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대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5주년, "우리나라 대기업도 든든의 교육을 이용했으면"
2023-03-23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 그간 든든의 운영위원이 새로 합류했고, 4기를 맞은 예방교육 강사양성과정을 통해 강사를 새로 위촉했다. 연을 맺은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든든 활동에 대한 소회를 들려달라.

심재명 임순례 감독과 공동센터장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5년째 센터장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현장에 있던 여성 영화인으로서 젊은 영화인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면서 일하고 있다. 여성영화인모임의 대표가 바뀌면서 젊은 피가 수혈됐고 든든의 운영위원 역시 세대적으로 확장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조혜영 든든 5주년은 미투 운동 5주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시 영진위나 문화체육관광부가 미투 운동에 의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든든은 영화인이 자발적이고 실천적으로 만든 조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여성영화인모임과 감독조합 등 현장 영화인들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든든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운영위원으로 합류한 지 3년차로 든든과 함께 담론을 만들고 정책을 고민해나가고 있다. 이전에도 미투 운동과 성평등 영화정책이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영진위나 여성영화제에서 연구를 해왔다. 여성가족부 및 여성 정책과 관련된 백래시가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는 엄혹한 이때에, 5주년을 맞은 든든 역시 어떻게 계속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임선애 나는 새내기다. 지난해 여성영화인모임에 이사로 합류했다. 감독 직군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장편영화 <69세>도 성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면서 시나리오가 힘을 더 받고 제작 지원도 잘 받을 수 있었다. 내 안에 어떤 수혜를 입었다는 마음이 있어서 든든의 일을 제안받았을 때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은 형사사건처럼 명명백백 해결할 수 없이 미묘한 경계에 있는 문제가 많다. 그렇게 경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든든은 정말로 필요한 기관이다.

김선아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에서 일하다 보니 든든의 운영위원으로 심재명 센터장님을 도와 일하고 있다. 든든이 5주년을 맞기까지 여성 영화인들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다. 여성들이 영화산업 안에서 경험한 어려움이 공론화되면서 심재명 센터장님과 임순례 감독님, 당시 여성영화인모임 대표였던 채윤희 대표님, 이사인 주진숙 교수님, 이미연 감독님 등 선배 여성 영화인들이 나섰을 때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하나씩 만들어갔다고 들었다. 선배들 뒤를 이어 합류했지만, 우리도 젊은 세대는 아니잖나. (웃음) 든든과 여성영화인모임에 관해 더 많은 관심과 홍보가 필요하다.

박예솜 지난해에 합류했다. 내가 합류할 때까지 든든이 유명무실해지지 않고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의미 같다. 대학생 때 성폭력 고발 운동을 했고 관련 단체에도 있었다.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을 몸으로 밀어 여는 느낌이었다. 문이 열려도 나는 소진되고 말아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든든에 합류해서 다시 여성운동에 일조하는 데에 스스로 기특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파이가 적은 촬영팀 소속으로 내가 든든 일을 겸업하고 있다는 게 누군가에겐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잘하자, 오래 해보자고 다짐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건강한 현장이 조성된다

- 얼마 전 할리우드 배우 제나 멀론이 <헝거게임> 촬영 중 겪은 성폭력을 고발했고 지난 2월에는 소노 시온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배우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성폭력 문제는 여전하다. 든든 개소 이후 5년간 영화산업 내 성희롱·성폭력 상담 접수는 247건, 접수된 신고는 190건이다. 최근 신고 경향은 어떤가.

심재명

심재명 초기보다 신고 건수가 많이 줄었지만 권력형,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2020년, 2021년 진행한 전체 상담 건수가 40여건인 데 비해 2022년엔 25건으로 줄었다. 미투 운동 이후 변화의 영향도 없잖아 있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서 신고 건수도 준 모양새다. 사건 발생 영역의 경우 사적 모임이 가장 높았고 영화 제작 현장에서의 피해 신고가 감소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예방교육의 효과인지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탭과 배우 직군에서 피해 사례가 많고 피해자가 경력 단절을 우려하거나 노이즈 등의 이슈로 여전히 용기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 신고 접수 이후 든든은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법적 지원, 합의 대리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진행한 14건의 소송 중 8건이 종결되었고 그중 5건이 승소했다. 공유할 수 있는 성과가 있나.

김선아 최근 성인영화 배우의 노출과 관련해 법률 지원을 했고, 성인영화 부문이라 하더라도 노출에 대한 정확한 안내나 사전 협의 없이 촬영·배포될 경우 배우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관한 유의미한 판례를 남겼다. 현재 2차 피해 우려 등으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긴 어려우나 든든이 법률 지원을 함에 있어 큰 성과로 보고 있다. 든든은 비밀 보장과 더불어 법률 지원을 통해 유의미한 판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 비밀 보장 조항이 있어 유의미한 성과를 공유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다.

김선아 실제 사건을 그대로 전할 수 없어 각색집을 만들고 있다. 그간 법률 지원 사례 중 피해자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 상황에 따른 지원 내용과 결과 등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래야 예방교육으로 넘어갈 수 있다. 위계와 관계가 점점 다양화되면서 현장마다 주의해야 할 점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례가 필요하다. 각색집 제작이 든든의 올해 사업이다.

임선애

임선애 <69세>가 영진위 지원을 받아 나 역시 예방교육을 받았다. 강의를 듣고 연출부, 제작부가 조를 나누어 하나의 사례를 두고 대화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일 때 어떤 게 더 의로운 대응인가 하는 질문이었는데 너무나 다른 답변이 나왔다. 성범죄에 관한 평소의 생각과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남녀 차이도 있지만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은 친구들이 오히려 소극적인 대처 방식을 이야기한 점도 특징적이었다.

김선아 위계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임선애 현장에서 느끼기로는 결국 윗물이 맑아야 한다. 연출자도 제작자, 투자자 사이에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잖나. 독립영화냐 상업영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 윗물에서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아래로 갈수록 그걸 바꾸기가 상당히 힘들다.

영화 현장에 맞는 전문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 든든의 예방교육은 영화 현장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162회 예방교육을 포함해 5년간 총 652회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에 의해 영화 제작 전 예방교육이 의무화돼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각지대가 있다면 어디일까.

김선아 CJ나 롯데 등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또는 노무사를 통해 성폭력 교육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도 든든의 교육을 이용했으면 좋겠다. 넷플릭스는 든든을 찾아와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 및 직장 내 따돌림까지 포함해 교육을 받고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산업 내 우리나라 대기업은 정작 든든의 교육을 받지 않아 아쉽다.

조혜영 영화 현장에 맞는 예방교육이 중요하다. 영화 현장은 일반적인 직장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 든든의 예방교육은 일반적인 성폭력 예방교육과 달리 영화나 방송 현장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적용한다. 이쪽도 알아야 하고 저쪽도 잘 알아야 한다는 게 강사들에게는 부담이지만 그런 균형을 잘 갖췄다는 게 든든 교육의 강점이다. 제작 현장용, 영화제용, 학교용, 제작자용 등 상황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다.

김선아 직급에 따라 교육 내용도 다르다. 실제로 제작자 대상으로 교육할 때는 제작자의 업무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설명한다. 나이가 있는 분들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요즘 세대 친구들에게는 엄청난 가해가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민감하게 캐치해서 주의하도록 설명한다. 낮은 직급의 스탭에겐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효과적인지 강조하여 강의한다.

박예솜 최근 2년간 방송국 드라마와 OTT 시리즈 스탭으로 일했다. 방송국은 교육 의무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한 드라마 스탭에게 영화계는 작품 시작하기 전에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는다고 했더니 부럽다더라. 최근 OTT 작업을 할 때는 스탭 한분이 “왜 우린 시작 전에 예방교육을 받지 않았냐”고 말하기도 했다.

김선아 그분은 영화계 스탭인가보다.

박예솜 맞다. 많은 영화 스탭이 참여한 OTT 드라마였다. 플랫폼이 정해지지 않고 의무사항이 아니라 교육받지 않았는데 영화 스탭들은 예방교육이 익숙해져서 받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이 점은 고무적이라고 느꼈다.

김선아 예방교육이 일종의 안전장치가 되는 거잖나. 그렇게 알려졌다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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