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2017년 박스오피스 분석: 정의를 꿈꾸었다
2023-04-07
글 : 이자연

2017년은 여전히 2016년 촛불집회의 영향 아래 있었다. 3월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으며, 5월9일 처음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이를 통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포항에서 일어난 5.3 규모의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일정이 미뤄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있었고, 세월호 참사 3년 만에 세월호를 인양하여 뭍으로 꺼냈다. 최초, 처음, 초유 같은 수식이 연일 이어지던 나날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연발하는 가운데 영화관은 2억1900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택시운전사>는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대중적 열망에 화답하듯 천만 영화로 솟아올랐고, 장르와 소재의 다양성은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유입시켰다. 실제로 당해 박스오피스 톱10에 이름을 올린 작품들은 모두 다른 제작사에서 제작되어 각기 다른 개성과 색깔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2017년이 그린 극장의 시대를 되짚었다.

<택시운전사>

극장가까지 움직인 정권 교체

2017년 박스오피스 1위는 그해 유일한 천만 영화인 <택시운전사>가 차지했다. 8월2일 개봉 이후, 7일차에 누적 관객수 50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천만 관객을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9일이었다. 이는 역대 천만 영화 중 여섯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흥행에는 촛불시민혁명이 일궈낸 정권 교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었다. <택시운전사> 제작사인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는 “영화 기획·촬영 단계 때만 해도 의도적인 정치적 마케팅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개봉 시점에는 이미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부터 촛불시민혁명, 정권 교체까지 일련의 사건들이 영화와 현실을 연결하면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며 극장가까지 가닿은 당대 분위기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실제로 개봉 12일차인 8월13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장훈 감독과 택시운전사 김만섭 역의 송강호 배우, 피터 역의 실존 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드와 함께 영화관에서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며 문 전 대통령이 눈시울을 붉혔다는 소식과 함께 영화를 향한 대중적 호기심과 호응은 더 커졌다.

같은 해 12월에 개봉한 <1987> 또한 최종 누적 관객수 720만명을 기록하며 <택시운전사>와 같은 시대적 탄력을 받았다. 당시 <1987>의 홍보를 진행한 박혜경 앤드크레딧 대표는 “1987년 6월은 뛰어난 개인이 아닌, 평범한 많은 사람이 만든 시간이다. 광장에 선 모든 이가 주인공인 셈이다. 작은 개인이 모여 큰 변화를 일궜다는 점에서 당시 관객이 체감한 시대적 변화와 영화 속 메시지가 일치한다”며 <1987>이 주목을 이끌어낸 배경을 짚어냈다. 이어 이우정 우정필름 대표는 “2017년이 6월 민주항쟁 30주년 되는 해였다. <1987>의 기획 의도 자체가 이를 기념하는 데 있었는데, 이 타이틀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에도 시의적으로 무리가 없었다”며 영화의 기획과 의미가 대중에게 정조준될 수 있었던 맥락을 설명했다.

악을 소탕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다지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갈망을 범국민적으로 키웠다. 이에 따라 정의와 불의, 도덕과 부도덕, 윤리와 비윤리에 대한 대중적 인지가 강하게 일어났고, 당대 민심을 반영하듯 극장가에서는 악을 소탕하거나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범죄 오락 장르가 주목을 받았다. 먼저 688만명의 누적 관객을 모은 <범죄도시>는 청소년관람불가 작품으로 대상이 한정돼 있었음에도 2017년 박스오피스 5위에 이름을 올리며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 <범죄도시>의 흥행 중심에는 단연 자기만의 고유한 IP를 보유한 배우 마동석이 자리하고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극악한 빌런을 오로지 맨주먹과 맨몸으로만 싸워 물리적 타격과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체포와 처벌이라는 제도적 징계까지 선사하며 관객의 희열을 높인다. 이인성 머리꽃 대표는 “악당을 시원하게 처치하는 통쾌한 스토리라인과 마동석이라는 브랜드만이 보일 수 있는 강력한 액션”이 당시 <범죄도시>의 마케팅 포인트였음을 밝혔다. 한편 위조 지폐 동판을 탈취한 비밀조직의 리더를 잡기 위해 남북한 형사가 공조수사를 펼치는 <공조>는 최종 누적 관객수 781만명을 기록했다. 당시 배급 관계자는 “<공조>는 액션과 코미디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지만 빌런에 관해서는 일관된 진지함을 보여주려 했다. 악역의 무게가 중후할수록 ‘징악’의 쾌감이 커지기 때문”이라며 당시 대중의 분위기와 수요에 맞춘 전략을 설명했다. 2017년 여름 시장을 공략하며 누적 관객수 565만명을 달성한 <청년경찰>은 중년의 주인공을 내세우던 기존 범죄오락영화들과 달리 20대 경찰대생 콤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세형 롯데컬처웍스 콘텐츠전략 팀장은 “두명의 젊은 주인공이 모두가 외면하는 문제를 직접 파헤치고 정의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을 관객에게 통쾌함을 안긴 주요 요인으로 분석했다.

2억1900만명이 만든 다양성

2017년 총영화 관객수는 2억1900만명에 이른다. 2억2600만명을 기록한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실제로 2017년에는 관객의 취향을 반영하듯 장르적·소재적으로 다양한 개봉작들이 넓게 포진돼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택시운전사> <군함도> <1987>, IP를 근간으로 둔 <신과 함께-죄와 벌> <미녀와 야수>, 시리즈 외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킹스맨: 골든 서클>, 범죄 오락물 <공조> <범죄도시> <청년경찰>까지.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모아나> <보스 베이비>, 스릴러 <살인자의 기억법> <기억의 밤> <겟 아웃> 등이 관객을 찾았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박주석 영화인 이사는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나눠 판단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규모가 작은 영화도 취향과 선호의 대상으로 수용됐다”며 당시의 관객 태도를 회상했다. 이에 이우정 우정필름 대표는 “다양한 영화가 나와서 극장이 호황을 누렸다기보다 활기 넘치는 극장이 안전지대가 되어 다양한 실험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던 것”이라며 다양한 영화가 상생할 수 있었던 맥락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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