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가장 크고 깊은 감정으로, ‘더 문’ 도경수 인터뷰
2023-07-25
글 : 이우빈
사진 : 백종헌

어느덧 연기 경력 10년에 이른 배우 도경수. 20대의 온종일을 노래와 연기로 채웠던 그가 <더 문>으로 돌아왔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로 활동하며 2014년 영화 <카트>,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로 이름을 알린 이래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스윙키즈>로 배우의 입지를 공고화했던 그가 군 공백기 이후 5년 만에 극장가를 찾은 것이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보여줬던 강직하되 청아한, 아주 큰 눈망울은 변함이 없다. 마침내 이 눈빛은 달에 홀로 고립된 우주비행사 황선우의 외로움과 흔들림, 그리고 이것들을 이겨내는 강직함까지 두루 섞어낸 최적의 무기로 거듭났다. 그는 “지금까지의 배우 경력 중 감정의 크기와 폭이 가장 크고 넓은 인물을 연기했다”라며 촬영 당시의 설렘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눈은 향후 10년의 세월을 또다시 거뜬하게 빛낼 만큼 영롱했다.

- 영화로 관객을 만나는 건 대략 5년 만이다.

= 너무 떨린다. (웃음) 영화를 찍고 연기하는 일도 어렵지만, 이렇게 인터뷰하거나 홍보를 다니는 게 더 긴장되곤 한다. 그래도 제작 발표회까지 끝냈으니 후련한 맘으로 일정을 즐기려 한다.

- 엑소 컴백 일정까지 맞물려 한창 바쁠 것 같다.

= 배우와 가수 활동 기간이 겹친 건 지금까지 몇번 있어서 괜찮다. 그나마 이번 엑소 활동은 영화 촬영 기간과 직접적으로 겹치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노래하고 연기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이런 내 모습을 계속 좋아해주셨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말이다.

- 황선우는 무척 진중한 인물이다. 그간 배우 도경수가 보여준 이미지, 연기 스타일과 잘 들어맞는단 인상이다. 감정 연기를 할 때 정서의 폭발보단 그것의 미묘한 변화를 드러내는 성향 때문인 것 같다.

= 음··· 우선 선우와 내 실제 성격이 닮았다고까진 생각지 못했다. 선우는 나와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언제나 적확히 표현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편이다. 또 외적으로 아주 용맹하지만 내면엔 깊은 아픔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캐릭터가 지닌 감정의 크기와 폭이 크고 넓다. 질문에서 언급했듯 그동안의 연기에선 감정을 몸에서 나오는 대로, 본능적인 선에서 표출해왔다. 그러나 이번엔 선우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간의 감정 연기와는 결이 다소 다르다는 느낌이 있을 거다.

- 10년 전 <카트> 출연으로 <씨네21>과 인터뷰했을 때 “어머니에게 화를 내본 적 없는데, 겪어보지 않은 일을 연기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엔 감정 연기가 좀 수월해졌나.

= 훨씬 수월해졌다. 당시엔 연기 경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많이 어렸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소리도 질러보고 감정적으로 싸워보기도 했다. 이렇게 일상에서 경험한 사건과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왔으니 10년 전에 비해선 연기에 감정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묻어나오지 않을까 싶다.

- <카트> 당시만 해도 “시나리오를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을 떨던” 배우였다. 이제는 연기에 굳은살이 좀 생긴 것 같나.

= 굳은살이라··· 굳은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웃음) 사실 내 연기를 내가 평가하거나 정량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관객들이 보시는 대로 정해주면 좋겠다. 나도 궁금하다. 내 연기가 얼마나 늘었는지 항상 피드백을 갈구하고 있다. 평소에도 관객 평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 수용성이 높은 것 같다. 촬영 현장에서도 김용화 감독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안다. 김용화 감독은 “각자의 연기 해석이 다른 것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라고 회상하던데.

= 나 역시 똑같은 마음이다. (웃음) 비유하자면 똑같은 원통 안에 들어 있는 감정인데 보는 각도만 달랐던 거다. 이 각도의 차이를 서로 설명하고 이야기하면서 결국 우리가 같은 생각이란 걸 확인하는 과정이 신기했다.

- <신과 함께> 시리즈 때도 마찬가지였나.

= 그때는 긴장을 너무너무 많이 했었다. 현장에 걸출한 선배들도 많고, 원동연 일병의 감정선도 연기하기에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신과 함께> 때는 감독님이 좀더 구체적인 지시를 많이 주셨던 것 같다.

- 김용화 감독이 배우 도경수를 조금 더 의지하게 된 것 같기도 한데.

= 그런 신뢰의 차원도 있었겠다. 또 <더 문>은 선우와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다 보니 대부분의 촬영을 다른 배우 없이 나 혼자 진행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더 자주 가깝게 붙어다녔고 밥도 늘 같이 먹었다. 이런 물리적인 접촉이 연기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많은 도움이 됐다.

- 현장에 가서 상대 배우와 눈을 마주쳐야만 감정 연기가 제대로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더 문>은 우주에 혼자 고립된 상황 탓에 상대 배우가 없는 촬영 현장이 대부분이었다.

= 맞다. 그래서 항상 선배들의 연기가 궁금했다. 지구에 있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직접 볼 수가 없었으니까. 특히 선우의 이야기가 촬영 초반에 배치돼 있었기에 지구 이야기의 촬영본을 거의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역과 겪을 대부분의 감정을 감독님과의 대화, 그리고 각본을 통한 상상으로 도출했다. 이것 역시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다른 신선한 경험이었다. 촬영 중후반부터는 지구 촬영본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고, 내가 생각한 감정과 상황 그대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설경구, 김희애 배우를 현장에서 만날 일이 드물었겠다.

= 드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뵌 수준이다. 이것저것 염탐하면서 배우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다. 심지어 김희애 선배님은 제작보고회 때 얼굴을 처음 뵀다. 인사를 간단하게 드렸는데 너무 신기하더라. 진짜 연예인 보는 기분이었다. (웃음)

- 우주 배경의 영화이다 보니 후반작업으로 구현해야 하는 화면이 많았을 텐데. CG 작업 전 세트장에서 연기하기도 쉽진 않았을 듯하다.

= 아니다. <신과 함께> 때는 그린 스크린 앞에서도 자주 연기해야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대규모의 세트 미술이 정말 상세하게 마련돼 있었다. 덕분에 놀랄 만큼 몰입이 잘됐다. 우주선이 실물 크기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안의 작은 스위치나 버튼, 글자까지도 실제 우주선과 같았다. 외부의 물리적 충격이 있는 장면에선 실제로 우주선이 흔들리고, 월면차를 직접 운전하기도 했다.

- 선우의 우주 비행을 돕는 드론 ‘마루’와의 연기는 어땠나.

= 아주 애틋한 친구다. (웃음) 나를 위해 늘 고생하고 헌신하는 친구라 정이 많이 들었다. 마루 역시 실제 드론에 와이어를 달아 촬영했다. 엄청 무거웠다. 사람들과의 감정 연기는 상상이었는데, 마루와는 아주 현실적으로 깊은 감정을 나눴던 것 같다.

- 우주복도 현실적으로 보이던데.

= 당연히 실제와 같은 우주복이었다. 진짜 무거웠다. (웃음) 안에서 열까지 나는 바람에 촬영 내내 땀이 줄줄 났다. 그래서 나 때문에 촬영장 에어컨을 세게 틀어야 했다. 여름이었는데 제작진 분들이 긴팔까지 입어가면서 배려해주셨다. 아직도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이···. 아무튼 이렇게 디테일한 촬영 여건이 감정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됐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겠다. 어떻게 움직여야겠다’라는 생각을 굳이 거치지 않더라도 상황마다 표정이 본능적으로 생동했다.

- 촬영 현장의 기억이 무척 좋아 보인다.

= 그렇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고 나 역시 무척 재밌었다. 온통 처음 보는 비싸고 이상한 카메라, 신기한 렌즈들이 많은 현장이었다. (웃음)

- <더 문>에서 맡은 배역 황선우는 UDT 소속의 엘리트 군인 출신이다. <신과 함께> 때 관심 병사 원동연 일병을 연기했던 것과는 대비되는데, 정반대 성향의 군인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나. 말투나 외양부터가 달라야 했을 것 같은데.

= 사실 군인 말투야 대개 거기서 거기이지 않나. (웃음) 그래서 말투나 버릇 같은 점에서 원동연 일병과 의도적으로 차별점을 두려고 하진 않았다. 또 지금의 황선우는 군인이 아니고 우주비행사이다 보니 원동연 일병과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순 없었다. 다만 군인 출신, 특히 UDT 출신 군인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강한 정신력과 용맹함을 사소한 연기에도 많이 녹여내려 했다.

- 전역한 지 약 9개월 만에 촬영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실제 군 생활이 연기에 도움이 됐는지.

= 글쎄. 도움이 됐으려나? (웃음) 말투에 ‘다나까’체가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빼고는···.

- 조리병으로 복무했다. 조리병이면 다른 병사들과 일과 시간이 많이 다를 텐데, 혼자 있는 시간엔 주로 뭘 했나. 사회에선 영화나 시리즈물 감상이 취미였던 것으로 안다.

= 늘 잤다. (웃음) 이게 경험 안 해본 분은 종종 조리병 업무가 편하다고 생각하시더라. 그런데 진짜 진짜 힘들다. 종일 밥하고 먹고 자고, 밥하고 먹고 자고 치우고···. 항상 잠이 부족했다. (웃음) 취미 생활을 즐길 틈조차 없었다. 주말에나 간신히 스마트폰으로 뭐라도 조금씩 본 정도다.

- 전역 후엔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지. 팬들에게 <엘리멘탈>을 영업하고 다닌 일화가 유명하다.

= 디즈니·픽사 작품이라면 다 좋아한다. <엘리멘탈> 전엔 <모아나>도 눈이 뒤집힐 정도로 재밌게 봤고, 지금은 오매불망 <엘리오>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멘탈>은 한국계 감독의 작품이라 그런지 감정적으로도 너무 많이 공감했고 표현력에도 감탄했다. 한편으론 이렇게 애니메이션 기술이 좋아지면 조만간 배우란 직업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을 정도다. (웃음)

- 최근에 재밌게 본 작품을 꼽아보자면.

= 요즘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는 다 봤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극장에 보러 가기 전에 1편을 다시 보고 갔다. 아마 내가 1편의 기억을 가장 생생히 지니고 2편을 본 사람이지 않을까.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말이 안될 만큼 미적 표현이 탁월한데, 사실 어떤 이야기인지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더라. (웃음) 이런 영화나 <이니셰린의 밴시> 같은 영화를 본 후엔 작품의 배경이나 해석을 꼭 찾아본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시리즈물 중에선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도 재밌게 봤고,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도 웬만한 건 다 챙겨본다.

- 한창 군 생활을 할 때 팬들과 직접 채팅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활성화됐다. 전역 후에 맞이한 이런 변화가 낯설진 않았나.

= 정말 어려웠다. (웃음) 사실 평소에도 SNS를 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팬들이 뭘 좋아할지 많이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 사진, 셀카도 잘 보내고 하던데 난 그런 걸 잘하지 못해 미안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 영상을 자주 공유했다. 이번 컴백 때는 최대한 더 열심히 뭐라도 해보려고 한다. (그는 최근에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신설했다.)

- 가수 출신 배우가 다른 배우들보다 카메라를 훨씬 잘 찾는단 말도 있다.

= 난 아니다. 카메라 잘 못 본다. (웃음) 연기할 때야 카메라를 대놓고 볼 일이 적으니 괜찮다. 근데 무대에서 카메라랑 눈 마주치는 건 아직 너무 부끄럽다. 엑소 활동으로 음악 프로그램을 녹화할 때도 다른 멤버들은 카메라를 잘 보더라. 신기했다.

- 멜로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도 참여했다. <더 문>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는데 다른 장르, 다른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나.

= 캐릭터에 너무 몰입해서 일상에까지 영향을 받는단 배우들이 있더라. 촬영을 모두 마치고도 계속 그 인물에 신경을 쓴다고도 한다. 너무 신기하다. 이런 분들이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난 ‘컷’이 들리는 순간 그냥 도경수로 돌아온다. (웃음) 작품이 끝나면 미련 없이 돌아선다. 나도 저런 경험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

-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던 2014년에 <카트>와 <괜찮아, 사랑이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가수 생활을 병행하는 와중에도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쌓고 있다. 이런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천재란 수식에 가깝지 않나.

= 아니 그런 말은···.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웃음) <괜찮아, 사랑이야>는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고, 노희경 작가님이 많이 도와주셨던 터라 해냈던 것 같다. 노력 많이 한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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