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안녕 <가오갤>, 이리와서 내 사랑을 받아요."
2023-05-11
글 : 송경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끝이 좋으니 다 아름다워 보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오갤3>)가 삼부작 여정에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MCU가 계속되는 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속편은 계속 나올 것이다. 다만 제임스 건 감독이 문을 열고 MCU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가디언즈 1기, 그러니까 ‘팀 스타로드’의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첫발을 디딜 때만 해도 자칭 스타로드라는 거창한 별명을 붙인 자의식 과잉의 허풍쟁이가 정말로 우주를 구하고 지켜낼진 몰랐다. 조금 모자라고 대체로 물색없지만 본성은 착한 친구들이 모여 왁자지껄 소동을 벌인 지 어느덧 10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은 반항아들도 터전을 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캡틴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가오갤> 삼부작의 마무리에는 관객과 동고동락해온 세월이 묻어 있고, 그래서 반칙이라 해도 좋을 울림을 자아낸다.

창조물을 너무 사랑한 죄, 기꺼이 받으리

<가오갤3>는 끝까지 ‘가오갤’답다. 이 영화는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균형을 조율하는 세심함, 깊이에 다다른 통찰, 완벽을 추구하는 걸작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정반대로 엉덩이를 뭉갠 채 시시껄렁한 농담을 늘어놓는 데 집착한다. 한마디로 난장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즐겨야 하는 영화다. <가오갤3>의 아쉬운 점은 지적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일단 다른 MCU 영화와 마찬가지로 너무 길고 굳이 궁금하지 않은 사연으로 꽉 차 있다. 플롯은 엉망진창인데 대충 퉁치고 농담처럼 어물쩍 넘어가려다 보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개연성도 박살난다.

가령 <가오갤> 2편에서 이미 우주를 활강할 수 있는 우주 전투복이 나왔는데, 생체 행성 오르고에 침입할 땐 갑자기 뒤뚱거리는 디자인의 옛날 우주복을 입고 등장하는 식이다. 갑자기 문명이 퇴보한 것처럼 형형색색 우주복을 입고 나타난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면 이 영화를 즐길 수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위에 ‘파워레인저’를 덧대어 농담 같은 볼거리를 만들 수 있는데 설정 따위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무엇보다 문제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때때로 느려진다는 거다. 한창 내달리다가도 갑자기 멈춰서 시답잖은 농담을 늘어놓느라 흐름을 끊어먹을 뿐 아니라 러닝타임마저 질질 늘어진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을 따지자면 캐릭터가 너무 많다. 많은데 한명도 대충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다. 한마디로 농담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느라 추진력을 잃고 미아가 된 우주선처럼 우주를 헤맨다.

투덜대고 보니 이렇게 엉망진창 통제 불능의 영화도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오갤3>의 놀라운 점은 이런 불균질한 산만함이 마지막에 이르러 다 용납된다는 점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논리가 <가오갤3>에는 챕터별, 시퀀스별, 캐릭터별로 적용된다. <가오갤3>는 이른바 ‘마무리’에 해당하는 장면들, 마음을 흔드는 순간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하나의 서사 위에 정돈해야 할, 한편의 영화로 볼 땐 이 영화는 실패다. 이번 영화의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추쿠디 이우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일감이 없고 아름답지 않다”. 부적응자들의 대부 제임스 건의 진심과 진가는 이 부분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가오갤3>는 단일영화이되 단일영화가 아니다. 한편의 서사영화들이 그어놓은 규칙들을 가볍게 무시한 채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의 파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가오갤3>는 균형과 조화를 맞추기보다 돌출된 개성을 더 과장하고 부풀리더니 급기야 불협화음이 조화롭게 느껴지는 언밸런스의 미학에 도달한다.

사실 <가오갤>의 정체성이자 매력은 웃음이 나올 정도의 포용력에 있다. 제임스 건은 산만하고 삐뚤어졌다고 해서 구태여 다듬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외려 더 날뛰어보라는 듯 계속 응원을 보낸다. MCU의 시작은 <아이언맨>이 열었지만 나아갈 방향은 <가오갤>이 잡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이, 더 길게, 더 수다스럽게, 기꺼이 샛길로 빠질 용기 혹은 뻔뻔함. 그 근간에는 캐릭터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자리한다. 제임스 건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법을 까먹는다.

그리하여 <가오갤3>는 한편의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에피소드를 이어 붙인 긴 시리즈물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것은 MCU의 방향성,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B무비의 정서를 맛깔나게 표현하려면 A급의 실력이 필요하다. 너무 길고 비대해졌다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꽉 차 있다고? 목적 없이 헤매는 것 같다고? 애초에 그게 목적이다. <가오갤>은 부적응자들의 무용(無用)한 이야기를 긁어모아 쌓아올린 방랑자들의 노래모음집이다. 2014년 <가오갤> 1편으로부터 시작된 산만함, 의도된 조악함의 쾌락은 마침내 잠시 엉덩이를 붙일 자유를 얻었다. 이걸 여느 영화처럼 하나의 선 위에 꿰어 차례로 정리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가오갤3>는 마지막 순간 멤버들이 한 덩어리로 포옹하는 장면에 도달하는 걸로 최소한의 서사적 책임을 때우는 영화다. 그에 걸맞게 캐릭터별로 각자의 모자이크를 하나씩 뜯어 주절거리는 편이 더 ‘가오갤’스러울 것 같다.

진화냐 적응이냐 : 로켓 &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경우

“주인공은 언제나 너였어. 네가 몰랐을 뿐.” 로켓(브래들리 쿠퍼)과 함께 하이 에볼루셔너리에게 창조된 존재 89Q12, 아니 라일라(하프월드)는 로켓이 <가오갤> 시리즈에서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정의내린다. 로켓은 자칫 서사의 우주를 방황할 수도 있는 <가오갤3>의 나침반이다. 이번 영화는 로켓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가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되짚어가는 가디언즈의 여정을 따라간다. 로켓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에 의해 강제로 진화를 촉진당한 창조물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더 큰 의지를 대행하여 완벽한 낙원을 만들고자 생명체를 진화시키는 실험을 해왔다. 로켓은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창조한 89번째 실험군 중 하나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탈출했다. 로켓의 존재를 눈치챈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자신의 또 다른 창조물 중 하나인 소버린족에게 그를 잡아오라 명한다. 소버린의 여왕 아이샤(엘리자베스 데비키)는 최강의 소버린인 아담 워록(윌 폴터)에게 임무를 맡기고 아담은 가디언즈의 새로운 보금자리 노웨어를 습격한다.

라디오헤드의 <Creep>으로 시작되는 이 오프닝은 버릴 장면 하나 없이 만족스럽다. 철장 속 라쿤의 두려움에 가득 찬 눈망울에서 시작된 카메라가 줌아웃하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던 로켓의 눈으로 이어지고 시점은 현재로 돌아온다. 아담의 습격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로켓 안에는 생체 폭탄이 달려 있다.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자신의 지적‘재산’을 지키기 위해 달아둔 안전장치다. <가오갤3>는 사경을 헤매는 로켓의 플래시백 속 과거와 로켓을 구하고자 하는 동료들의 여정을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구조다. 각 캐릭터의 사연에 집착한 나머지 전반적으로 산만함을 피해갈 순 없지만 개별 시퀀스만 놓고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영화적인, 필름메이커의 재치가 돋보이는 연출들로 가득하다. 특히 퀼(크리스 프랫)의 MP3(ZUNE)로 노래를 듣는 로켓의 모습은 누가 팀 리더의 자리를 이어받을 자격을 갖췄는지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와 로켓은 진화, 올바름, 이상적인 무언가에 대한 감독의 입장을 대변한다. 피날레의 주인공으로 로켓이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로켓은 제임스 건 감독의 분신과도 같다. 로켓은 자신의 근본이 라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왔다. 부적응자들의 안식처인 가디언즈가 끊임없이 우주를 떠돌며 방랑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3편부터 가디언즈는 노웨어에 정착했다. 더이상 도망치기만 할 순 없다는 말이다. 제임스 건 감독이 로켓의 과거를 통해 지나온 과거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을 이야기의 기둥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화란 무엇인가. 지금보다 나아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완전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자는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추구한 길이고, 후자는 로켓이 긴 여정 끝에 도달한 답이다. 하이 레볼루셔너리는 숭고한 행위라며 자신이 추구하는 진화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자신의 기준과 입맛에 맞는 부속물들을 만들어내는, 창조라기보다는 생산에 가깝다. 문제는 그가 만들어낸 것이 생산품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생명은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꿈을 그리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선택적 진화냐 환경에의 적응이냐. 부적응자들의 드라마를 써내려간 제임스 건은 로켓의 과거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내린다. 실은 답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꾸릴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 초판본에 썼던 표현처럼 적자생존의 ‘진화’가 아니라 환경에 따라 ‘수정을 통한 나아짐’이 있을 뿐이다. 특정 부분에서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지성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 중 유일하게 창의력을 가진 존재, 창조주를 넘어선 창조물 앞에서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스스로의 모순과 본색을 드러내며 무너진다. 반면 로켓은 나아짐을 위한 안식처를 발견한다. 동고동락하는 친구들이다. 89번 실험군이었던 상냥한 수달 라일라, 듬직한 바다코끼리 티프스, 항상 신이 난 토끼 플로어는 고통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우정을 다진다. 유기체와 기계가 기괴하게 결합한 이들의 디자인은 <가오갤3>의 개성과 방향을 압축한 디자인처럼 보인다. 결합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붙어 있는 낯설고 기괴한 외형은 언뜻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금만 지켜보면 이내 내면의 따스함이 느껴지고 흠뻑 빠지고 말 것이다. <가오갤3>가 그런 것처럼.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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