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땠나.
조은지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어떤 감정 상태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처음에는 승진과 필재 캐릭터에 매료됐고 둘의 관계를 응원하고 싶더라. 최근에는 은영이라는 캐릭터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자신의 진심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어떤 극단의 감정에 이르러서야 읍소하듯 말하는 모습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실제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나의 어떤 모습을 들킨 기분도 들었다. 감독님이 나의 이런 면을 어떻게 캐치했을까 싶고.
박종환 감독님이 특정 신이 아니라 전체 신을 롱테이크로 간다고 처음부터 말했고 6명의 배우가 함께한다는 걸 알았다. 이 특수한 공통 상황에서 다른 배우들의 생각이나 연기가 너무 궁금했다. 은영이 혼자 등장하는 택시 장면처럼 나는 안 나오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많다. 생각보다 배우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촬영 방식이라는 걸 느꼈다.
- 10여분간 원숏, 원테이크로 촬영된 각 신에서 애드리브 없이 긴 대사를 소화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다니 흥미롭다.
박종환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내가 좋아하게 될 영화라는 걸 직감했다. 촬영할 때 배우들이 하나의 신에서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걸 볼 때도 좋았고, 완성된 영화는 더 좋았다. ‘맞아, 나 이런 영화를 보고 싶었어’ 싶더라. 나에게는 장면 장면이 흡인력 있게 느껴졌다.
조은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는데, 옆자리에 앉은 종환 배우가 계속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거다.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같이 참여한 배우가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더라.
- 조은지 배우는 은영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부분을 느꼈다고 했는데 박종환 배우는 어땠나. 승진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 한마디로 대화의 온도를 훅훅 바꾸는 인물이다.
박종환 나와도 닮은 모습이 있다. 승진을 연기하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매력 있는 인물이라 작업이 끝난 후에도 승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을 정도였다. 승진은 상대방의 말에 바로바로 답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혼자 곱씹는다. 어떤 순간에는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니?”, “세상엔 참과 거짓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르기도 한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고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면을 내 안에 간직하고 싶다.
조은지 얼마 전에 ‘은영과 승진의 컨버세이션’이라는 스페셜 영상을 찍었을 때 내가 종환 배우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는 왜 알 듯 모를 듯 사람 안달나게 하려는 것 같지?” 나는 이미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 종환 배우를 알면 알수록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승진을 그렇게 닮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다.
- 남자들은 “입만 열면 구라야” 하며 엉뚱한 질문과 시시껄렁한 대답으로 자기 속내를 드러내고 여자들은 “나 힘이 없고 무력해”라고 자기 감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한다. 두 사람의 실제 대화 방식은 어느 쪽에 가깝나.
박종환 영화 속 남자들처럼 대화하진 못하지만 그런 대화를 누군가와 해보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시시콜콜한 말들. 누군가에게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는 말들이 좋았는데 특히 숲속에서 은영과 연기할 때 신이 났다. “사람 속내를 왜 알아야 돼?”, “나 속이 텅텅 비었어. 옥수수깡이야” 하며 승진이 은영의 속을 뒤집어놓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조은지 롱테이크로 내가 이 대사를 다 해냈다니! 나는 이런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웃음) 나는 영화 속 남자들처럼 이야기한다. 겉도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나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있고 말하고 나서 후회도 많이 한다. 연기하면서 은영은 왜 이렇게 구구절절 자기 감정을 드러낼까 싶기도 했다. 남편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은영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기 모습이 있고 친구들에게 듣고 싶은 어떤 대답이 있는 듯 보였다. 그 장면에서도 은영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 리액션을 더한 부분은 없나. 택시 안에서 곶감을 먹여주는 장면도 대본에 있었을까.
조은지 대본에 있었다. 그때 술 취한 채 택시에 탄 설정이라 감독님께 요청해서 맥주 한캔을 사달라고 했다. 너무 빠르게 원샷했더니 취기가 확 올라와 최종적으로 무슨 테이크로 정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웃음) 자다가 깨면서 시작되잖나. 히터도 튼 상태라 나중에는 못 일어날 뻔했다. 몇 테이크 가다가 너무 졸려서 “감독님, 제가 나중에 택시 빌려올 테니까 다음에 촬영하면 안될까요?”라고 한 것만 기억난다.
박종환 나도 일부러 더한 리액션은 없지만, 극장에서 강냉이 먹으면서 연기할 때 갑자기 빵 터진다거나 실소를 터뜨리는 반응은 자연스럽게 추가된 것들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나갔다. 숲속 대화 장면에서는 내가 달걀을 먹으면서 말을 시작한다. 달걀이 8개 정도 있었는데 테이크를 더 갈수록 부족할까봐 처음에는 하나씩 먹고 나중에는 반씩 잘 나눠 먹었다. 그런 일도 힘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