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감정을 두드리는 대화 수단으로서의 이야기
“글쓰기요? 멋없는 말이지만 저는 이것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기 때문에 합니다. 실생활에서의 저는 감정 표현에 서투른 편인데 이야기는 감정을 전하는 최상의 수단인 것 같거든요. 그냥 어떻다고 말하면 될 것을 긴 이야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게 어찌보면 비효율적이고 거창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만 표현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드라마가 갖는 매체적 접근성, 강렬한 동일시와 공감의 가능성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상사 앞에서 잠시 미루어두었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진한새 작가에게 드라마 글쓰기는 ‘대화 수단’이다. “그러니 저는 연결될 수도, 때로는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왜 쓸까? 스스로 질문해보면 이야기가 곧 제 언어이기 때문이에요.”
- 집필할 때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가는 과정은 어떠한가요.
= 꽂히는 한 장면, 인물 설정에서 발상을 시작해 처음에는 개념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평범하고 순해 보이는 모범생의 이면에 악마성이 숨겨져 있다면? 어린 시절에 UFO를 보았다고 믿는 청년이 있다면? 그렇게 서서히 이야기를 구체화시키다 <인간수업>은 10대 성매매, <글리치>는 사이비 종교라는 살이 붙었죠. 중간에는 딱 멈추고 역으로 질문하게 되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내가 왜 그 인물과 현상에 끌리게 됐는지 일종의 자기 심리 분석을 하면서 본질을 톺아봐요. 여태껏 이것이 제게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좀 다르게 할 참입니다. 기획 기간이 더 길어지더라도 전체를 조망하고 구조를 단단하게 장악한 채 쓰고 싶어요.
- 나름대로의 시행착오가 반영된 변화인가요? 여러 이해관계와 협업을 거치면서 드라마 작가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느낀 것이 있나요.
= 드라마는 흔히 작가의 입김이 세다고 하죠. 저도 작업을 해보면서 작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분위기에 여러모로 감사함을 많이 느꼈는데요. 한편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역할과 책임이 무겁다는 사실도 배웁니다. 제 경우는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거든요. 독불장군처럼 의견을 밀어붙이기보단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여러 제작진이 협업하는 과정을 꿈꿨다고 할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해나가는 이상적인 그림이 제 판타지였거든요. (웃음) 그런데 오히려 작가가 작품을 너무 열어두는 것이 복잡한 제작 과정 속에서 일종의 불안 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인간수업>의 청소년들은 자기 숨 냄새가 싫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혐오하고, <글리치>의 청년들은 특출난 성공과 실패에서 모두 비껴난 채로 권태로워합니다. 자극적인 사건들 아래 무력한 세대의 정서를 탐구하는 셈입니다.
= 제가 느끼는 세대의 집단의식 같은 것일까,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서를 정의하고 쓰지는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제가 살아온 환경과 성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인간수업>은 죄를, <글리치>는 믿음을 질문하니 사뭇 종교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 모태 신앙이 기독교이긴 해요. 죄와 믿음… 주제를 파고들어가다보니 그 개념에 가닿게 된 것인데, 정말 제 무의식 속에서 그런 테마가 삐져나온 것일 수는 있겠네요. <글리치>는 사이비 종교가 소재이니 제 나름의 기독교식 농담도 던져봤어요. 엄청나게 독실한 인물의 아버지를 세례명 토마스로 설정하는 식이었죠. 의심하는 토마스는 예수가 부활을 믿지 못했던 사람이니까.
- <글리치>의 주인공 지효에 대한 묘사에서 평범한 중산층이란 사실을 부 각한 이유가 있나요.
= 특정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애매한 청년을 그리고 싶었어요. 시쳇말로 흙수저도 금수저도 아니죠. 가끔은 우리 세대가 접하는 메시지가 너무 한정되어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애매한 사람들의 서사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래서였어요. 지효는 남 탓을 할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것도 아니고 부모가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그런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별 볼 일 없지?” 좌절하는데, 남들에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테니 어디 가서 기댈 데가 없어요. 자기를 명쾌히 대변할 언어가 부족하고 정체성이 희미한 ‘낀 계층’의 젊은이에 저 자신을 투영한 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