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속 차용된 레퍼런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미미즈는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서 보이던 원한의 비주얼을 연상시킨다. 미미즈가 나선형으로 하늘 위로 솟아올랐을 땐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 신기하다.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는 일본에서도 아주 마니악한 작품인데 한국에서 알고 있다니! (웃음) 그런데 사실 미미즈의 경우, 어떤 크리처나 몬스터보다는 하나의 현상으로 그리려 했다. 그래서 문 밖으로 미미즈가 퍼져나갈 때, 어떨 땐 물처럼 보이지만 또 어떨 땐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용암처럼 솟구칠 때도 있다. 이것을 재난이자 자연현상의 연장선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미미즈가 도쿄 상공을 뒤덮을 땐 늪의 느낌을 주려 빙글빙글 돌리다 보니 <소용돌이>가 연상됐던 것 같다. 하지만 레퍼런스로 차용했던 건 아니다. 다만 나중에 작업을 모두 마치고 나서 <모노노케 히메>의 비주얼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모노노케 히메>와 <스즈메의 문단속> 모두 자연현상이라는 공통된 모티브를 두어서 유사점이 생긴 것 같다.
- 고양이 다이진을 보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이다!”라고 외치는 대사나 자동차를 타고 도호쿠 지역으로 향하는 순간 <마녀 배달부 키키>의 음원이 흘러나온 것은 스튜디오 지브리를 오마주한 것인가.
= 그렇다.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고 또 음악을 통해 영화 속 세계와 우리의 현실을 잇고 싶었다. 만약 현실에서 지하철을 탄 고양이를 보게 된다면 일본 사람 대부분은 <귀를 기울이면>을 연상할 것이다. 검은 고양이와 여행하는 풍경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올릴 테고. 그만큼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은 공기나 물처럼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하나의 환경이고, 일본 사람들에게 일상이자 삶이다. 그 작품들을 통해 생애를 반추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문화적 DNA랄까. 진짜 일본 사회를 그리려면 스튜디오 지브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리자와의 복고풍 플레이리스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70~80년대에 히트한 ‘톱가요’만 엄선했다. 실제로 세리자와의 플레이리스트를 구현한 유튜브 콘텐츠도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
= <싸우지 말아요>(けんかをやめて), <스위트 메모리즈>(スィートメモリーズ), <꿈속으로>(夢の中へ) 등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았던 곡들을 꼽았다. 이것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처럼 현실과 영화를 연결하기 위한 장치다. 영화 중후반 즈음부터 이야기가 판타지스럽게 변하다 보니 관객이 이 내용을 오로지 상상 속의 세계라고만 받아들일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반에 도호쿠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진짜 현실처럼, 우리가 당장 살아가는 세상처럼 느끼게 해야 했다. 그래서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가요와 팝송을 넣어서 관객의 무의식에 “이곳은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세계야”라고 알려주려 했다. 마지막 스즈메 일기장에 3월11일(동일본 대지진 발발일)이 나온 순간, 관객이 판타지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을 완전히 인지하는 구조로 설계했다.
- 스즈메가 옛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나비가 등장한다. 연약해 보이지만 빗줄기에도 평온한 날갯짓을 보이는 게 스즈메와 닮아 보인다. 나비와 스즈메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나.
= 사실 처음 각본 단계에는 나비가 없었다. 그런데 콘티를 그릴 때 나도 모르게 나비를 몇 마리 그려넣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원하는 자리마다 나비를 넣었을 뿐인데 돌이켜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던 것 같다. 나비는 여러 문화권에서 영혼을 상징하잖나. 일본에서는 나비를 저승의 벌레 혹은 천국의 벌레라고 표현한다. 마침 영화에도 ‘저세상’이 등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상됐다. 스즈메가 걸어갈 때 두 마리의 노란 나비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스즈메 어머니의 마음, 또 하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노란 의자를 상징한다. 스즈메가 성장을 이루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나비가 갑작스레 사라지는데, 이 장면은 오랫동안 스즈메를 사로잡았던 엄마를 향한 마음이 스즈메의 성장을 통해 해소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나비의 존재를 통해 스즈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압축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