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극장을 지켜라, 철거 발표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그 이후
2023-04-24
글 : 김수영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 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지난 4월11일 원강수 원주시장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아카데미극장 활용방안’을 이같이 매듭지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지난해 2월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 부지 매입을 완료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돼 국비 15억원, 도비 4억5천만원을 확보한 상태다. 지난해 7월 들어선 민선 8기는 전임 시장이 추진해온 주요 사업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할 것을 요청하며 그중 하나로 아카데미극장 복원 중단을 권고했다. 원주시는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 시민, 상인회,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활용 방안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8개월 후, 시는 극장 철거를 발표했다. 철거가 옳은 결정인지 따지기 전에 철거를 결정하기까지 과정상에 문제가 있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1963년에 개관해 환갑을 맞은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오래돼서 가치 있는 극장만은 아니다.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에 따르면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시의 근대건축을 대표할 뿐 아니라 1960년대 한국 극장건축에서 모더니즘의 미학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유지한 공간”이다. 극장 소유주인 정운학씨가 황해도 출신이었기에 극장 한쪽에 이북5도민 사무실을 만들어 운영했고 상여관에서 초등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등 아카데미극장은 극장을 넘어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존재했다. 원주 토박이들에게는 역사와 추억이 자리한 공간이자 새로 원주에 터를 잡은 젊은이들에게도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시민들의 애착에 힘입어 폐관 위기에도 아카데미극장의 문은 지금까지 닫히지 않았다. 보존에 미온적이었던 전임 원창묵 시장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 및 문화 활동을 보고 “이 정도 정성이라면 보존하지 않을 수 없다”며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부지 매입을 결정했다.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시민 모임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인수위원회의 ‘아카데미극장 복원 중단 권고’를 받아들인 민선 8기 원주시를 향해 여러 번 대화를 청했지만 시는 응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주민 250명의 서명부를 들고 시정정책토론도 청구했지만, 시는 바로 다음날 ‘제출된 자료로는 서명인의 선거권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며 ‘서명인의 전체 주민등록번호와 본적지 주소를 적은 서류를 보완하라’는 보도 자료로 대응했다.

극장 1층에 남아 있는 이북5도민 사무실 풍경

공무원이 직접 상인회를 찾아가 철거안을 설득한 정황도 드러났다. 남기주 문화예술과 과장이 원주시 중앙동 상인회에 배포한 ‘아카데미극장 활용방안’ 자료에 따르면, 극장 보존 시 ‘관광자원 활용은 미비’하고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데다가 위탁 운영 시 ‘특정 소수 영화예술인이 독점’하여 ‘시민 참여 저조’가 예상된다. 반면 철거 후 주차장을 건립하면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고 ‘원도심 주차난 해소’로 ‘특정 소수가 아닌 시민 모두가 혜택’을 받는다. 철거를 유도하는 편파적인 정보를 담은 것이다. 원주에서 기타 강사로 활동하는 아카데미의 친구들 이주성씨는 “상인분들 가운데도 철거가 상권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과 문화자산으로 보존해서 상권을 활성화하자는 입장이 반반이다. 그런데 시 공무원이 나서서 철거안을 설득하고 상인 모두 철거에 찬성했다는 식의 보도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 없이 발표한 철거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간담회 자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3월23일 원주시는 시민 의견을 청취하겠다며 원주시 5개 상인회 대표단과 아카데미의 친구들 대표 5명에게 참석 요청 공문을 보냈다. 원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신동하 대표는 “간담회에 앞선 사전 미팅에서 문화예술과 과장님은 ‘우리는 철거를 거의 상정하고 있다’며 철거가 필요한 이유만 반복할 뿐 보존쪽의 의견을 아예 수용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해라. 다 듣고 결정은 시장님이 하실 거’라기에 형식적인 의견 수렴 자리라고 판단해 불참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시청에서 시정토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자 원강수 시장은 비공개 면담을 제안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아카데미의 친구들 관계자는 “가까운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재생공간 사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시장님은 ‘여기 원주분들이 있냐? 나이가 몇살이냐? 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 있냐?’ 이렇게 반문하셨다”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30분간의 면담을 마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철거가 발표됐다. 철거를 진행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임시 통보한 1년치 국비 15억원도 반납해야 한다. 차후 예산이 삭감되거나 배제되는 등 페널티를 받을 수 있음에도 시는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졸속 추진된 철거안, 시의회서 제동

소유주 정운학씨는 극장 2층에 살림집과 정원을 마련해두고 이곳에 살았다

원주 시민 6만명이 활동하는 맘카페 ‘원주파랑맘’도 시의 ‘돌이킬 수 없는 판단’을 막기 위해 아카데미의 친구들과 함께 나섰다. 원주시의 정책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원주파랑맘은 7명의 시의원들에게 철거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를 받은 유오현 문화도시위원장은 4월17일 원주파랑맘 대표 2인과 아카데미의 친구들 대표 2인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유오현 위원장은 개인적 소신임을 밝히며 “문화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동화 아카데미의 친구들 대표는 “행정 담당자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나 감수성이 없다는 게 이 사안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4월19일, 아카데미의 친구들 및 원주파랑맘 등 시민들은 원주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거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원강수 시장은 이날 시민들 앞에서 “원주시는 세금에 대한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세금을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야 한다”며 “1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아카데미 리모델링 사업은 원주시에서 추진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이는 정확하지 않은 발언이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아카데미의 친구들 오현택씨는 “리모델링 비용 60억원 중 1차분 예산안으로 배정된 국비 15억원과 도비 4억5천만원을 수용하고 시비 10억5천만원을 부담하면 되는 상황이다. 유지비도 1억, 2억원이 넘는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비슷한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된 곳들을 방문해 연구조사를 실시했고, 면적당 계산해보면 2700만원 내외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온다.” 원강수 시장은 “극장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어떻게든 빨리 처리하려고 하는 거다. 서울시처럼 재원 많은 도시도 아카데미극장보다 더 오래되고 가치 있는 건물도 여러분이 요구하는 것처럼 유지하지 않는다”면서 근거 없는 철거 의지만 피력한 채 자리를 떠났다.

원주시는 철거 비용 3억원과 공연장 및 주차장 조성 비용 3억5천만원 등 총 6억5천만원을 추가경정 예산안에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4월19일 열린 임시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절차상의 하자로 철거 예산안 처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보이콧했다. 시가 이미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해 공유재산이 되었으므로 용도폐지할 경우 공유재산심의위원회 심의와 의결 등의 절차가 필요한데 시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예산안만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날 본회의는 파행됐지만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인 문도위는 5월3일 열리는 2차 본회의에 철거안을 재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철거 예산이 통과되면 아카데미극장은 사라지게 된다. 민주적 절차와 요구를 무시한 시를 향해 릴레이 1인시위, 집회, 온라인 서명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거부한 시를 상대로 행정심판도 준비할 예정이다.

아카데미극장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4월 19일 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아카데미의 친구들

원주에서 활동하는 박주환 감독은 아카데미의 친구들 활동을 지켜보며 “원주에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안으로 새로운 소통의 장이 열리고 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이라는 오픈채팅방에선 이름도 알지 못하는 220여명이 사안을 공유하고 서로 응원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법률자문을 돕겠다고 나섰고 동네 가게나 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연대 의사를 전해주기도 한다. 오프라인 보존 활동에 적극적인 친구들이 주로 10대 청소년과 20대, 30대 청년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어떤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도 없고 추억도 없으면서 보존 얘기를 한다’고 하지만 원주 청년들에게 이 공간은 태어나서 처음 본 옛날 극장이다. 이들은 이 공간의 가치를 알고 여기에 담긴 정서를 소중하게 여긴다. 추억 때문이 아니라 이 공간을 자기 세대도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극장이 원주의 문화자산으로 남아 랜드마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보존을 주장하는 거다.” 신동화 대표 역시 “극장 보존에 공감한다는 마음으로 어르신부터 아이 키우는 부모님, 청소년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민들이 응집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런 마음과 자산이 있다는 걸 원주시만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철거를 주장하는 와중에도 현재의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의 과거나 추억이 아니라 미래가 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아카데미극장의 역사를 미래로 이어나가고 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