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퀼 & 가모라의 경우
퀼은 <가오갤>의 울타리였다. 가모라와의 사랑으로 울타리는 한층 단단해졌지만 그만큼 불안해졌고 결국 가모라를 잃고 난 후 산산이 바스러졌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후 가모라가 돌아왔지만 그건 자신과 시간을 함께 보냈던 가모라가 아니라 다른 시간 축의 존재다. 엄연히 다른 존재지만 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퀼의 불안은 끊임없는 수다와 추억의 강제 주입으로 발현된다. 가모라를 잃고 상심에 빠진 퀼은 로켓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끊임없이 주절거린다. 영화의 상당 분량을 잡아먹는 농담은 마치 퀼의 공허한 내면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노이즈처럼 들린다. <가오갤3>의 농담이 별로 웃기지도 않으면서 계속 시도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가오갤>이 특유의 산만한 구성을 돌파해나간 비결은 적재적소의 음악의 활용에 있다. 우주의 부적응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던 건 퀼의 능청과 뻔뻔함, 그리고 끝내주는 믹스테이프였다. 노래 가사가 인물들의 진심에 대한 은유이고, 특정 장면에 대한 비유를 거쳐 거대한 혼성모방의 중심에 자리해왔다. 1편에서 혼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던 퀼은 2편에서 가모라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듣는다. <가오갤3>는 퀼에서 로켓으로 바통을 건네는 영화인 한편 둘의 성장을 따라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자신이 라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로켓처럼 퀼 역시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가모라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가모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도망치던 남자는 다시금 고향 지구로 돌아갈 이유를 발견한다.
기타 등등이라고 불러선 안되는, 나머지 단짝들의 경우
너무 많은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게 <가오갤3>의 한계이자 미덕이며 정체성이다. 로켓의 사연을 기둥으로 삼고, 퀼에게서 로켓으로 계승식을 거행하는 와중에도 가오갤 구성원들의 깨알 같은 활약을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특히 단짝별로 뛰는 2인3각 경기처럼 두 사람씩 짝지어 티키타카를 이어가는데, 우선 로켓과 퀼을 제외하고 제일 눈에 들어오는 ‘잉여’들은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와 맨티스(폼 클레멘티프)다. 본능과 주먹이 먼저 앞서는 파괴자 드랙스는 생각 없는 개그로 소모되기 쉬운 캐릭터다. <가오갤3>는 퀼의 배다른 동생인 맨티스를 그의 단짝으로 배치해 기발한 상황들을 만들어나간다. 둘은 서로의 모자란 점을 메워주는, 아니 반대로 모자란 점을 극대화하며 서로를 놀리는 파트너다. 제임스 건은 그 와중에 파괴자라는 이명에 가린 드랙스의 사연, 자식을 잃은 아버지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단짝 드랙스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니 맨티스도 응당 그래야 한다.
그루트(빈 디젤)의 경우 단짝 로켓이 내내 혼수상태인 관계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의외로 팀 내에서 같은 소임을 맡은 게 다름 아닌 네뷸라(캐런 길런)다. 그루트와 네뷸라는 가디언즈 내 가장 강력한 파워를 지닌 존재로서 상황을 정리하는 치트키로 종종 활용된다. 한 발짝 물러선 관찰자의 위치라 해도 좋겠다. 비록 전작들에 비해 서사는 다소 얇아졌지만 그 빈자리만큼 액션 측면에서의 비중은 훨씬 늘어났다. 다소 편편해진 그루트와 네뷸라의 캐릭터성을 보완해주는 존재는 욘두의 무기를 이어받은 크래글린(숀 건)과 염력을 쓰며 말하는 개 코스모(마리아 바칼로바)다. 사실상 없어도 서사에 아무 지장이 없는 캐릭터들이지만 이들이 활약할 자리를 ‘굳이’ 만들어주는 게 제임스 건의 방식이다. 덕분에 러닝타임은 늘어났지만 그만큼 더 귀엽고 웃기고 정감이 간다. 다시 말해 끝까지 ‘가오갤’스럽다.
에필로그: 부적응자들의 왕이 쏘아올린 최상의 피날레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자신을 뛰어넘은 창조물 로켓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말한다. 이렇게 어려운 생명공학 공식을 척척 알면서 어떻게 자신들이 폐기처분될 것도 모르냐고. 이런 부조화는 <가오갤> 시리즈, 아니 제임스 건의 영화 전반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솔직히 <가오갤3>는 길고 산만하고 말이 안된다. 동시에 10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따뜻하고 성실한 피날레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건 지식이 아니라 애정의 문제다. 제임스 건은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궁리하고 기꺼이 (기존 서사의) 실패를 택한다. 기존 영화의 틀과 규칙에 맞추기보단, 설사 설정과 개연성이 박살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최대한 담아내려는 태도. 누군가는 뒤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는, 무한한 애정에 기반한 관용의 시선과 창의적인 표현. 까놓고 말해 가디언즈 멤버들을 나란히 한줄로 세울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없었던 게 아닐까.
<가오갤3>에서는 가디언즈 멤버들이 일렬로 서서 행진하는 모습을 슬로로 잡은 장면이 세번 나온다. 오프닝 시퀀스의 노웨어에서 한번, 생체 행성 오르에서 한번, 마지막으로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기지 안에서 한번. 영화에서 제일 멋지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고 난 뒤, 달리 말하면 대책 없는 난장판을 벌이고 난 뒤 자랑하듯 전시하는 슬로 행진의 뻔뻔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며 모든 것이다. 우리는 그 뻔뻔함에 매혹되어 10년 동안 낄낄거리며 이들의 어지러운 여정을 함께해왔다. 그리하여 오합지졸과 함께 나란히, 기꺼이 바보가 될 결심을 끝까지 지켜낸 부적응자들의 왕은 조금은 어둡고 진지하면서도 여전히 산만하고 쾌활한 모습과 함께 MCU를 떠난다. 돌이켜보니 제임스 건은 자신의 캐릭터들에게 언제나 일관된 질문을 던졌다. 상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제 그가 떠난 자리에서 새로운 가디언즈(와 무너져가는 MCU)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