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거리는 단발머리와 다부진 입매.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말하겠다”던 명은은 미더운 반장으로 거듭났다. 그러다가도 가족과 친구들, 선생님의 관심을 갈망하는 눈빛이 드러날 때면 영락없는 12살 학생임을 깨닫는다. 인터뷰 날은 문승아 배우의 시험 기간이었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 중이라고 했다. “원래 체육을 좋아했는데 명은이 덕에 국어도 좋아졌다. 처음으로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타고 명은이처럼 ‘비밀 우체통’을 공약으로 내세워 반장도 됐다. (웃음) 명은이 덕에 나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생활에 열심인 점 등 명은과 문승아는 닮은 부분이 많지만 처음 대본을 읽을 땐 자신과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다고. “조용한 줄 알았더니 무척 명랑하더라. 어떤 느낌의 아이인지 확 느껴져서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항상 ‘예쁘다, 귀엽다’ 소리만 듣던 오디션장에서 이지은 감독은 ‘승아야, 구수하다!’라며 그를 반겼다. 배우 활동을 말리는 엄마와 딸이란 설정으로 즉흥 연기를 펼쳤는데, 결국 그 자리에서 문승아는 눈물을 보였다. 명은이 친구들과 싸우고 노는 학교 장면의 대부분도 즉흥 연기로 채워졌다. “이런 식으로 자유도가 주어진 건 처음인데 내 의견을 존중해주신다고 느껴 정말 좋았다.” 명은이 되기 위해 허리까지 기른 머리를 자르고 입어본 적 없는 노란색, 분홍색 의상을 걸쳤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라. 알고 보니 파워 웜톤이었나보다. (웃음)”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명은을 ‘그 나이대 애들은 조금씩은 그런 마음이 있을 것’이라며 헤아려주고, 명은이 시장에서 엄마를 피하는 신을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으로 꼽는다. “그땐 몰랐는데 찍고 나니 명은의 복잡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서 더 잘 나온 것 같다.” “명은이도 귀여운데, 나도 귀엽지 않나!”라며 웃다가도 필요한 순간엔 진지하게 답하는 그의 너른 속내를 짐작해본다.
“친구들과 마라탕 먹고, 코인노래방을 가며” 여느 중학생처럼 일상을 보내는 문승아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배우로서 활동하길 바란다. “50살 즈음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예정된 차기작은 A24 제작의 <패스트 라이브즈>,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 “<어벤져스> 시리즈의 새로운 히어로”다. “스트레스에 짓눌린 고3이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어벤져스 멤버가 되어 있는 거다. 괴물들을 물리치는 교복 입은 여학생 히어로, 재밌을 것 같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