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윤성호 작가가 혐오적인 시선을 영리하게 덜고 유머를 잃지 않는 대본을 쓰는 이유
2023-03-14
글 : 박다해 (<한겨레21>기자)
사진 : 백종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사진제공 웨이브

2. 아이러니

“만약 타락하고 몰락한 목사가 있어요. 이 목사가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해야 할 일이 생긴 거예요. 근데 그게 참회하는, 진짜 멋진 설교가 되는 거예요. 재밌는 아이러니죠.”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몇번이고 ‘아이러니’란 말을 반복했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아이러니로 정리했다고 했다.

‘모순’이란 한자어만으로는 어감을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다. 그가 말하는 아이러니는 “예상과는 다른, 기대했던 것과 다른” 면을 말한다. “이럴 거라고 예단했는데 사실관계가 다르다거나 전망과는 반대되는 다른 일이 발생하거나 하는 일을 ‘아이러니하다’고 해요. 아이러니란 키워드를 붙들고 있는 건, 이야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튀어나왔을 때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해서다.

“이야기꾼은 무엇을 위해 봉사하고 어떤 가치에 복무해야 하는 걸까? 정말 솔직하게, 우린 뭐에 복무하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결국 재미를 위해, 재밌으려고 하는 거예요. 특정한 가치를 위해 지사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사회운동을 하거나 기자가 됐겠죠. 예를 들어 ‘아동 혐오는 나쁘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고 우리 삶이 좀더 풍성하고 입체적이 되기 바랄 뿐이죠.”

비틀어서 공감하는 재미

물론 ‘재미’를 정의하거나 풀어내는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답이 없다고 퉁치기만 할 순 없었어요. 적어도 저한테는 기준이 하나 있어야겠는 거예요. 대본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걸 풀어주는) 열쇠가 필요하잖아요. 이건 (창작하는) 각자가 말을 개발해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엣지’와 같은 단어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는 대본을 쓰다가, 회의하다가 도무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모를 때면 자문한다. ‘충분히 아이러니한가?’ 이렇게 말이다. 함께 극본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숙의하고 창의적인 지점을 뽑아내야 할 때 아이러니는 만병통치약 같은 해결책이 돼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혐관’(혐오하는 관계) 서사를 ‘맛집’이라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등장인물이 서로 혐오하다가 결국에는 친해지니까 더 재밌는 거죠.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 때도 자꾸 물어요.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럼 부산에서 내릴 때 어떻게 해야 또는 어떤 풍경을 마주해야 제일 아이러니하겠냐고.”

“정은씨 하는 짓거리 보면 완전 한남인데 한남! 완전 지가 한남이면서 뭐가 이렇게 잘났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3. 혐오와 거리두기

윤성호 감독 작품의 강점은 혐오적인 시선을 영리하게 덜어내면서도 동시에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살아온 환경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는지 모른다. 그는 2022년 평창국제평화영화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출출한 여자>부터 제가 만든 걸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 여성들 얘기를 한 다음부터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느낌? (…) <출출한 여자>부터 시작된,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캐릭터엔 애정이 가요. 그럼 그걸 남자로 해도 되는데 왜 여자로 하느냐 (…) 남성들과 교류가 없는 건 아닌데, 실제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다 여자였던 것 같아요.”(인터뷰집 <두근두근 윤성호>)

그럼에도 창작자가 혐오적인 요소에 늘 예민하게 촉수를 세워두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윤성호만의 원칙이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주의한다”고 답했다. 하나는 “혐오의 언어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진공 또는 무균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건 잘못됐다”고도 생각한다.

“멸균 상태의 대본을 쓰기 위해, 예를 들어 욕을 안 먹으려고 남자주인공을 무해한 존재, 칭찬받을 말만 하는 존재로 만드는 건 재미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치사하고 비겁하지 않겠어요. 현실에서는 누가 매력이 없더라도 어떤 가치를 위해 지지해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픽션은 재밌어야 해요. 어떤 한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바뀌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하고 어떤 갈림길에서 선택하는 순간이 긴장감 있게 보이고 그 과정이 우습거나 슬프거나 하면 재밌잖아요.”

긍정하진 않으나 인정할 수 있는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 혐오의 어휘에 동조한다거나 그 맥락에서 우리가 만든 드라마가 혐오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지 않도록 애써요. 우리가 그런 정서를 10년, 20년씩 빨리 업데이트할 순 없어도 2년이라도 먼저 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멸균이나 무균의 상태로 만드는 건 진짜 창작의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들이 ‘무오류’가 아니고 한계와 결핍이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긍정하지는 말되 인정하고 포함하고 가자고 하죠. 우리는 그 아이러니들을 보려고 하죠. 예를 들어 여성 서사를 끌고 온 <이상청>의 이정은 장관도 속을 보니 ‘참 구렁이 같네? 아이러니하네?’ 이런 게 저는 중요해요.”

원칙은 뚜렷하지만 적용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창작 과정에서 늘 조심스럽게 저울질한다.

“(어떤 작품은) 남자들이 못나고 못되게 구는 걸 확대 재생산했을 뿐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있고 반대로 저게 정말 좋은 다양성의 서사냐, 단지 욕을 안 먹는 캐릭터를 배치한 것뿐이란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어요. 제 것도 그럴 수 있어서 항상 조심조심해요. 지금 쓰는 드라마도 (인물이) 다 한계도, 핸디캡도, 문제도 있고 악한 면도 있는데 그러면서 성장도 해요. 성장에도 한계가 있고요. (감수성을) 업데이트한 것 같지만 안된 것 같고 그러다 또 나중에는 누구보다 의로운 행동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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