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라” 외치며 <D.P.> 시즌1에서 호열이 능청스럽게 등장했을 때 그의 이면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탈영병의 흔적을 능숙하게 좇다가도 D.P. 조장으로서 자신의 가용 범위를 가늠하며 남들 앞에 나서길 주저하는 모습 같은 것 말이다. 그 망설임이 유쾌함 저변에 가라앉은 그의 속내를 짐작게 한다. 그러나 배우 구교환의 말대로 그가 동료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청년”임을 깨달은 뒤로 탈영병을 도우려는 호열의 진심은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다. “한준희 감독이 자신을 잘 써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며 구교환은 본인이 파고든 <D.P.>의 두 번째 챕터 그리고 호열에 관해 들려주었다.
- 시즌제 작품에 연이어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연기한 인물을 또 만나니 반갑더라. 시즌1을 거치며 호열이를 잘 알게 됐지만 시즌2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나는 만큼 달라지는 지점이 분명 있을 거라고 봤다. 그래서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 시나리오와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하자는 게 목표였다.
- 확실히 시즌2의 호열은 다른 인상을 준다. 시즌1에서 극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했다면 시즌2에선 가라앉은 분위기에 완전히 동화된 채 나타난다.
= 그게 감독님의 중요한 디렉션이었다. 준호(정해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도와주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든든한 모습을 보여준 전과는 좀 다르게 이번엔 보통 청년의 모습이 더 보여지길 바라셨던 것 같다.
- 호열이 등장하기 전, 쇼핑백에 담긴 그의 점퍼가 먼저 카메라에 잡힌다. 살짝 보이는 옷깃만으로 유추가 가능할 정도로 강렬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는 걸 새삼 깨달은 장면이었다.
=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파악되는 캐릭터의 성격이 있는데 호열이는 취향이 확실해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한편으론 그런 화려한 옷을 일종의 방어기제로 사용했던 것 같다. 마냥 가볍고 밝은 친구는 아니라고 느꼈고, 병원에서 등장할 때 확신했다.
- 시즌1에서도 병동의 샤워실에서 처음 얼굴을 비추지 않나. 워낙 활발해 당시엔 “마음의 병이 있다”는 호열의 말을 흘려들었는데, 병실 장면을 보며 허튼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 그게 호열이의 무드인 것 같다. 거짓을 말하진 않는데, 진실을 거짓말처럼 이야기한다. 자기 컨디션을 쉽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시즌2에선 전면으로 드러내서 나도 좀 놀랐다.
- 그럼에도 기어코 병원을 나와 김루리(문상훈)에게로 향한다. 이후 장성민(배나라)을 끝까지 쫓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준호와 달리 두 탈영병 모두와 인연이 있었다는 게 주요하게 작용한 걸까.
= 둘에 대한 의무감과 죄책감이 아무래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또 준호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을 나섰을 거다. 아무리 두려웠어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래야 본인이 살 수 있다고 여겼을 것 같고.
-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 아직 어린데 D.P.로 활동하면서 너무 큰 사건을 많이 마주했으니까. ‘얘가 정말 괜찮은 걸까?’ 하고 자주 생각했다. 두려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더 밝게 행동하고 그러면서 버티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예를 들면 구자운 준장(지진희)을 만나러 가는 신에서 호열이가 새우깡을 가져간다. 본인도 먹고, 상대에게 권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게 여유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두렵고 불안해서다. 뭔가를 먹거나 손에 쥐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마음이 놓이곤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매번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용기를 내온 사람 같다. 그렇게 굳건히 버티다 결국 부러진 거지. 그래서 병원에서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 찰진 대사가 호열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말을 하지 못하는 초반부가 아쉽진 않았나.
시즌1, 2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D.P.>는 전체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다. 시즌1의 마지막 상황을 상기하면 이해 못할 설정은 아니었다.
- 극 중 다른 인물들이 호열이 말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하지 않는 건지 궁금해한다. 이에 관해 생각해본 바가 있나.
= 음, 반반이다. 어사무사하게 연기하라는 게 시나리오에도 있었다. 사실 그것보다는 호열이 처음 꺼낸 말이 루리를 향한 것이었다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 새로 합류한 캐릭터가 여럿인데, 이중 누가 가장 눈에 띄던가.
= 모두가 매력적이었지만 지진희 선배님의 구자운은 정말! 내가 지진희 선배님의 대단한 팬이라는 걸 사실 잘 모르실 거다. 선배님은 멋의 의인화 그 자체다. (웃음) 호열이 새우깡을 들고 찾아가는 장면에서 지진희 선배님, 정석용 선배님과 함께했다. 무거운 장면인데도 두분이 워낙 잘해주셔서 개운하게 끝냈다. 정석용 선배님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계시다.
- 한편 호열이 제대하면서 준호와의 군대에서 인연이 마무리됐다.
= 작품의 끝에서 돌이켜봤을 때 <D.P.>는 결국 준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호열이가 준호 인생의 한 페이지, 적어도 반 페이지는 차지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준호랑 같이 터미널에 앉아 있던 신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둘이 이별할 때 호열이가 “또 봐”라고 인사하는데 그게 마치 함께 고생한 제작진, 동료들 그리고 <D.P.>라는 작품에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왠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로 느껴지더라. 호열이는 준호에게 먼저 연락하진 않을 것 같다. 준호가 정말 중요하고 문득 생각나는 사람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먼저 연락하진 않을 것 같다.
- 예정된 차기작이 많다. <D.P.> 이후로 올해 또 배우 구교환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 얼마 전 영화 <왕을 찾아서>의 촬영을 마무리 짓고 현재 <부활남>을 찍고 있다. 촬영은 계속 하고 있는데 올해 공개되는 작품은 <D.P.> 시즌2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대신 단편 작업은 꾸준히 하고 있다. 얼마 전 ‘[2×9HD]구교환×이옥섭’ 채널에 티저를 올렸던 <세 마리>도 곧 업로드될 것이다. 이것저것 열심히 만들어오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