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대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5주년, "여성뿐 아니라 더 많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2023-03-23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다양성, 포용성으로 더 넓게 연대한다

- 든든은 성폭력 문제와 더불어 영화계 내 불균등한 기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용성 지표를 개발하고 ‘2022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이하 다양성 주간) 행사를 열어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영화인들을 위한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행사 이후 어떤 피드백을 받았나.

김선아 영진위가 변하고 있다. 깜짝 놀랐다. (웃음) 다양성 주간에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님이 “다양성과 포용성은 영진위의 핵심 정책”이라고 인사말도 해주셨잖나. 이후 9인 위원회(상임위원장과 비상임위원장 8인으로 구성된 심의, 의결기구)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왔다. 영진위도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보다 지원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거다. 즉 장애인을 단순히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이들도 창작자로 나설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양성 주간에서 든든이 주장한 얘기잖나! 다양성 주간은 영화산업 내 담론이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 더 많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영진위에서부터 이런 피드백이 나오는 걸 보고 다양성 주간이 잘 론칭됐다고 느꼈다. 올해도 잘해나가고자 한다.

조혜영

조혜영 든든에서 왜 다양성 주간을 열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든든은 성폭력을 위계와 권력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디어 권력을 생각하면 사회적 소수자와 주변부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양성은 여성 문제와도 분명히 연결된다. 통계적으로도 여성감독이 장애인 혹은 성소수자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주인공일 때 다양한 정체성의 캐릭터가 연관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다양성으로 안건을 확장하게 되면 여성 문제도 더 넓게 연대해서 담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 영진위에서 발표한 ‘2022 한국 영화산업 성인지 결산’ 보고서를 보면 극장 회복세가 두드러진 반면 영화 현장의 여성 인력 비중이 줄었고, 성인지적 관점에서는 관련 이슈마저 사라진 한해였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시장은 보수화되고 영화계의 다양성은 위축됐다.

심재명 팬데믹 기간 동안 남성 중심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소재의 영화들이 주로 개봉됐다. 재미있는 건 팬데믹 직후에는 여성감독 영화가 많이 개봉됐다는 것이다.

조혜영 2021년 상업영화가 철수한 자리에 저예산 혹은 단편영화를 묶은 기획영화가 풀렸는데 그때 최초로 여성감독이 20% 비율을 넘었다. 한국영화 100년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웃음) 동시에 영화계가 여성감독이나 여성 서사에 언제 문을 열어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잖나. 어렵거나 위기가 있을 때 여성에게 감당하도록 기회를 주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거봐라’ 식의 증거로 들이민다. 다양성의 문제는 여성감독의 숫자뿐만 아니라 속편, 프랜차이즈 위주의 영화가 개봉된 2022년처럼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는 분위기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심재명 남성주의적 서사 또는 센 이야기, 다양성이 실종된 영화들 역시 흥행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성 영화들이 더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 미투가 이어지고 있는 일본영화계에서 지난해 든든을 모범사례로 취재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 든든을 향한 연대나 지지를 실감할 때는 언제인가.

심재명 젊은 여성 영화인들의 진보적인 생각을 확인할 때 희망을 보고 우리가 한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임선애 감독처럼 창작에 집중하면서도 여성 영화인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함께하는 영화인들에게서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본다.

임선애 어렸을 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성영화인모임이 발족했다’는 기사를 스크랩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결국 나도 지금 여기에 와 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계속 버티고 존재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와 내 다음 세대는 안전하겠구나 싶다. 나 역시 20년 넘게 영화 스탭으로 일하면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그걸 이야기할 수 있고 든든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으로도 나도 동료들도 든든함을 느낀다. 충무로 귀신이라고 불리는 나의 구호는 “오래 버틸게”다. 기혼자든 미혼자든. 결혼했든 아이를 낳았든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각자의 사정으로 현장을 떠난 여성 동료들에게 늘 “와도 돼”라고 말한다. 어떤 처지의 여성이라도 제약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도 계속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

박예솜

박예솜 나도 이제 10년차라 후배가 많은데 동생들이 늘 그런다. 언니랑 같이 일해서 안심됐고 힘이 났다고. 친구들의 그런 말들이 나를 어떻게든 앞으로 미는 느낌이다. 조금 소극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이게 나는 연대의 씨앗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혜영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미투 운동을 비롯해 인식의 변화 속도가 다이내믹하다. 도쿄국제여성영화제가 한국보다 먼저 있었고 오래됐지만 세대교체 없이 대표가 자연사하면서 지지부진해졌다. 운동이나 담론에 있어 세대교체는 중요한 지점이다. 지금은 괜찮다 하더라도 젊은 세대들이 계속 이 판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국영화계가 지원해야 한다. 든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국영화 자체가 그런 경향성을 가지고 젊은 세대가 합류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나아지고 있다고 보일 때가 사실 가장 동력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진보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금방 사그라든다.

김선아 감독이나 스탭 누구든, 우리가 떠난 자리를 새로운 분들로 채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함께하자. (웃음) 그런 손짓의 일환으로 다양성 주간을 열기도 하고, 여성 영화인들이 앞으로도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하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든든의 힘을 사용할 거다. 이렇게 든든이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촬영 워크숍이나 행사에 오신 분들이 좋았다고 반응해주는 것 자체가 연대고 희망이다. 센터장님은 은퇴하고 싶어 하시는데(웃음) 더 많은 분이 새롭게 합류해 우리가 떠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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