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로부터 34년이 지나 돌아온 실사화 <인어공주>(2023)의 캐릭터들은 도착한 시대 흐름에 발맞춰 시의적절한 각색을 입었다. 어떤 캐릭터는 디테일한 설정이 추가돼 플롯에 개연성이 생겼고, 어떤 캐릭터는 전에 없던 노래를 부여받았다. 빠짐없이 사랑받았던 ‘바다 아래’ 캐릭터들과 ‘저 위 너머’ 캐릭터들이 어떻게 애니메이션 속 매력을 보존한 채 재탄생했는지 새로 <인어공주>의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트리비아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에리얼
1989년 애니메이션에 이르러 이름이 생긴 인어공주 에리얼은 실사영화에서 캐릭터에 다양한 레이어가 생겼다. 위로 6명의 언니를 둔 설정은 애니메이션과 동일하지만, 이번 영화 속 에리얼과 에리얼의 언니들은 7대양에서 건너와 피부색이 모두 다르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언급하지 않았던, 인외 존재들에게조차 끊임없이 가해진 중세의 여성 혐오적 전설을 적시한다. 영화 속 육지 남성들에게 여성 인어는 전설 속 세이렌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한 후 그들을 수장해버리는 마녀다. 에리얼 또한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무고한 소문의 당사자지만 이에 굴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Part of Your World>의 가사가 무색하게 막상 땅에선 대부분의 생활을 궁에서만 보내던 애니메이션과 달리 영화 속 에리얼은 물 위 세상을 적극적으로 탐험한다.
특히 에리얼이 <Kiss the Girl>이 나오는 장면 전까지 육지 저잣거리에 뛰어들어가 세상을 즐기는 긴 시퀀스는, 에리얼이 인간들에게 품었던 환상과 호기심을 그대로 실현하는 명장면이다. 원작 소설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 속 에리얼 또한 명창이다. 솔로곡 <Part of Your World>의 유려한 소화는 말할 것도 없다. 애니메이션의 대표곡이자 제62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수상곡이었던 <Under the Sea>는 원곡과 달리 에리얼의 코러스가 들어가며 곡의 구성이 한층 더 풍성해졌다. 이를 통해 흥겨운 멜로디 이면에 곡의 가사가 에리얼에게 주입하던 바다 생활의 폐쇄성이 상쇄되기도 한다. 이번 영화에선 인간 세상에 당도한 에리얼의 낯섦을 그대로 반영한 넘버 <For the First Time>이 추가됐다. 영화를 연출한 롭 마셜 감독은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에리얼을 연기한 배우 핼리 베일리의 노래를 듣고 “핼리의 노래가 기준치를 너무 높여놓아 에리얼 캐스팅 물망에 올랐던 다른 배우들이 통과하지 못했다”며 현 디즈니 CEO와 거의 동시에 베일리를 에리얼로 낙점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핼리 베일리는 언니 클로이 베일리와 함께 듀오 ‘클이X핼리’로 활동하던 가수다.
우르슬라
원작 소설과 달리 애니메이션 속 마녀 우르술라는 영화 속 절대 악이자 에리얼의 소망을 수포로 만들기 위한 모략을 꾸미는 음모꾼이다. 이번 영화에서 우르술라는 악행의 동기와 방향 모두가 명확해졌다. 우르술라와 트라이튼이 남매이며 우르술라가 트라이튼에 의해 15년간 유배 중이란 설정이 더해진 것이다. 우르술라는 에리얼이 트라이튼의 가장 큰 약점임을 알고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에리얼을 자신의 거처로 유인한다는 명분이 산다. 원작과 애니메이션 모두 인어가 사람이 되기 위한 요건에 왕자의 ‘진정한 사랑’ 혹은 ‘진정한 사랑을 담은 키스’가 붙는다. 다만 영화는 우르술라가 에리얼을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주문에 전제를 추가해 에리얼의 과업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배우 멀리사 매카시에게 우르술라는 꿈의 배역이었고, 해당 역에 캐스팅되기 위해 롭 마셜의 지인에게 사정하다시피 빌었다. 애니메이션 속 우르술라의 외양은 드랙퀸 배우 디바인으로부터 연유했는데, 매카시의 커리어 또한 드랙퀸 쇼로 시작했다는 점은 캐스팅의 흥미로운 우연이다.
에릭
에리얼의 운명을 비극으로 만드는 동화 속 왕자와 달리 애니메이션과 영화 속 왕자 에릭은 에리얼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느끼는 로맨티스트다. 이번 영화의 에릭은 어릴 적 왕실에 입양됐다는 설정이 덧붙는다. 에리얼이 땅 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듯, 에릭 또한 가족과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포함한 외부 세상에 호기심이 많고 그들과 ‘교류’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린마누엘 미란다의 참여로 화제를 모은 에릭 왕자의 추가 솔로 넘버 <Wild Uncharted Waters>는, 에리얼을 향한 사랑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모험 정신 모두를 표현한다. 에릭을 연기한 조나 하워킹은 애니메이션 속 에릭이 전형적 왕자라 지적하며 이번 영화의 에릭엔 여러 겹의 입체성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그는 바다 출신 에릭이 에리얼에게 품을 법한 들뜸과 성 안에 갇힌 채 살아가야 하는 에릭의 고립감, 예민함이 자신의 연기에 녹아나길 바랐다.
스커틀
애니메이션의 감초 역할이자 여러 사건 해결의 열쇠를 도맡는 스커틀은, 이번 영화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남성의 목소리였던 애니메이션과 달리 이번 영화의 스커틀은 여성이며, 바다 갈매기가 아닌 가넷 새다. 스커틀의 목소리는 듣는 순간 배우의 정체를 알아챌 법하다. 아콰피나가 연기한 스커틀은 2장의 힙합 정규 앨범과 여러 싱글을 발매한 배우의 커리어를 반영하듯 새로 추가된 랩 넘버 <The Scuttlebutt>를 극 중 세바스찬과 함께 가창한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에리얼의 포크를 ‘Dinglehopper’로 얼버무리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아콰피나는 이번 영화의 목소리 녹음 중 많은 애드리브로 원대사에 말맛을 더했다고 한다.
트라이튼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트라이튼은 여전히 바다 왕국의 완고한 통치자로,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딸 에리얼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 아버지다. 애니메이션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 트라이튼으로 분한 배우가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점은 캐릭터의 중량감을 달리 보게 한다. 하비에르 바르뎀 또한 트라이튼을 연기하길 강력히 원해 롭 마셜 감독에게 “스페인 억양을 쓰는 인어 왕도 괜찮다면 나를 고려해달라”며 자신을 적극 어필했다고 한다. 캐스팅 확정 후 기쁜 나머지 당시 7살이던 딸 루나에게 “아빠가 <인어공주>에 합류하게 됐다”고 전하자마자 편견 없는 어린 딸로부터 “아빠가 에리얼이야?”라는 답을 받았다는 유쾌한 후일담도 화제를 모았다.
세바스찬, 플라운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화 소식이 보도됐을 당시 관객은 세바스찬과 플라운더의 실사 구현 가능 여부에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표했다. 세바스찬과 플라운더는 애니메이션의 작화에 비해 실제 바다 생물에 훨씬 근접하게 구현됐다. 가재로 정체를 오인받았던 세바스찬은 이번 영화에서 확실히 게의 외양이다. 종이 무색하게 다리가 8개였던 애니메이션과 달리 이번 영화 속 세바스찬은 실제 게처럼 다리가 10개다. 에리얼의 단짝 플라운더는 애니메이션과 생김새가 달라졌다. 노란색 몸통의 파란색 수직 띠무늬를 지닌 애니메이션의 플라운더는 해양 생물 전문가들에게 로열 엔젤피쉬로 추측됐다. 이번 영화의 플라운더는 은빛 몸에 흑빛 수직 띠무늬로 인해 해포리고기로 추정된다. 세바스찬의 목소리는 뮤지컬 <해밀턴>에 출연한 더비드 디그스가, 플라운더의 목소리는 <룸>과 <원더>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배우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연기했다.
그림스비
애니메이션의 팬들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대폭 늘어난 그림스비의 비중에 놀랄 것이다. 에릭 왕자의 수하에 그쳤던 애니메이션과 달리 이번 영화 속 그림스비는 철저히 에릭을 생각하고 에릭을 위해 움직이는 심복이며 에릭의 유사 아버지 역할까지 겸한다. 여왕 셀리나의 눈치를 살피며 에릭의 사랑을 응원하는 그림스비가 얼만큼 왕실에 없어서는 안될 유능한 실무자인지 눈여겨볼 법하다. 드라마 <셜록> <홈랜드> 등으로 친숙한 파키스탄계 영국인 배우 아트 말리크가 그림스비를 인상적으로 소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