뷰처럼 양심 있는 남자라면 거기서 같이 죽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바닷가에 같이 뛰어드는 게 정상이지, 뒤늦게 해맑은 척하지 말라”는 말에 나도 한참 웃었죠.
- 젊은 감독들의 한국영화도 챙겨 보세요?
= 틈틈이 봅니다. 그중 이제는 나와 시대 경험이 확실히 다르다고 느끼게 해준 영화가 <소공녀>였어요. 딸하고 그 영화를 두고 이야기하다가 싸웠는데,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았거든요. 불편해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곤을 낭만화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데가 있죠. 가난을 취향화하고 낭만화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미소(이솜)가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남의 집에 들어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 캐릭터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소구력을 가져요. 왜? 극복하기 힘든 루저성을 합리화하고 심미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나라 20대 자살률이 전세계 최고입니다. 무려 지난 17년 동안. 당장 잘 곳이 없는데 위스키를 마시겠다는 건 미래가 없다는 확신이에요.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라 도저히 ‘멋’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죠. 최고로 웃긴 건 미소의 남자 친구(안재홍)인데 이 남자는 최소한의 미래를 생각해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해 번 돈으로 미래에 같이 살 집을 구하고 싶다고. 이 영화에서 미래를 그리는 건 왜 남자 몫일까요. 이건 순전히 제 입장의 해석입니다.
- 영화 비평집 <혼자서 본 영화>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를 보면 어떤 장면에 대한 최고의 감탄으로서 눈물이 터지고 만 순간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문자 그대로 영화를 보며 요즘도 자주 울곤 하시나요?
= 영화는 동일시의 매체니까요. 재현 장치가 화려하니까 소설과 비교해서 동일시가 쉽게 이루어지죠. 그건 사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쓴 건데, 더이상 실제 눈물은 안 나오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이 속에서, 여기서 우는 거죠. 심장 사이로 맑은 물이 싹 흐르는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흐느낌 같기도 하고 내 몸이 울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내 눈물이 마른 것은 아마 우울증 문제도 있겠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남편까지 세 사람의 오랜 간병과 임종을 차례로 겪었기 때문일 거예요. 말기 암과 루게릭병, 그리고 백혈병을 거치면서 전 인간이 그런 극도의 고통에 처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식도 마비로 8개월간 연명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충격적인 고통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되면 그냥 멀뚱히 쳐다보게 되더군요. 몸이 굳어버리는 거지요. 어쨌든 저는 이제 영화를 볼 때 거의 울지 않아요.
- 눈물에도 총량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 그 말 좋네요. 어렸을 땐 많이 울었죠. <밀양>의 말미에 미용실 소녀가 급하게 밥 먹다 말고 나와서 신애의 머리를 잘라주는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 이제 눈물은 아니고 그냥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몇 시간씩 있게 됩니다. 그 애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 2022년 12월 출간된 <밀양> 각본집에 ‘피해자의 오만과 숭고한 패배’라는 에세이가 실렸습니다.
= <밀양>으로만 세번 썼는데 이번에는 완벽한 절망 속에서 썼어요. 우리는 모두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살지만 신자유주의는 특히 사람들이 피해마저도 전유하게 해요. 그 가운데 진짜 피해자는 구조 속으로 사라집니다. 전 <밀양>을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한 억울한 인간이 신과 대적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읽었어요. 이창동 감독은 자녀를 잃은 슬픔을 갖고 계신 분이잖아요. 다들 조심스러웠을 텐데 제가 대놓고 신애의 행적을 ‘피해자의 오만’이라고 못박아버린 게 오히려 위로가 되셨나봐요. 편집자의 전언을 듣고 기뻤습니다. 전 <박하사탕>은 별로 안 좋아하고(웃음) 다른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모두 좋아하는데, 한국 사회를 깊이 이해하는 가장 윤리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기사에 인터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