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특별부문 다큐멘터리상 ‘밤 산책’ 손구용 감독, 달, 별, 밤, 꿈
2023-05-18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어떤 관객은 영사 사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밤 산책>은 어떤 소리도 없이 도시와 숲, 골목길과 개울, 도시와 자연의 정적 풍경을 산책하듯 이어 붙인다. 전작 <오후 풍경>도 도시의 풍경을 포착한 작품이지만 <밤 산책>에선 행인의 움직임까지 덜어내 종종 영화 전체가 사진 이미지의 연속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하버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전주영화제 특별부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밤 산책>은 손구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첫 번째 장편영화 <오후 풍경>의 로케이션 중 하나였던 세검정 마을에서 밤 산책을 하다가 “사물과 풍경이 한순간 푸른빛으로 감응되는 미적이고 공감각적인 경험을 했다”고 전한다. 5~6개월 동안 세검정 마을을 카메라에 기록한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개울이었다. 개울 속을 들여다봤을 때 “마치 물과 하늘이 하나가 되고 이를 보는 나 자신은 사라지는, 환상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는” 감각은 그가 반드시 이미지로 포착해내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나리오 없이 긴 시간 동안 여유 있게 마을을 눈에 담고 소리를 들으려고 의식하자, “능동적으로 이미지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사물이 나를 찾아오는 것 같은” 신묘한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견한 마법 같은 순간에 감독이 직접 그린 드로잉과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가 끼어들어 영화 특유의 독특한 정취가 만들어진다.

“<밤 산책>을 촬영할 당시 읽던 문집에 마침 달과 별, 밤, 꿈 같은 주제로 씌어진 한시들이 있었다. 그림의 정취를 표현하는 문인화의 구성은 영화적 형식으로 풍경화를 만들 때 필요한 열쇠가 됐다.” 촬영 당시 사운드를 따로 녹음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삭제한 것은 소리의 존재가 오히려 세검정 마을에서 느꼈던 감각을 무뎌지게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사운드를 없애고 오로지 내가 찍은 이미지와 드로잉, 글만 봤는데 오히려 감흥이 더 커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나중에 소리를 없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영상 매체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손구용 감독은 학부 막바지 때부터 사진을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케이스다. “어떤 순간만 담겨 있고 축적되는 시간성이 없어서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느꼈을 무렵 만난 돌파구는 영화였다. “영화 매체는 숏과 숏이 이어질 때 회화에서 붓질이 더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시공간이 존재한다. 그 여백을 활용하면 내가 느꼈던 감흥을 삼차원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들이 나오는 단편영화를 찍은 적도 있지만, “정해진 예산에 쫓기면서 촬영하는 게 맞지 않아서 짜여진 틀을 버리고 버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는 앞으로도 내러티브가 명확한 영화보다는 서정시나 풍경화에 가까운 영상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풍경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많은 영화들이 대체로 역사적, 정치적 맥락보다는 세계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토대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그것조차 빼고 어떤 서정만 다루고 싶다. 당분간은 서사를 빼고 단순화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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