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는 군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이전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국가적·체계적 책임을 함께 묻는다. 시즌1에서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이 천연덕스러운 콤비로 D.P.의 여정을 보여줬다면, 시즌2에서 이 둘은 묵직한 태도의 진중한 안내자가 되어 시청자가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도록 돕는다. 은폐하려 하지만 은폐할 수 없고, 진실이라 믿지만 거짓에 가까운 사건들을 하나의 메시지로 엮어내며 <D.P.>는 그간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았던 사회의 민낯을 다시금 진단한다.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한준희 감독에게 질문을 건넸다.
- 두 번째 시즌은 조석봉(조현철) 사건이 벌어진 뒤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아닌, 시즌1 마지막 회의 연장선인 김루리 일병(문상훈)의 이야기로 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 시즌2를 준비하던 중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조석봉 사건을 목도한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까? 김루리 일병 총기 난사 사건도 쿠키 영상처럼 흘러갔지만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더니, 앞으로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더라.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안준호, 한호열, 박범구(김성균), 임지섭(손석구)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시즌2의 에피소드 넘버들도 일부러 1, 2, 3…가 아닌 7, 8, 9…으로 시작하게 했다. 시즌1에서부터 쭉 이어진다는 뜻이다.
- 그래서일까. 활기차고 유쾌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다소 우울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 그게 큰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큰 사건의 뒷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분위기가 경쾌할 수만은 없다. 물론 시청자들이 <D.P.>의 유쾌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었다. 누구나 큰 외상을 겪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 D.P.조에 새로 들어온 박세웅(유수빈)은 D.P. 활동을 시간 때우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반면, 안준호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열성적이다. 왜 안준호는 이렇게까지 D.P.에 진심인 걸까. 사회에서 아르바이트만을 전전하는 안준호가 군대에서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지위이기 때문에? 혹은 시즌1에서 경험한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간이 좋아서?
= 둘 다이지 않을까. (웃음) 군대에 가면 사회에서 무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군대 내 계급이 모든 것을 결정할 뿐이다.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목적이 주어지면 그것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한다. 사실 준호는 군대에 오기 전까지 크게 목표 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생계 유지에 급급한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준호의 의지와 달리 D.P. 활동을 하며 계속해서 특정 목표가 생겨나고 이것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 석봉 사건을 기점으로 책임감과 회의감도 느꼈을 테고. 이전에 이런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던 만큼 보직에 대한 태도와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군대 내 괴롭힘, 성폭력, 성정체성 등 현실성 높은 사건을 다루는 만큼 에피소드 소재로 차용하는 과정이 신중했을 것 같다.
= 김루리 일병 총기 난사 사건도 제작진이 모두 모여 긴 논의를 거쳤다. 김루리가 가해자라는 사실에 우리가 멋대로 면죄부를 주거나 미화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이어지는 상황들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했다. 대신 주요 인물들의 대사나 군 단체 인권센터에서 건네는 질문들을 직설적으로 내뱉게 했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사건의 자극성에 맴돌지 않고 논의가 필요한 본질을 바라봐줄 거라 믿었다. 이 과정이 정말 어려우면서 중요했다.
- 한편으론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안준호와 한호열도 군대 내 괴롭힘에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시즌1에서 안준호는 다른 동료의 부탁은 들어주지만 마커를 사달라던 석봉의 말은 무시하고, 시즌2에서 김루리 사건을 조사하던 한호열도 그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석봉이 친구 맞구나? 얘도 군 생활 피곤하겠다”고 말한다. 결국 이들도 군대 내에 존재하는 서열이나 편견을 그대로 용인하고 있다.
= 정확하다. 안준호와 한호열은 완전무결한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그 지점이 정말 중요하다. 시즌1에서 황장수(신승호)라는 개인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물었다면, 시즌2에서는 시스템 전반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이 체계 안에 놓인 모두가 피해자라는 나이브한 말이 아니다. 이 문제를 알고 있었으나 방관한 모든 사람이 이 체계를 견고하게 만들었고, 안준호와 한호열 또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제 방관자들이 대가를 치러야 할 차례가 왔다. 그게 시즌2의 쟁점이다. 다만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두 인물이 12개의 에피소드를 거치면서 어떤 성장을 이루게 되는지, 어떤 방식의 변화를 거치는지, 그래서 마지막에 어떤 얼굴을 띠게 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흘러나오는 곡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다소 어두운 이야기와 달리 부드러운 선율의 노래가 이어진다. 뮤지컬 <헤드윅>의 <Midnight Radio>는 성정체성을 다룬 해당 회차의 한끗을 올려주기도 한다.
= 비싼 곡이다. (웃음) <Midnight Radio>만큼은 어떻게든 쓰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자 음악감독님이 한숨을 쉬며 사주셨다. 해당 회차와 정말 잘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 시즌1 때부터 함께해온 프라이머리 음악감독님이 좋은 곡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특히 이야기와 음악이 충돌함으로써 생기는 균열이 무척 매력적이다.
- 가장 예외적인 모습을 보인 게 바로 임지섭이다. 이혼한 아내를 만나 난처해하거나, 직업적 신념에 갈등을 보인다. 그에게 이렇게 인간적인 변화를 준 이유가 있다면.
= 임지섭은 <D.P.> 시리즈에서 낙차가 가장 큰 인물이다. 사실 욕망도 크고 똑똑한 척하지만 그러지 못해 갈등을 겪는다. 어떻게든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이 자신이 정해둔 최소 한계선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임지섭을 다른 부대로 옮겨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전과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사건을 맞닥뜨리게 하기 위해서다. 10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과연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일까?” 이 테마를 극적으로 풀어줄 인물로 임지섭이 가장 잘 어울렸다. 자기만의 강한 확신을 가진 인물이 무너질 때 극 안에서 밀도 높은 메시지를 전해줄 거라 믿었다.