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그대 어이가리’, 익숙한 내러티브를 소리로 상쇄한다
2023-03-08
글 : 정예인 (객원기자)

아내 연희(정아미)가 치매에 걸리면서 유명 국악인으로 활동하던 동혁(선동혁)의 사회생활에 제동이 걸린다. 날이 갈수록 증세가 심각해지는 연희의 모습에 동혁의 일상과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결혼한 딸과 의사인 사위에게 의지하거나, 요양병원에 연희를 입원시켜보기도 하지만 결국 연희의 곁을 지키는 이는 동혁이다. 폭력성이 증가한 탓에 누구도 돌보기 어려워하는 연희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게 동혁밖에 없어서다. 홀로 연희를 돌보던 동혁은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문득 떠올린다. 치매 초기 단계일 때 연희가 당부했던 말. 예쁜 기억만 갖고 꽃처럼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던 목소리가 동혁을 맴돈다.

영화는 <학생부군신위>가 떠오르는 장례식 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친척들은 술에 취해 싸우고, 동네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게 뛰놀고, 바삐 요리하는 여성들과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이들이 한데 어우러진 오프닝 시퀀스는 <그대 어이가리>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장례식은 어디까지나 산 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 영화가 치매에 걸린 연희의 심리적 변화보다 동혁의 입장에 중점을 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늙음과 병을 감당해야 하는 남은 자의 현실을 초점화하고자 한 것이다. 동혁의 심경은 주로 한국의 고전적인 소리 문화를 통해 전달된다. 구슬픈 남도민요로 영화 전체의 톤을 조절할 수 있었던 데는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 이력이 있는 배우 선동혁의 역할이 컸다.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늙음, 병, 죽음과 전통적인 소리를 접합하는 방식을 선동혁의 절절한 소리가 상쇄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의 다리 위 상엿소리가 볼거리다. 제20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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