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스즈메의 문단속>을 처음 구상했을 때 떠올린 것은 ‘장소를 향한 애도’였다. 사람이 아닌, 특정 공간을 위해 슬퍼하고 위로하고 추념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작품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사를 착수하거나 건물을 세울 때는 사람들이 지진제와 같은 제사를 지내지만, 장소와 작별을 고할 땐 어떤 의식도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함께했으나 이제는 방치되어 고독감으로 포장되는 장소에 신카이 마코토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한다. 스즈메와 친구들이 사랑했던 폐허를 더 들여다보았다.
오이타현 유노히라 온천과 분고모리 기관고
극 중 스즈메가 살고 있는 동네는 규슈 지역의 미야자키현. 영화가 시작되는 공간으로, 고지대에 위치한 스즈메의 집에서 아름다운 해안가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남자주인공 소타가 스즈메에게 길을 물었던 폐허는 바로 오이타현의 ‘유노히라 온천’이다. 스즈메의 친구들이 “옛날 온천 마을?”이라고 반문한 반응을 통해 흘러가버린 과거의 명성을 가늠할 수 있지만 영화 속 설정과 달리 유노히라 온천은 지금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스즈메가 처음으로 문을 발견한 곳은 ‘분고모리 기관고’다.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반구 모양의 프레임은 과거 증기기관차 차고로 쓰이던 건물을 반영했다. 이 기관고도 현재 관광지로 개발되어 뮤직비디오나 방송 촬영지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폐허만이 가진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다시금 불러들인다.
〒879-4403 大分県玖珠郡玖珠町帆足
에히메현 사이조시 가모 마을회관
고양이 다이진을 따라가다 배에 탑승하게 된 스즈메가 내린 곳.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더 내륙쪽으로 들어가 산중턱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서 두 번째 문을 발견한다. 에이메현은 일본을 대표하는 귤 산지인 만큼, 우연히 만난 치카(하나세 고토네)가 귤 농장 집 딸인 설정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본 내 별명이 ‘귤의 왕국’일 정도. 하지만 에이메현도 재난의 슬픔을 간직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에이메현에 관해 “2018년 서일본 호우재해를 겪은 지역”이라며 “기후 위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면서 산사태가 많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자연재해다. 산사태, 하천 범람, 도로 파괴, 침수, 교량 유실 등 호우로 인한 문제가 심각했고 특히 에히메현과 히로시마현의 피해가 극심했다. 극 중 스즈메가 중학교를 찾아가는 도중 출입 금지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 등이 에이메현의 현실을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치카는 “(스즈메 덕분에) 내가 다닌 학교를 오랜만에 다녀왔다”며 담담한 미소를 보인다. 현재 폐교된 학교는 마을회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793-0103 愛媛県西条市荒川185
고베 오토기노쿠니 놀이공원
스즈메가 두 번째로 이동한 지역은 고베다. 너그러운 루미 아주머니(이토 사이리)가 아이들과 친정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빗속의 스즈메를 발견하고 집 한켠을 내어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정차한 루미 아주머니는 멀리 보이는, 폐쇄된 놀이공원을 보고 “어릴 때 종종 갔는데 지금은 버려진 상태야. 이제는 쓸쓸한 공간이 늘어난다니까”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이 놀이공원의 상징적인 대관람차에서 스즈메는 세 번째 문을 발견하고 또 다른 고군분투를 벌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고베는 1995년에 고베 대지진을 겪으며 큰 진통을 앓은 적 있다”면서 스즈메의 여정에 고베를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고베 대지진은 지진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규모 7.2로 최대 사상자와 피해를 일으켰던 재해다. 고베시 안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였고 오사카와 교토까지 그 피해가 이어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허함을 그리기 위해 텅 빈 놀이공원의 이미지를 빌렸지만 이는 폐허의 쓸쓸함을 담기 위한 상징이었을 뿐 현재 오토기노쿠니 놀이공원은 운영 중이다.
〒651-1522 兵庫県神戸市北区大沢町上大沢2150 フルーツフラワーパーク内
도쿄 오차노미즈역과 히지리바시
에이메현, 고베를 넘어 도쿄까지 오게 된 스즈메. 본격적으로 갈등이 최고치에 이르고 스즈메가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곳이다. 작중 많은 사람들의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이 그려지듯 실제로 인파가 많은 도심 한복판이다. 도쿄의 경우, 소타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책에서 설명하듯 100여년 전 관동 대지진을 거치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에이메현과 고베의 폐허와 달리 사람들로 북적여 생동감을 전하지만, 그것이 곧 스즈메의 또 다른 고민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東京都千代田区神田駿河台4丁目 ~文京区湯島1丁目
도호쿠 지방의 이와테현
새로운 깨달음과 갈망을 얻게 된 스즈메가 소타의 대학 친구 세리자와(가미키 류노스케)와 타마키 이모(후카쓰 에리)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도호쿠 지역으로 떠난다. 차 안에서 지진을 느껴 잠시 정차한 곳이 후쿠시마현, 휴게소에 들려 저녁을 먹은 곳이 미야기현이다. 스즈메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곳은 이와테현.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황폐화된 처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당시 지진을 경고하는 알림 소리를 통해 긴박함과 절박함을 담아냈다. 집터만 덩그러니 남은 주변 환경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 얼마나 유약한지, 또 땅과 인간이 결합된 삶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지니는지 되새기게 된다. 길고 지난한 통과의례를 마치고 잠시 정차한 공간은 오리카사역이다.
〒028-1361 岩手県下閉伊郡山田町織笠第12地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