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도시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폐막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김희정 감독
2023-05-18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중학교 교사인 도경(전석호)은 현장학습에서 물에 빠진 반 학생을 구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홀로 남게 된 그의 아내 명지(박하선)는 집 안 곳곳에서 도경의 기억을 맞닥뜨리고, 슬픔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한다. 김애란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사회적 사고 이후 남겨진 유가족의 슬픔을 물에 빠진 아이의 주변인과 아이를 지키려던 교사의 가족, 두 가지 축으로 보여준다.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누구든 탓하고 싶은 원망 속에서 사람들은 끝끝내 안개 속을 걸어나온다. 어떤 터널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의 중심을 김희정 감독과 함께 들여다봤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소감이 궁금하다.

= 내게 전주는 가족 같은 곳이다. 2006년에 작업한 <열세살, 수아>를 대부분 전주에서 촬영했고, 2016년에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1억원을 지원받아 <설행_눈길을 걷다>를 제작했다. 특히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전주영화제가 창작자에게 전폭적인 자유를 허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서 가족 같은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이 무척 뜻깊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과는 또 다른 결실을 맺는 느낌이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김애란 원작의 단편소설에서 출발했다. 각색 과정에서 어떤 점을 유지하고 어떤 점에 변화를 주었나.

= 원작은 명지의 이야기다. 명지의 시선만 존재한다. 그런데 그대로 촬영하면 이야기가 너무 단편적일 것 같았다. 다른 세계가 더 필요하다고 고민하던 중에 지은이가 명지에게 쓴 편지에서 “지용이 친구에게 연락처를 물어봐서 편지를 쓴다”는 한 문장을 보게 됐다. 그래서 지용이 친구 ‘해수’(문우진)라는, 원작에 없던 인물을 만들었고 아이들의 관점으로 말할 수 있도록 각색했다. 명지와 지은이를 연결해주는 매개로 보일 수 있도록 해수를 역동적인 스케이트 보이로 설정했다.

- 영화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감정의 낙차를 보여준다. 도경과 살을 부대끼던 명지가 불현듯 혼자 있는 모습으로, 아이들 셋이 라면 먹으며 웃다가 사고로 다친 지은이 혼자 누워 있는 모습으로 전환되는 연출이 그렇다.

= 육체성을 많이 생각했다. 누워 있는 몸과 존재하는 몸, 그리고 움직일 수 있지만 정지해 있는 몸으로 분류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누워 있는 여자가 많이 나온다. 이들은 가만히 있지만 내적인 상처를 계속 축적해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쌓여가는 슬픔이 편지로 폭발하길 바랐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경험한 죽음들이 있지 않나.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 등 공동으로 경험한 슬픔을 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마지막에 도경이가 집을 나설 때도 달려가듯 나가는데 명지는 그를 그저 정지해 바라본다. 이런 이미지 차이가 겹겹이 쌓이면서 우리에게 내재한 슬픔을 이을 수 있길 바랐다.

- 일상 속에서 도경의 도움을 받던 명지가 장미색 비강진에 걸려 혼자 약을 바른 날 밤, 도경 꿈을 꾼다. 도경의 죽음이 힘들어 집을 떠나 바르샤바로 왔지만 여전히 도경의 기억으로 힘들어한다. 공간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기억은 여전히 몸에 저장된 듯하다.

=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 프랑스에 1년 정도, 폴란드에 7년 있었다. 그럼 내가 좀 바뀔 줄 알았는데 글쎄…. (웃음) 공간이 바뀌어도 늘 일을 미루거나 술 마시며 지내는 게 똑같았다. 명지도 그랬을 것이다. 오히려 집이 아닌 곳에 있으니 도경이 생각이 더 났을 거다. 자신의 트라우마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어딜 가도 똑같다는 의미다. 그래서 명지는 친구 현석(김남희)에게 도경의 죽음을 실토하지 않는다. 그게 명지의 탈출구다. 그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마치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았을 테니까.

- 명지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장면은 관객이 명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박하선 배우에게 어떤 디렉션을 주었나.

= 큰 디렉션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하선 배우를 섭외할 단계에서부터 명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하선씨가 미술관에 가서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몇해 전 죽은 동생의 이름을 쓰더라. 그러면 자기 동생이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하선씨가 명지의 이중적인 태도와 마음을 잘 이해할 것 같았다. 실제로 잘 구현해줬다.

- 명지가 앓게 된 장미색 비강진도 큰 의미를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뒤 극심한 스트레스로 나타난 증상이다. 명지 입장에선 이 상흔 자체가 도경의 죽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 인간의 슬픔이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난다는 게 참 기묘하다. 실제로 김애란 작가와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반점 증상을 직접 겪고 나서 소설에 반영했다고 한다. 사실 현석과의 관계가 마지막에 이뤄지지 않은 것도 장미색 비강진 때문이지 않나. 현재의 명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좀처럼 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 명지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 바르샤바가 애도와 기억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명지가 바르샤바에 도착하면서부터 진짜 명지만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공간적 의미와 이국적인 풍경을 어떻게 조화시키려 했나.

= 원작은 영국 에든버러로 설정돼 있지만 실제 바르샤바 곳곳에 애도를 표하는 장소가 많기도 하고 내가 폴란드를 잘 알고 있어 자연스레 선택했다. 나치 지배에 대항한 바르샤바 봉기일인 8월1일에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과 자동차 모두 길 위에 그대로 정지한 채 1분 동안 침묵을 지키며 희생자를 추모한다. 자동차에서는 경적을 울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5분 정도 지속됐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모든 스탭이 국가적 애도에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사회적 죽음과 개인의 슬픔을 관통시키고 싶었다. 도시 전체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세월호를 암시하는 도경의 죽음도 결국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직업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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