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우주를 완성하는 사운드트랙
2023-05-11
글 : 김소미

펑키 스텝에 능한 퀼의 혈관 속엔 인간과 셀레스티얼의 피뿐 아니라 1980~90년대 히트곡의 정신도 흐른다. 사랑스러운 영웅이 애지중지하는 빈티지 워크맨 사이에서 흘러나온 명곡들은 MCU 최고의 사운드트랙을 완성하며,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사운드트랙 앨범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북미에서는 오디오 카세트의 판매량이 덩달아 증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2017) 개봉 당시엔 카세트테이프 버전으로 출시된 O.S.T 모음집이 2017년 테이프 판매량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역사를 여행하는 가장 흥겨운 방법으로 “끝내주는 음악 모음”과 명장면이 조우하는 순간들을 소개한다.

<I’m Not In Love> 10CC

영웅의 여정은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말기 암으로 숨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중인 엄마의 병실 너머, 소년은 늦은 밤 홀로 앉아 10CC의 음악에 위로받고 있다(엄마처럼 속삭이는 간주의 목소리 ‘Big Boys Don’t cry’…). 2편에서 욘두에게 납치되어 졸지에 지구를 떠나게 된 사연이 밝혀지기 전까지, 어머니의 비극적인 마지막을 기억하는 퀼의 플래시백은 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음악으로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는 가디언즈를 구성하는 일관된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슬프지만 따듯한 노래는 앞으로 나타날 괴짜들에게 깊은 상실의 경험이 있었음을 넌지시 예고한다. 진정한 로큰롤의 마지막 후계자 세대에 속했던 영국 밴드 10CC가 1975년 음악적 전환을 시도하며 발표한 는 사랑을 잃은 쓸쓸한 마음을 노래하는 가사와 감미로운 보컬의 하모니가 공존한다. 70년대 록의 서정을 흡수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이전까지 관현악 일색이었던 마블 음악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았다. 새로운 음악의 도입이 우주의 풍경을 바꾸어놓는 경험, 나아가 히어로를 대하는 객석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경험이 그로부터 일어났다.

<My Sweet Lord> 조지 해리슨

인피니티 스톤 오브(파워 스톤)를 차지하기 위해 소버린 왕국 에이샤(엘리자베스 데비키)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사지에 몰아넣는 순간, 소버린의 우주선을 단숨에 제압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퀼의 아버지이자 셀레스티얼 에고(커트 러셀)다. 수백만년 전 빛의 힘을 집적해 자기 존재를 하나의 거대한 왕국으로 창조한 ‘살아 있는 행성’인 그는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지구에 내려와 퀼의 엄마 메레디스와 사랑을 나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던 아버지의 실체에 강한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 퀼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서 에고와 조우해 그의 행성을 구경하는 장면에서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가 흐른다. 그토록 기다렸던 아버지가 신적 존재라니! 총천연색 에고 행성의 풍경을 발아래 두고 펼쳐지는 비행 신은 경이와 설렘, 직전까지의 치열한 전투로 쌓여 있던 피로가 풀어지는 행복감으로 가득하다. 비틀스 이후의 조지 해리슨을 말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명곡을 삽입한 제임스 건은 신 자체의 경쾌함을 돋우는 한편, 묘한 불안감도 드리운다. 이렇게 완벽한 아버지가 과연 존재한다고? 눈 밝은 관객이라면 일찌감치 실눈을 뜨고 의심한 대로, 에고는 머지않아 퀼의 하나뿐인 빈티지 워크맨을 처참이 부서뜨리는 빌런으로 거듭난다.

<Father and Son> 캣 스티븐스

폭발 중인 에고 행성에서 퀼을 구출한 욘두는 하나뿐인 우주복을 그에게 입힌 뒤 자신은 차갑게 식어간다. 주인공의 출생 신화에 몰두한 탓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는 아버지 찾기 모티프가 지겨워진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욘두와의 작별 장면까지 반문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라바저스에게 버림받았음을 뼈아프게 확인했던 욘두는, 장례식에 찾아온 동료들에 의해 뒤늦게나마 성대한 불꽃과 우정을 확인받는다. 우주 위로 펼쳐지는 화려한 폭죽쇼로 장식된 욘두의 장례식은 영화의 엔딩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때 흘러나오는 <Father and Son>은 퀼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지, 정답을 대신 들려준다. 아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담담한 조언을 담은 이 노래는 인물의 내적 성장, 나아가 시리즈의 성숙을 고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캣 스티븐스의 노래를 기점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더욱 가족다운 가족이 된다. 욘두의 충실한 부하 크래글린(숀 건)이 그에게 준 ZUNE(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2011년 단종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음악 재생 디바이스)을 선물하면서 잠시 위협받았던 퀼의 음악 생활도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다.

<Creep> 라디오헤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 이르러 제임스 건은 사운드트랙의 가사가 직설적으로 주제를 반영하는 것에 대해 더욱 확실한 긍정을 보여준다. 근심 많은 너구리의 상념을 대변하는 곡 <Creep>이 오프닝부터 관객을 웃고 울리듯이 그 선택은 유효했다. 한번도 자신의 상처를 고백한 적 없으며, 그저 번번이 너구리라 불리는 데 역정을 낼 뿐이었던 로켓의 과거는 이번 시리즈에서 첫 등장한 소버린의 바보 왕자 아담 월록(윌 폴터)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후, 그를 살려내려는 동료들에 의해 대신 발굴된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이상한 사람들(Weirdo)라는 것. 그리고 모두들 아주 특별하다는 이 영화의 위로일 테다. 서사 전체의 원동력으로 로켓이 자리하고, 말하는 강아지 코스모까지 등장하는 등 전반적으로 동물들의 존재감이 확대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라디오헤드가 내쉰 깊은 한숨이 무색할 정도로 엔딩 무렵엔 <패딩턴> 시리즈에 가까운 다정한 사랑을 뿜어낸다.

<Come and Get Your Love> 레드본

한층 현대적인 팝들이 추가된 이번 사운드트랙에서 단연 돋보이는 한곡은 1편에 이어 재등장하는 레드본의 <Come and Get Your Love>. 레드본은 붉은 털을 가진 너구리 사냥개로 로켓의 이야기인 이번 편과 운명적인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리즈의 피날레를 위해 특별히 호출된 빈티지 트랙의 위력을 톡톡히 해낸다. 이 노래는 언제 처음 등장했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도자로서 모습을 드러낸 우주의 무법자(혹은 좀도둑) 스타로드가 오브를 훔치기 위해 모라그 행성을 누빌 때다. 시리즈 전체의 컨셉을 압축적으로 예고하는 최초의 몽타주 속에서 레드본의 음악은 분위기를 담당했다. 벌써 약 10년 전 일이다. 노웨어 행성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본부(<토르: 러브 앤 썬더> 이후의 시간대를 다루는 디즈니+ 중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을 보면 콜렉터에게서 노웨어 행성을 구입해 재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에서 2023년 다시 한번 재생되는 똑같은 멜로디는 이제 선명한 가사로 우리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 부디, 여기에 와서, 우주 밖으로 나와서 사랑을 받아들일 것. 같이 춤을 출 것. 설혹 누군가는 떠났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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