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양희승 작가가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30명 넘는 캐릭터를 빚을 수 있었던 노하우
2023-03-11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어떻게 뾰루지 하나로 한회를 풀어?

양희승 작가의 드라마 속에서 사랑의 결실은 최종 목표가 아니다. 사랑이 이루어진 이후, 즉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이야기는 곧바로 엔딩을 맺지 않고 계속된다. 실제 삶처럼 인물들은 절정 이후의 일상을 이어나간다. <아는 와이프>의 주혁(지성)과 우진(한지민)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사랑을 이룬 이후에도, <일타 스캔들>의 치열과 행선이 어렵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후에도 작가는 주조연들의 삶을 두루두루 들여다본다. 드라마가 끝나도 그들의 삶이 계속 이어져나갈 것처럼.

“맨날 지적받아요. ‘주인공 얘기를 조금 더 해주세요. 여기 분량을 좀 압축해주세요’ 하고요. 다양한 캐릭터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합니다. 100부작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할 때도 신이 났어요. 인물이 많아도 되고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도 되니까. 평소에 수다 떨 때도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포인트를 잘 잡아서 친구들을 집중시키는 편이에요. <역도요정 김복주> 때 이정은 배우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작가님, 진짜 신기해. 어떻게 뾰루지 하나로 한회를 풀어?’ (웃음)”

“라디오에서 들었는데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이 평소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의료진 역할을 하는 거래요. 그날그날 힘든 얘기 들어주고, 막 같이 욕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곁에 그런 존재가 없을 때 자기 같은 의사를 찾아오는 거라고. 아마 엄마 없었으면 전 병원비 꽤나 나왔을 거예요.”(<아는 와이프>)

사진제공 KBS

-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30명 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주인공 캐릭터에겐 의료진 같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요. 캐릭터를 빚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 시트콤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캐릭터를 만드는 게 익숙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작가들 사이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기도 해요. 저는 축구도 하거든요. (웃음) 일주일에 한번씩 취미로 나가는데 그 모임에 아들뻘 되는 20대부터 제 나이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운동할 때 보면 사람들 캐릭터가 다 보여요. 남에게는 공 안 주고 주야장천 자기가 차 넣으려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넣을 법도 한데 주야장천 남에게 패스만 하는 사람이 있고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직업병처럼 어느새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더라고요. 저 친구 캐릭터가 재미있는데 싶으면 메모해두죠. 나중에 이야기를 짤 때 그 캐릭터가 어울릴 것 같으면 메모한 것에 상상력을 더해 인물을 만드는 편이에요.

-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하나요.

= 학창 시절에도 수업 시간에 공부한 기억이 없어요. 친구한테 편지를 쓰거나 친구 생일이라고 단편소설 써서 선물하고. 공부 참 안 하는 학생이었는데 늘 뭔가 끼적이고 있었어요. (휴대폰 메모장을 보여주며) 이런 식이에요. <일타 스캔들>에 관한 메모도 있고, 다음에 하고 싶은 아이템이나 작업하고 싶은 배우들 이름을 적어두기도 해요. <고교처세왕> 끝나고 스튜디오드래곤에서 ‘여름에 할 만한 아이템이 있을까요?’라고 하기에 ‘여름이면 귀신인데?’ 하고 이전에 메모해둔 처녀귀신 아이템을 바로 떠올렸어요. 처녀로 죽어서 한을 품은 게 처녀귀신이잖아요. 이런 통념을 활용하면 남자에게 들이대는 여자 캐릭터를 독특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낼 수 있겠다, 대신 야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메모해뒀거든요. 거기서 출발해 <오 나의 귀신님>을 빌드업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소재나 모티브를 적어두는 편이에요.

스마트폰에 써놓은 메모들

<역도요정 김복주>는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을 보다 떠올린 아이템이었다. 한국체육대학교 여자유도부, 국립국악고 무용과 팀 등 시청자 중에서 꼽힌 6팀이 함께 출연한 회차였다. 유도부와 무용 학생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묘한 신경전이 눈에 들어왔다. “유도부 친구들이 무용과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중계하더라고요. ‘야, 저기 걸어간다. 먹는 것 좀 봐.’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거예요.” <역도요정 김복주> 속 역도부와 리듬체조부는 이렇게 구상됐다. “TV에서 본 것이나 제 경험에서 소재를 끄집어내고 캐릭터나 이야기로 발전시켜요. 로맨스 자체보다 사람 얘기에 관심이 많고요. 뭐가 됐든 고전적인 로맨스에서 끝내지 않으려고 해요. <일타 스캔들>에서도 로맨스 외에 제가 의미를 부여한 건 행선의 가족이거든요. 행선과 치열이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치열에게 남동생도 생기고 조카도 생기는 지점에도 중점을 두고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서로 영향받고 온기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울 일 생기면 어떠냐. 부모도 있고 언니 오빠도 있는데. 네 편이 이렇게 많다.”(<한 번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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